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탕 같은 내 마음을 하나씩 둘 씩 호로록 맛보다.
친구랑 밥을 먹는데 bipolar 이야기가 나왔다.
한창 졸업논문 프로포절 디펜스를 앞두고 그날그날 나의 연구 진척 상황에 따라 기분이 널뛰는 것 같아 나는 친구에게 "나 바이폴라 왔나 봐..." 했더니, 친구는 "좀 그런 것 같기도 해. 요즘 화가 많아 보여"라고 하며 서로의 마음 상태에 대해 짬뽕을 한 사발 먹으며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를 주고받는다.
사람은 크게 나의 professional life와 personal life가 있고 한쪽에서 채우지 못한 심리적 욕구를 다른 한쪽에서 좀 더 보완해 나가며 그야말로 '심리적 워라밸'을 맞춰간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과 함께 위로하거나 반대로 가족 간의 갈등을 일하면서 푸는 (아 물론 이건 적겠다...) 경우가 있지 않을까.
홀홀 단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둘의 밸런스를 잘 맞추며 살고 있을까 돌아본다. 최근의 professional life에서 온 현타와 우울감을 문득 나눠본다.
"난 비슷한 분야 공부하는 사람끼리 연구에 대한 고민도 잘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봐. 난 내 연구에 확신이 덜 해서 좀 더 확신을 가져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 연구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래서 어떡하냐' 이런 반응이라 힘이 빠져. 그냥 다 나 이렇게 잘하고 있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해야 하는 게 이 업계의 방식인가 봐.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 빼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 이게 어려워."
현재 내 주위의 커뮤니티의 친구들은 서로를 잘 챙기고 운동도 같이하고 너무도 좋다. 서로의 grief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끔 서로 다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무기력에 빠지기도 십상인 것. 아 그리고, 참 이게 한국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게... 곧 40을 앞두며, 비슷한 또래의 공감이 부재하다는 것에 또 한 번 은근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난 그냥 이렇게 나름 고즈넉하게(?) 살면서도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곧 교수 잡을 잡아서 어디론가 떠나게 되는데, 미국의 대도시가 아니라 정말 미드웨스트의 캠퍼스 타운이나 한국사람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곳으로 가면 어떡하지? 그러면 또 혼자일 텐데,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고독함, 우울함들이 슬쩍 밀려온다.
이런 고민들을 그냥 불쑥 꺼내보았다. "그냥 요즘 근근이 잔잔히 우울한가 봐. 근데 어느 순간 그 낮게 깔린 기분마저도 하루하루 논문 쓰는 걸로 쳐내면서 잊고 지내는 것 같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해."
근근하고 잔잔한 우울함을 누군가에 꺼내 놓은 게 참 오랜만이다. 하루하루 내 마음을 잘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누구에게 꺼내놓기가 어려웠는데, 그 복잡한 마음을 곱씹고 끄집어내어 보니 또 막상 후루룩 지나갈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새 고기도, 오징어도, 새우도, 가락국수 같은 면도 하나씩 둘 씩 사라진다. 짬뽕탕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냥 하나씩 둘 씩 그렇게 풀어내며 호로록 마시면 그냥 지나가기도 하나보다. 들어준, 함께 나눠 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