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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28. 2024

아, 인도여!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가 되어버리면,

1월 17일 두 아이를 데리고 10박 11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좌석을 구매했고, 인천-델리까지 이동후, 델리에서 국내선을 이용해서 아메다바드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전날밤, 여권, 여권사본, 여권사진, 발급 받은 비자 프린터 한 거, 비행 일정, 호텔 바우처 등 프린터 한 거를 다 챙기고 캐리어는 모두 닫아 현관문 앞에 세워뒀다. 델리에 도착하면 라이푸르로 출장 갔다가 델리로 온 남편과 만나서 같이 아메다바드로 가면 되는 거였기에,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부산 동부 터미널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렸다. 비록 인천에서 두 시간 정도 연착되긴 했지만, 두 아이는 편안한 좌석에 누워 영상물 시청 또는 게임을 하고 나오는 음식도 맛나게 먹으며, 아주 평안하게 9시간을 날아갔다. 9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14시간 이상을 앉거나 누워서 보냈다.


이제 델리에서 남편을 만나겠거니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라이푸르에서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았다는 거다. 남편은 아무래도 늦을 것 같으니, 우리 셋이 먼저 국내선을 타고 예약해 둔 아메다바드 호텔로 가라고 했다. 우선 알겠다고 하고, 입국심사받으러 갔다. 기분 좋게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도는 우리나라와 달리 행정적인 업무 처리가 몹시 늦다. 글자, 날짜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대조해 본다. 옆에서 다리 아프다고 찡찡대는 둘째를 달래며 입국심사대 앞에서 한참 서 있는데, 직원이 갑자기 아이들 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내가 프린터 해간 종이를 보여주며, 비자가 만료됐다는 거다. 생각해 보니, 남편이 우리 셋 비자를 동시에 신청했는데, 내 비자만 거절돼서 이틀 뒤에 내 거만 따로 다시 신청했다. 그러니 나는 통과됐고, 애들 비자는 15일 자로 만료되었다. 나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설마 공항에 억류되어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인도 유심도 없는 상태였으나 다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내게 남편은 도착 비자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실제로 직원도 와서 도착 비자받는 곳을 알려주었다. 졸리고 다리가 아프다는 두 아이를 달래 가며 도착 비자받는 곳으로 갔다. 한국인 여러 명이 앞에 서 있었다.


그중, 여성 두 분이 내게 하소연을 했다.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여행을 왔는데 여행사에서 비자를 신청해주지 않았다는 거다. 인도가 비자 발급 국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는 거다. (그분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두 분 델리 여행 잘하셨기를!) 나는 그분에게 내 상황도 설명해 줬다. 나는 비자 발급 때문에 이미 두 번 결제했고, 아이들은 비자가 만료돼서 또 결제를 했다고. 결국 우리 세명 모두 두 번의 비자 발급비를 낸 셈이라고.


그러니, 주의하자. 인도 비자를 발급받을 때는 너무 서둘러 받지 말고, 여행 2주 전쯤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받지 말고 아예 인도에 도착해서 도착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나는 온라인상에서 내 비자만 거절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똑같이 기록했는데 두 번째는 왜 통과되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인도의 일처리는 정말 알 수 없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입국 심사를 마치고 들어오니 우리 짐만 덩그러니 외롭게 놓여 있다. 이미 아메다바드로 향하는 국내선은 떠난 지 오래, 남편은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추우니 공항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통화한 건 몇 분 남짓 되었을까, 내 통화료가 이미 만 원이 넘어섰다고 문자가 왔다. 아이들은 춥다고 아우성이다. (짐 될까 봐 겨울 외투를 아예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아빠 언제 와,

-추워.

-호텔 가고 싶어.


두 아이에게 각각 폰을 쥐어줬다.

나는 그렇게 델리 공항 국내선 앞에서, 두 시간 넘도록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인도 직원 두 명과 함께 새벽 1시 30분쯤 나타났다. 아이들이 아빠를 향해 달려가 안겼다. 남편의 사연도 만만치 않았다. 델리로 향하는 앞의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그 티켓을 끊은 인도인들이 남편이 탄 비행기에 탑승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모양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다 내려서 다시 탑승했겠지만, 인도에서는 일일이 그 자리에서 대조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것도 하다가 잘 안 됐는지, 비행기 안에서 앉은 채로 몇 시간을 대기해야만 했단다.


남편을 만나자마자 아메다바드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저녁 6시 비행기가 있다고 델리 밖으로 나가서 자고 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다른 항공사에 새벽 5시 30분 비행기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그걸 타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인도 직원은 회사 경비로 저녁 6시 비행기를 타기로 하고, 우린 개인 경비로 새벽 5시 30분 걸 탔다.


8시 30분 아메다바드 하얏트 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조식을 먹고, 씻고, 좀 쉬다가 바로 앞에 있는 몰에 갔다. 행복했다. 일단 무사히 우리 가족 넷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비록 국내선 비행기 값을 날리고, 호텔 방 두 개 1박 치 비용을 날렸지만 말이다.

 

인도에 살면서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벌써 사 년이나 되었기에.



하지만 다시 한번 인도는 인도란 사실을 깨달았고, 특히 '델리'는 앞으로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11~1월 사이 델리는 악명 높았다. 스모그 때문에 비행기가 취소되거나 연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델리공항에서 비행기를 다시 예약하려는 사람들과 새벽녘 지친 직원들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도 그 새벽의 뿌연 공기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아메다바드에 머무른 며칠간은 평화로웠다.


토요일 아침 우다이푸르로 가기 위해 조식을 먹고 바로 호텔을 나섰다. 아메다바드 국내선 공항에서야 알게 됐다. 비행기가 오후 4시 30분으로 연착되었다는 것을. 우린 그렇게 공항에서 7시간을 보냈다. 우다이푸르에서 아메다바드로 돌아오는 비행기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비행기였는데 역시 오후 4시 30분으로 연착되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음식은 입에 안 맞고, 몸은 피곤하고,


하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인도는 이런 곳이었다.


내가 인도를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아메다바드 국제공항에서 싱가포르로 가려고 출국심사를 받는데, 또 쉽게 보내주지 않는 거다.


아이들 종이 비자를 내놓으라고 한다.


나는 최대한 밝게, 말했다.


-애들 종이비자는 없어요. 왜냐하면 기간이 만료되어서 도착 비자를 새로 발급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직원이 묻는다.


-방문 목적이 뭐죠?


-남편 만나러 왔어요.


-남편이 여기에 있나요?


-네 여기서 일해요. 여기서 살고 있어요.


어느 회사냐고 묻길래 회사 이름도 얘기해 줬다.


-그런데 왜 당신은 이곳에 살지 않나요?


-음, 전 아직 고민 중에 있어요.


그러자 직원이 웃으며 알겠다고 한다. 잘 가라고.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디에 가도 이렇게 입국심사, 출국심사받으며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진 못할 것 같다. 미국에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인도처럼 힘들까?


인도에서 잘 지낸 사람이라면 세상 어디서도 잘 적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도 인도의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진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인도인은 한국인을 좋아한다.


그들은 항상 우리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말을 걸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체로 순박하다.



우아디푸르 시티팰리스에 갔을 때, 사진 찍자고 하는 이들에게 흔쾌히 같이 사진 찍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들은 모두 한국을 좋아했다. 특히, 한류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우리나라, 우리나라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당연히 정감이 간 게 사실이다. 오래전, 조드푸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곳 관광지에서도 우르르 몰려와 사진 찍자고 해서 열심히 같이 찍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싱가포르인인지 태국인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인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힘든 나라지만, 또 힘들지 않은 나라이기도하다.


인도에 있으면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를 보는 것 같다. 대가족중심주의, 가족애가 엄청나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다 같이 똘똘 뭉치는 점까지. 아주 오래 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또, 인도는 현재 나라 전체가 공사 중이다. 건물을 계속 짓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이 올라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인도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건물뿐이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 처리도 좀 편리한 방식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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