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체벌과 기독교인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

-1편

by Remedy

나는 성경에서 도대체 왜 자식이 부모에게 지켜야 할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지켜야 하는 것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지 생각을 곰곰히 해보았다. 자식과 부모라는 것은 “관계”의 일종이기에 쌍방이 해야 하는 듀티가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보통 기독교 부모들은 사람이 죄를 짓게 하는 것 보다 팔을 잘라내는 것이 낫다, 엄하게 하는 것이 좋다 등등의 성경구절로 육체적 체벌을 합리화 한다. 나는, 일단 이 첫 번째 에서는 이 “체벌 시스템”에 대한 반박을 하고자 한다.

대중적으로 그나마 잘 알려진 부모는 이것을 자식에게 해서는 안 된다 라는 문언은 자식을 노하게 하지 말라 라는 말 밖에는 없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러면 체벌을 하면 안되느냐, 아이들이 잘못을 하는데 방관해야 하느냐 하면서 이 구절은 묵살을 해버린다. 또한, 대부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 라는 에베소서의 구절을 “아마도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부당하게 매를 맞거나 야단을 맞았을 때와 자녀의 필요와 도움에 부모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노엽기에 그렇게 하면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나갔을 때는 분명히 잘못을 지적하고 때로는 매를 대어서라도 징계를 해야 할 것” 이라고 하며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2:15)”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잠언 29장 17절)” 의 구절을 예로 든다. (조사를 해 본 결과, 한국의 많은 목사님들께서 이러한 답변과 설교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먼저, 아이를 징계하는 이유를 논하고, 그 다음 아이를 노엽게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아이를 징계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기독교적인 척도로만 보았을 때, 아이가 미련한 것에 얽히지 않도록, 또한 부모를 평안하게, 마음에 기쁨을 주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육체적인 체벌은 이 세가지를 전부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러므로 세가지 전부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이 아니며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의 케이스를 알지는 못하나, 나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 그리고 내가 최근에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쓸 것이고,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이 글은 나의 깨달음이며 나의 가설일 뿐이기에 얼마든지 반박 가능하다..

나는 제일 먼저 심리학을 이용하기로 했다. 심리학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강화, 혹은 억누르는 것을 Reinforcement와Punishment 라고 한다. 여기서 Reinforcement 라는 것은 어떠한 특정 행동을 강화시키는 모든 것, Punishment는 어떠한 특정 행동을 억누르는, 혹은 퇴화하게 하는 모은 행동을 의미한다. 또한 Discrimination 이란 한 사람이 일정한 Stimulus를 특정한 때에는 받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는, 배움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스토브를 만졌을 때와 식은 스토브를 만졌을 때, 뜨거운 스토브를 만지면 데일 것이며 식은 스토브를 만졌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임을 “배우는” 것이 Discrimination의 좋은 예 이다.

이러한 R과 P는 다시 Negative & Positive Reinforcements와Negative & Positive Punishment로 나뉜다. Positive는 무조건 어떠한 것을 더하는 것이며, Negative는 무조건 어떠한 것을 빼내는 것임으로, NR은 어떠한 특정한 것을 뺌으로써 특정 행동을 강화 시키는 것, PR은 어떠한 특정한 것을 더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강화시키는 것, PP는 어떤 특정한 행위를 더함으로써 행동을 억누르는 것, NP는 어떤 특정한 행위를 제거함으로써 행동을 억누르는 것이 되겠다.

1. 처벌을 하는 것은 어떠한 행동을 억누를 뿐이지 고치는 것이 아니다. 이 억눌려진 상태는 부모에게 자식이 좋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육체적 채벌이 먹혀든다 라는 NR로 작용하여, 더욱 자주, 더욱 크게 아이를 육체적으로 체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식이 좋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좋지 못한 것이 없어짐으로 좋은 행동이 강화되었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N = 아이의 좋지 못한 행동, R = 부모의 체벌 이 될 가능성이 높다.)

2. NP와PP는 아이가 상황을 판단하게 만든다(Discrimination). 결국, 아이는 부모 앞에서, 혼내는 사람 앞에서 일정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할 것이다. 학교에 야한 옷을 가지고 다니는 여자들, 화장을 학교에 두고 하는 여학생들, 몰래 피시방을 가는 학생들, 몰래 술을 마시는 학생들 등 여러 예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 앞에서는 행동을 억누를 것이기에, 부모는 그 행동이 “고쳐진” 것으로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전히 부모는 아이를 더욱 자주 육체적으로 혼낼 것이며, 아이는 더욱더 똑똑하게 그것을 숨기게 될 것이다. 결국, 아이는 부모를 기만하는, 즉 “공경하지 않는” 죄를 짓게 된다.

3. 처벌은 아이에게 두려움을 가르쳐 준다. 많이 맞아본 사람들이라면 누군가가 손을 들었을 때 움찔 한다거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면 무서운, 혹은 서릿한 느낌이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생명체는 두려움 = 좋지 못한 것 혹은 피해야 할 것 으로 인식을 하기에 그 두려움을 주는 부모, 심지어 윗사람을 좋지 못한, 믿지 못할, 무섭고 피해야 할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행동은 썩은 생선을 보면 피하는, 똥을 보면 밟지 않는, 야채를 보면 먹지 않는 행동과 같은 것이다. 즉, 육체적 체벌은 부모와 아이의, 하나님과 기독교인 같아야 할 사이를 벌어놓게 된다.

4. 육체적 체벌은 공격적인 성향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 수 있다. Albert Bandura가 한 보보 인형 실험에서는, 아이가 분노했을 때, 만일 전에 폭력적인 행동을 보았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을 증명해내었다. 즉, 가장 오랜 시간 지내는 부모에게 육체적 체벌을 받는 아이는 공격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를 다스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또 다시 육체적인 체벌을 하게 될 것이며, 아이가 자신이 있을 때 특정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내 육체적 체벌이 아이의 행동을 고쳤다” 라고 합리화 할 것이다.

5. 사람은 여러 번 반복된 행위에는 일종의 Tolerance를 가지게 된다. 아버지에게 구타를 받던 아이도,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지겹고 짜증이 나게 된다. 육체적 체벌은 처음에는 매우 강력한 효과를 가질 지 몰라도, 점점 그 효과가 적어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좋지 못한 일종의 싸이클을 발견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지 못한 행동을 함 육체적 체벌 아이의 좋지 못한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듦 NR 반복적인 육체적 체벌 Tolerance 더 강한 체벌 아이의 좋지 못한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듦NR반복적인 강화된 육체적 체벌Toloerance… 이라는, 즉 아이는 더 익숙해지고 부모는 더욱 흉폭해질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사이클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상 착하다가 가끔 무서워 지는 것, 이것이 제일 잘 먹혀 들지만, 이미 한번 Desensitize되고 Discrimination을 “익혀”버린 (Learning) 아이에게는 이것이 먹혀 들지 않는다. (심리학 에서는 익힘 (learning)을 평생 가도 바뀌지 않을 만한 어떠한 행동과 사상의 익힘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결국, 아이는 여전히 미련한 것에 얽혀 있으며, 일을 터뜨린다면 부모도 평안치 못할 것이며, 마음 또한 기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절대로 들키지 않는 다는 가정 하에, 뒤에 두 가지는 성립이 가능하기에 나는 굳이 “모두 충족되는 것은 어렵다”라고 한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 그 어떤 것도, 일단은, 기독교적인 결론이 아니다. 물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조금” 망치더라도 아이가 올바른 길로 가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나무에서 나와 숲을 볼 차례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