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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19. 2024

일본 오사카, 교토

이렇게도 떠난다고?

남편이 대학 졸업 후 쭉 다녔던 회사를 퇴직하고 한 달 뒤쯤 지났을 때다.


-자기 혼자 여행 다녀올래?

-응? 갑자기 왜?

-나 떠나고 나면 자기 혼자 애 둘이랑 지내야 하고, 여행은 꿈도 못 꿀 거잖아. 그리고 여행 안 간지 너무 오래됐고.

-아냐, 아냐, 나 여행 안 가도 돼. 난 지금이 너무 좋아. 나 그냥 집에 계속 있고 싶어. 집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애들 공부 봐주고... 지금 일상에 불만이 하나도 없어. 괜히 돈 쓰러 가기 싫어, 안 갈래.


물론, 남편은 인도의 한 회사에 최종합격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었으나, 왠지 퇴직했다고 생각하니 돈을 쓰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니 긴축 재정에 들어가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주특기 중 하나는 나에게 '뽐뿌질'하는 거다. 혼자 여행 가는 건 앞으로 어려울 테니, 다녀오라는 남편의 계속된 말은 내 안의 '혼자만의 여행' 욕구에 불을 질렀다.


그리하여 난생처음으로, 여행 전날 모든 것을 예약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선 어디 갈 것인가 고민하고, 최대한 가까운 곳을 가자 싶었다. 요새 엔화가 많이 떨어졌다는데 일본에 갈까? 일본에 가면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가지 못한 오사카로 가자. 순식간에 결정이 났다. 애들 재우고 자정 넘어부터 비행기 티켓부터 알아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행기 티켓이 비쌌다. 왕복하니 거의 사십만 원..... 결제를 망설이고 있자, 남편은 어서 결제하라고 재촉했다. 두 번째 걸림돌은 숙소였다. 남편은 오사카 우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한큐호텔을 예약하라 했고, 나 혼자 굳이 비싼 숙소에 묵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남편의 의견과 달리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숙소를 예약했다. 그래도 내가 예약한 우니조 호텔에는 여성 전용 층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어디를 둘러볼 것인가 간략하게 찾아봤다.


유심을 미리 구매했는데, 그게 이심이라서 최근 아이폰 기종에만 사용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남편은 자기 아이폰을 빌려줬다. 하지만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이심이 작동이 안 돼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공항에서 리무진 타고 우메다 역 근처까지 와서, 미리 구매해 간 한큐패스 교환도 잘했는데 숙소를 못 찾겠는 거다. 이심 작동은 안 되고, 일본인 붙잡고 계속 물어봐도 그들이 설명해 준 대로 갔다가.. 다시 우메다 역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점심때를 놓쳤다. 배가 너무 고파서, 우메다 역 근처에 있는 'KAMUKURA'에 들어가서, 사진상 맛나 보이는 걸 주문했는데,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행복감에 젖었다. (이후, 나는 이곳에 두 번 더 갔다. 사실 아직도 여기서 먹은 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약 오사카를 다시 간다면, 난 여기에서 매일 점심을 먹을 거다. 도톤보리에서 같은 체인점을 발견하고 반가워 먹어봤는데, 이 맛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길을 많이 헤맨 끝에 숙소를 찾았다. 한번 찾고 나니 다음부턴 헤매지 않게 됐다. 폰 배터리 충전하려고 보니, 우리와 다르다. 아 맞다. 나는 여행의 감을 잊어도 너무 잊고 있었다. 돼지코를 안 들고 오다니. 호텔 직원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돼지코 사진 캡처해서 보여주며 빌려줄 수 있냐고 묻자, 돼지코를 건네준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왼쪽 사진은 우메다를 한자로 표기한 것. )


3박 4일 내내 우메다 역 주변을 왔다 갔다 해서,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무작정 걷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간 파친코! 만약 이민진 작가의 <Pachinko>를 읽지 않았더라면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나는 도박에 심각할 정도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오죽하면 남편이랑 마카오 갔을 때도 카지노를 그냥 눈으로만 둘러보고 왔을 정도다. (한화 만원치 했을까 말까..)


파친코 할 때 손맛이 너무 좋은 거다. 그래서 마지막 날 한 번 더 갔다. 하지만 두 번째는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역시 나는 도박은 안 맞다는 걸 깨달았다.


숙소에서 우메다역을 향해 가는 길이 여러 개 있었다. 나는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걷다가 결국은 귀결되는 우메다역을 보고 반가워했다. 오사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도시다웠다. 큰 빌딩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을 때, 나는 비로소 여행을 실감했다. 오래전 잊고 있던 자유로움을 노을을 바라보며 느낀 거다. 길을 걷다 문득 돌아봤는데 건물 사이로 해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눈부신 광경을 보며 가슴이 떨렸다. 나는 이렇게 진실로 살아 있었다.  



둘째 날 저녁 도톤보리로 향했다. 도톤보리의 많은 인파 사이에서 흥겨움을 느꼈다. 그러다 발견한 금스시? 이거 하나에 1800엔이었다. 궁금해서 먹어봤는데, 먹다가 체할 뻔했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너무 급하게 목으로 넘어간 거다. 3박 4일 내내 초밥집에 간 적이 없다. 스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회나 스시를 좋아해서 남편 따라 먹고 혼자 사 먹진 않는다. 그나마 소고기라 먹은 건데, 먹자마자 후회가 됐다.


셋째 날, 한큐패스를 이용해 교토 당일치기를 다녀왔다. 교토는 늘 궁금한 곳이었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현실적으로 여러 군데는 갈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고, 딱 한 곳만 가기로 작정했다. 청수사. 그리고 청수사로 향하는 길, 신넨자카, 니넨자카. 청수사를 오르는 이들이 눈에 띄었던 건 바로 기모노 때문이었다. 젊은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신고 있었는데, 뒤태가 아름다웠다. 그들의 젊음이 눈부셨다. 들의 젊음을 바라보며 한때 나의 젊음을 돌이켜 봤다. 내가 그랬듯,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뇌와 슬픔이 있겠지. 



청수사를 내려오며 말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역시나, 아뿔싸. 빨리 먹지 못해서 아이스크림은 줄줄 흘러내렸고, 내 핸드백 속에는 휴지 한 장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물티슈, 휴지 한 장 없이 나오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아이스크림은 내 왼손에 이어, 검정 핸드백까지 흘러 내려갔다. 나는 다급하게 이층의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무심코 갔던 식당의 뷰가 좋았다. 이층의 창가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모습이 이랬다. 솔직히 점심은 맛이 없었지만, 이층에서 내려다본 뷰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아래층엔 지브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파는 상점이 있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마구 담고 싶었지만 참고 참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엄마가 귀여운 선물 많이 가져갈게!)


(아, 토토로 인형 큰 거 가져 올 걸. 지금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인형. 다음에 간다면 꼭 사오리라.)


이렇게, 청수사를 떠나 오사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도톤보리로 갔는데, 내내 들고 다니던 우산을 하필이면 빼놓았던 이날,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는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나는 줄을 서서 다코야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퍼부어서 야외에서 먹을 수가 없었고, 식당 안에 들어가서 먹어야만 했다. 다코야키를 먹고 나왔을 때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근처의 돈키호테로 뛰어갔다. 우산을 사려고 했는데, 다시 밖을 내다보니 비가 차츰 멎는 거다. 그래서 그냥 나와서 걸었다. 비는 왔다가 멈췄다가 계속 반복했다. 결국 우산을 사지 않았다. 우산을 사지 않았지만 비는 거의 맞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비가 오니 도톤보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사람이 꽉 차 있던 활기찬 도톤보리와 한적한 도톤보리, 둘 다 느낌이 좋았다. 전자는 흥청망청, 기분이 날아갈 듯했고, 후자는 차분하면서도 운치 있었다.



냥 이곳저곳 정처 없이 걸었다. 일본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은 계속 사진을 찍었다. 걷고, 느끼고, 사진 찍고, 이렇게 셋째 날 저녁을 보내고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본 스타벅스 건물, 건물을 둘러싼 이끼(?), 덩굴 식물(?) 이 정답게 느껴져 다음 날 꼭 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항에 가기 전, 이곳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마음먹은 건 어쨌든 해봤다!


9월의 오사카, 교토는 더웠고, 나는 여름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틈틈이 책을 읽었다.


언제나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한가롭고 권태롭고, 편안했다.

 

이런 편안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그냥 한적하게 걷고, 커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몇 달이 흐른 지금, 생각나는 건,


맥주 마시며 책 읽기,

커피 마시며 책 읽기,

오코노미야끼 먹으며 책 읽기.


다음엔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맛난 걸 같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

오사카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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