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없는 이발관
주말 동안 연희언니가 방콕에서 다녀갔다. 나를 만나기 위해 토요일 새벽 비행기 타고 날아온 그녀. 만나자마자 그동안 밀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라오스에서 귀청소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언니도 호응해 주었다. 자주 보는 유투버가 귀청소하는 영상을 재밌게 봤다고 한다. 청소는 들어간 노력 대비 결과값이 명확하다는 보람을 느끼지 않나. 그런 면에서 청소를 점점 즐기게 된다는 데 공감했다. 그래서 미용 풀케어는 베트남이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귀청소는 인생에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고 바람을 넣었더니 그녀도 호기심을 가졌다.
길거리엔 정말 oo이발관이 많았다. 베트남 이발관은 이발만 하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풀서비스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머리를 깎는 이발 서비스는 없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1시간짜리 풀코스를 받았다. 한 사람당 한 명씩 전담케어사가 배정된다. 마사지대에 누우면 먼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주신다. 꽤 걷다와서 그런지 발만 담갔는데도 금방 힐링이 됐다.
크록스만 신고 열심히 걸어 다녀서 그런지, 두터워진 발 각질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나는 귀청소를 대신 발각질제거를 요청했다. 스크럽을 발라주시고 때 밀듯이 밀어주셔서 잘 안 닿는 등부위를 효자손으로 긁어주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묵은 각질을 훨훨 날려보냈다.
두피마사지로 넘어간다. 손가락으로 가야금 튕기듯 어루만져주시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뜯는 것처럼 고급스킬을 써주신다. 이때 케어해 주시는 분의 마법의 한마디.
“언니, 아파요?” 이제 나도 언니로 불릴 나이인가 생각이 스치는 것도 잠시 뿐. 충분히 언니는 공손하고 정중한 느낌이다. 간단한 한국어지만 먼저 강도를 물어봐주시는 것이 배려심이 충분히 느껴져서 감사했다. 그래서 “아니요,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튼튼한 머리카락만이 전쟁같은 두피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가운데 부분 마사지가 끝나면 오른쪽으로 돌려서 한번 왼쪽으로 돌려서 한번 꼼꼼하게 진행해 주신다.
얼굴을 피아노 건반 다루듯 통통통 현란하게 움직여주신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볼살이 춤을 춘다. 그나마 웃을 때나 입 근처 근육이 실룩였는데, 마사지 덕분에 얼굴 전체 근육들이 스트레칭을 한 기분이다. 마무리는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신다. 얼굴에 잠시 덮인 스팀수건은 추운 겨울날 수면양말 신은 것처럼 포근했다. 피부관리 이래서 받는군요?
그다음 순서는 톱 4 총사 친구들이다. 왼쪽 손톱, 왼쪽 발톱, 오른쪽 발톱, 오른쪽 손톱 순으로 다듬어주신다. 누워서 손발톱 관리를 받는 게 처음이라 기분이 요상했다. 하지만 세상 말끔한 손과 발을 얻은 기분이라 상쾌했다. 길고 울퉁불퉁한 손톱과 발톱을 깔끔하게 잘라주시고, 뾰족한 부분 없게 둥그렇게 갈아주시니 말이다. 내가 못 챙긴 디테일을 챙김 받는 느낌이랄까.
손발톱 관리가 끝나면 오이를 얼굴 전체에 덮어주신다. 오이 덕분에 얼굴에 있던 열들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왜 드라마에서 어머니들이 오이팩을 하는지 단번에 느꼈다. 시원하고 비타민이 공급되는 느낌이다. 오이는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할 만하다.
마무리로 샴푸타임이 남았다. 먼저 세수를 부드럽게 헹궈주신다. 샴푸를 머리에 발라 거품을 잔뜩 올라오도록 하여 반죽하듯 비비신다. 또다시 등장하는 마법의 한 마디. ”언니, 아파요? “ ”아니요, 너무 좋아요! “ 라 빠르게 답했다. 실제로 그냥 쓰다듬는 정도라 시원했다. 확실히 토털케어의 나라답게 베트남은 적당한 강도를 아는 한수 위의 스킬을 가지고 계신 듯하다. 샴푸마사지받을 땐 두피를 손톱으로 빗자루질하는 느낌이라 아팠던 라오스와는 달랐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것으로 풀서비스는 끝난다. 케어를 받는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어루만져주셔서 잠을 잘 순 없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만큼 뽀송뽀송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세상 밖으로 나설 수 있다.
평소에 에피타이저 본식 후식 풀코스요리를 즐겨하고, 특히 오마카세 코스요리를 좋아한다. 이번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어를 받아보니 처음이라 새롭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배는 부를수록 일정 포만감을 넘어서는 배부름은 무거워지는데, 몸은 깨끗하고 풀어줄수록 더 가벼워져서 좋다.
언니도 귀청소를 처음 받고 만족해해서 뿌듯했다.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눌 동지가 있을 때, 즐거움이 배가 되는 법. 처음엔 좋을지 나쁠지 몰라 60분과 90분 중 60분 코스를 골랐다.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올해 가장 상쾌한 1시간이었다. 임팩트 있는 60분의 여운이 어느 때보다 진하게 남았으리라.
다낭이 효도관광의 성지인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은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런 풀서비스를 받는데에도 금액은 저렴한 것이 포인트! 가족여행이나 부모님 효도여행을 생각한다면, 다낭에서 풀케어서비스를 끊어드리자. 누구나 효녀, 효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