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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Mar 09. 2023

30대인데 애새끼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인가

2023년 목표 중 하나가 새로운 춤 배우기다. 이런 포부를 밝히자 질문이 돌아왔다. 


탱고는 그만 뒀어?

   

그럴 리가. 2023년에도 일주일의 삼사일은 탱고를 출 계획이다. 다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 살사와 바차타를 배울 심산이었다.     


그날은 ‘홍대’에서의 살사·바차타 입문 수업 첫날이었다(홍대입구역 근방은 탱고뿐만 아니라 스윙, 살사, 바차타 등 대부분 소셜댄스의 중심지이다). 저녁에 있을 수업 전 들를 곳이 있었다. 아이 낳은 지 몇 달 안 된 친구의 집에 다른 친구와 함께 놀러가기로 한 것이다. 출산 전 만난 뒤로 쭉 못 보고 지내다 마침내 모두 모인 주말 오후였다.     


세 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싱거운 농담과 함께 근황을 나누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논평하다 종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적당히 잘 사는 사회에 대해 의견 나누는 일종의 패턴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날은 어딘지 평소 모임과 달랐다.


예쁘고 순한 아이를 낳은 친구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의 관점과 관심사도 기존의 방향에서 조금은 달라진 것으로 보였다. 다른 친구 역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며 이미 지난 몇 개월간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위해 숱한 소개팅을 했다고 밝혔다. 둘은 이미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고 나만 그날 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주류적 삶에 속하거나 속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 까닭이다. 마치… 함께 둘러앉아 대화 나누던 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나만 홀로 그 자리에 남은 기분이랄까?     


본 글과 직접적인 연관 없는 저작권 프리 사이트의 사진1


다소 황망하고 방어적인 심정이 되어, 새해 계획을 묻는 질문에 “글쎄… 올해 안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흑인이랑 자 봐야겠지?”라고 답했고 친구들은 깔깔 웃었다. 발언의 함의를 떠올리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릴 수도 있겠으나, 불쾌한 성적 대상화를 여성에게 좀 더 빈번히 가하면서도 성적 욕망은 억압하는 모순에 대해 반항 섞인 농담을 던지고 싶었다. 농담이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의 집을 나서기 전, 그의 아이를 안아들었다. 따뜻한 체온과 말랑한 촉감과 생명의 질량을 느끼며 앞으로 계속하여 벌어질 친구와 나의 간극을 생각했다. 30대 중후반이라는 지금의 시기를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인생의 장르를 바꿀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다른 생명체를 낳고 기르는 것 보다 스스로를 기르는 게 더 중요한 나, 뿌리를 내리기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곁눈질 하며 떠돌아다니는 나… 잘못 살고 있는 걸까?


생각은 수업을 받으며 멎었다. 감각이 나를 지배한 덕이다. 답답하고 벽에 부딪히는 느낌, 바보가 된 것 같고 약간의 오기가 발동하는 기분을 제법 오랜만에 느꼈다. 싫으면서도 싫지만은 않았다. 앞으로의 수업을 잘 소화해 ‘살사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은 남았지만 말이다.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수업을 마치고 뒤풀이가 열렸다. 첫 수업 뒤풀이는 참석하는 게 좋다고 여겼기에 함께 했다. 테이블을 옮겨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 나누다, 세 번째로 옮긴 테이블이었나? 먼저 앉아있던 덩치 큰 30대 남성이 내가 인사하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웃는 낯으로 "실례되는 질문이니까 답 안 할래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다음과 같이 구시렁거렸다. '알아서 뭐할 건데? 춤추는 동호회에서는 필요치 않은 정보 아냐? 혹시 나이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려는 건가? 그럼 더더욱 알려주기 싫은데?'     


그 뒤로도 그는 틈나는 대로 껄렁대며 나이 관련 질문을 던졌다. 묻지도 않은 자신의 나이를 말하기도 했다. 불필요하게 집요한 태도로 느껴져 불쾌했다. 심보가 뒤틀리니 대화에 불성실해졌다. 계속 단답으로 응하며 질문을 돌려주지 않았다. 표정도 딱딱했나 보다. 그가 이런 말을 던졌다.


원래 웃음이 없는 편이세요? 얼음공주 같아요.     


'얼음공주'라는 말을 육성으로 들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기 어렵다. 진짜… 너무… 싫었다…. 게다가, 웃음의 씨를 말린 것이 본인이면서 감정노동까지 요구하는 걸로 여겨져 심사가 더 꼬였다. 그러던 중, 그가 변화구로 나이 질문을 더한 것이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왜 나이를 안 알려주시는 거예요? 이십대세요? 어려 보이긴 해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30대인 사람에게 이게 무슨 개수작이지? 나이를 알고 싶어 하는 집요함에 기반을 둔, 희롱으로 느껴지는 짓거리가 가소로웠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표현이 있었다.


지랄하지 마세요


생각으로 그쳤어야 했는데 픽 웃으며 말을 흘렸나 보다…. 그가 놀라며 "뭐라고요?"라고 되물은 것이다. 수습하려고 웃으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지만 이미 망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문득 오후에 했던 고민이 떠오르며 내가 더할 나위 없는 ‘애새끼’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 잘못 살고 있을 지도….     


미숙하게 행동했다는 자각이 스스로를 애새끼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런 언어 사용이 어른은 성숙하고 아이는 미숙하다는 이분법적 가치관을 기반에 둔 것이기에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 있음을 안다. 그 맥락을 알고 공감하면서도, 애새끼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 어렵다. 미숙한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으로 애든 어른이든 애새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애‘새끼’를 발음할 때 속이 풀리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니까 처음 본 사람에게 ‘지랄’을 말한 거겠지?     


유행어를 보면 센 어감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소수파가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점을 방문할 때 “음식 조지러 가자” “맛집 뿌셔 버리자”고 말하는 것, 입을 맞추는 행위를 “키스 갈긴다”고 표현하는 것, “가능?”이라는 질문에 “쌉가능”이라고 답하는 것 등등.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말버릇을 어른스럽지 못하다 여기며 ‘어른의 화법’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수요 또한 적잖다. 어른의 말, 어른의 글, 어른의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누거나 가르치는 책의 높은 판매지수가 이를 방증한다.     


몇몇 책을 들춰봤다. 책마다 강조하는 어른스러움이 조금씩 달랐다. 책마다 상충되는 내용도 있었다. 어떤 서적은 어른스러움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함이라고 강조했고, 다른 서적은 계속 자신을 열어두고 스스로를 수정하는 용기가 완고함 보다 어른스럽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 깊이 뿌리 내리고 전문성을 갖춰 큰돈을 버는 삶을 어른답다 보는 저자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매번 자신을 갱신하는 일이 진정 어른답다 말하는 저자도 존재했다.


사람마다 다른 어른스러움을 지향하는 이유는 각자 살아온 과정과 가진 결핍이 달라서가 아닐까? 내가 선망하는 ‘어른의 상’ 역시 반면교사의 경험과 결핍의 자각으로 이뤄졌을 것이었다. 얼마 전 부친과 대화하며 인지한 사실이다. 대화 중 그가 내 성장과정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언급했는데, 그는 언제나 그랬듯 인정과 수용 보다 방어적 태도를 보였다. 어른스러움의 여러 측면 중,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인정할 건 인정하는 속성을 내가 특히 주목하는 배경이다. 또한 부친은 정치에 대해 말하다가 내가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흥분하며 큰 소리로 상스럽게 말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실망스러웠다. ‘저러지 않는 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수틀리면 ‘세게’ 말하는 내가 그와 뭐가 다를까 싶다.


- ‘좋은 어른은 못 되더라도

최근 부쩍 친해진 탱고인 Y는 내가 선망하는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경거망동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무언가 말하고 행동할 때, 당시에는 물음표가 떠오르더라도 나중에 들어보면 나는 미처 마음 쓰지 못한 사려 깊음이 있어 감탄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지만, 타인에게는 관대했다. 그가 나의 경솔함과 과격함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심지어 재밌어했기에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같이 살사·바차타 수업까지 듣게 됐다. 그날 같은 공간에 그도 있었다는 뜻이다.     


2차 뒤풀이 장소는 살사바였다. 그곳에서 Y에게 어떻게 그렇게 어른스러운지, 나는 왜 당신처럼 어른스럽지 못한 건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사람은 잘 안 변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자기 앞가림 잘 하고 남한테 큰 피해만 안 끼치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꼭 좋은 '어른'이 될 필요 있나? 그냥 좋은 사람이면 되지.   


또한 그는 내 성격에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 그냥 입 다무는 편인 그는, 그로 인해 오해 받기도, 그를 답답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하는 내가 좋고, 나를 보며 대리만족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지지하는 편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선망하는 어른스러움을 가진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준다고 여겨져 큰 위로가 됐다.    


본 글과 직접적인 연관 없는 저작권 프리 사이트의 사진2


그에게 기대어 이야기 나누며 춤추는 이들을 봤다. 음악이 흐르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공간, 웃으며 마주보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금처럼 빛났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크고 두툼한 몸, 운율적이고 부드러운 움직임, 몰입하는 표정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흑인이었다. 2년 넘게 탱고바 가봤자 한 번도 볼 수 없던 섹시한 흑인을 살사바에 간 첫날 보게 되다니…. 새로운 춤에 도전했기에, 안 해 본 경험 속에 자신을 던졌기에 만난 선물 같은 순간이라 여겨졌다. 나… 잘 살고 있는 것일 지도?


느낀 것을 충분히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고, 새로운 것이 주는 흥분과 자극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내 성향이 때로는 ‘애새끼스러움’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단점은 장점과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격함은, 실행력과 용기의 다른 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욕망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다 똑같은 어른만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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