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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02. 2024

지금은 '엄마표'라 부르지만, 육아의 한 방식

'우연'이 '운명'이 된 순간,

남편의 인도 주재원 생활 5년 중,, 1년이 남은 시점이었고, 다음해에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서 한국에 세를 준 집을 구두로 재연장하기로 했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안타깝게도 3월에 인도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위험하다 했을 때, 인도는 고요한 편이라 일상 생활을 하며 지냈는데, 3월 이후 인도의 상황이 꽤나 심각해졌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락다운을 시행했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해야만 했고, 가뜩이나 잘 나가질 못했던 우리는 그나마 외출하던 몰, 레스토랑 등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만 했다. 


더 공포스러운 건, 코로나로 인해 사망자의 소식이 들리면서부터다. 그리고 전세기 얘기가 나돌았다.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한 일 년만 나가 있다가 다시 돌아오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시댁에서 5분 거리인 오피스텔을 10개월 계약하고, 2020년 4월 1차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두 아이의 나이 7세(만5세), 4세(만2세)였다.


오피스텔은 길다란 방에 부엌이 있고,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는데 성인이 혼자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우린 10개월만 살다가 다시 들어갈 거니깐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주 간의 격리기간 동안 아이들과 스물 네 시간을 밀착하다 보니,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으로 고되었다.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자유', 즉 'me time'이 잠시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 책을 읽고 영어, 중국어 공부를 했다. 나 공부하자고 애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우선 책을 주문했다. 한글책, 영어책 할 것 없이 틈틈이 책을 모았다. (나중에 이사갈 때 보니, 책이 엄청나게 모였더랬다.) 모은 책을 쌓아두고, 매일 밤마다 두 아이를 양 옆에 앉히고 읽고 또 읽어줬다. 영어책, 한글책, 글밥 많은 책, 글밥 적은 책 가리지 않고 다 읽어줬다. 


그러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읽어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이미 전문적으로 잘 하고 있는 엄마들의 인스타를 찾아봤다. 나는 아이들용 인스타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매일 기록했다. 읽어준 책 혹은 아이들이 읽은 책, 혹은 아이가 영어를 낭독하는 모습 등.  누군가는 그게 자랑이라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건 어떻게든 두 아이랑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엄마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목이 아픈 날이 쌓였지만 첫째가 리더스북을 낭독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났다. 어떤 날은 내가 아이들에게 하듯 첫째가 둘째를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었다. 둘의 모습을 보며 흐뭇했고,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나는 몸으로 놀아주거나, 다정한 말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엄마가 못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 깨달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책 낭독을 통해 알게 됐다. '책 육아'는 모든 육아 방식 중,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좋은 방식이었던 거다. 이런 우연성의 요소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었기에, 나도 이를 '엄마표'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매일 영어 영상 한 시간씩을 꼭 보여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부터 영어 영상에 거부감이 없었다. 한글 영상을 많이 보지 않아서다. 물론 첫째는 한글 영상을 접하긴 했지만, 한글 영상을 보고 싶어할땐, 영어 영상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살짝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아이는 그거라도 보고 싶어서 더 이상 한글 영상을 찾지 않았다.)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올 때, 쓰기를 시도했다.


분위기를 환시키기려고 스타벅스에 데려가서 그림일기장을 펼쳤다. 아이더러 그림을 그리라 하고, 아래쪽에는 아이가 불러주는 영어 문장을 받아적었다. 의도적으로 쓰기를 많이 시킨 건 아니지만, 아이더러 불러달라 하고 내가 몇 번 받아적는 방식을 취하면서 이건 네가 쓴 일기와도 같다고 알려주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는 말이니까.


둘 다 5월부터 어린이집을 보냈다.(7세까지 함께 있는)


첫째가 한글 공부를 7세 되던 해, 1월부터 시작했기에 좀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매일 한글 공부를 했다. 한글 공부를 하면서 수학 문제집도 풀렸다. 둘째는 누나 곁에서 선 그리기를 하거나 숫자 쓰기, 알파벳 쓰기를 하며 놀았다. 둘째에겐 모두 놀이식이었다. 



사실 나는 갈수록 첫째의 아웃풋에 집착하게 됐다. 어느 순간, 점점 그렇게 됐는데 이건 아이가 10살 여름방학때 정점을 찍었다. (정점을 찍고 확 꺾여버린 건 다음에 이야기할 예정이다.) 신기한 건, 둘째에게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둘째는 그냥 내버려뒀다. 책을 읽어줄 때도 첫째 위주의 책을 읽어주었고, 둘째는 그것이 수준이 높건 말건 그냥 귀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내게 육아 필수 아이템은 책이 주를 이루긴 했지만, 징비빨도 무시 못했다. 노트북은 원래 가지고 있었고, 나는 프린터기, 제본기, 코팅기를 차례로 들였다. 이것을 모두 활용했을 때 내가 만드는 도구들은 모두 퀄리티 있게 변했다. 아이들과는 영어뿐 아니라,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놀아야 했기에 (물론 앉아서, 무조건 앉혀서, 매번 층간소음 항의 받는 일은 몹시 괴로웠다ㅠ) 아이들의 흥미를 유지시켜 주어야 했다. 



프린터 해주고 "자 혼자 해봐"가 아니라 내가 즐겁게 참여했다. 애들과 함께 앉아서 오리고 붙이고 색칠하고 쓰고, 그렇게 우리만의 포트폴리오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1년 뒤, 인도에 복귀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나는 아이들 아빠 없이 2년을 더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집이 있는 동네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세입자의 계약기간은 1년이 넘게 남아 있는 시점이어서, 우린 근처의 다른 아파트에 월세를 구했다. 


또 한 번의 이사를 준비했고, 많은 책을 포장해야만 했다.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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