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Jan 12. 2024

인도 라자스탄

-잊을 수 없는 자이살메르

인도에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세 군데 있었다.


1. 아그라 타지마할

2. 바라나시

3. 라자스탄


델리-아그라, 바라나시는 다녀왔으므로 마지막 라자스탄이 남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라자스탄에 가자고 졸랐다. 남편도 좋다고 해서 5박 6일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2018년 9월에 떠났다. 라자스탄 주의 가장 큰 도시는 자이푸르이다. 하지만 자이푸르, 조드푸르, 자이살메르 중, 가장 즐거웠던 곳은 조드푸르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곳은 자이살메르다.


우선, 첸나이에서 자이푸르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자이푸르에서 자이살메까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탔다. 프로펠러 비행기는 통로를 기준으로 좌석이 두 개씩 있는, 아주 좁고 불안정한 비행기다. 약 한 시간을 비행했는데, 달달달달 소리가 나고, 자꾸 흔들려서 자이살메르까지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너무나 두려웠다. 자이살메르가 가까워지자 하늘 아래는 온통 모래뿐인, 삭막한 땅이 보였다. 우리는 자이살메르 공항에 내리자마자 숙소로 이동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만디르 팰리스 호텔. 꽤나 오래된 건물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외관과 내부가 아름다웠다. 골드 시티란 이름을 가진 자이살메르의 느낌처럼 이 숙소도 온통 모래빛이었다. 직원들은 친절했으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심지어 둘째가 귀엽다고 계속 안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모든 좋은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갔던 나는 기겁을 하고 남편을 불렀다. 세면대 아래쪽 바닥 하구수 구멍에서 개미들이 기어올라 오는 게 아닌가. 처음에 물을 뿌려보았다. 그랬더니 개미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면서 나오고 또나오는 거다. 남편더러 해결해 달라고 하고 방에 와서 애들이랑 있는데, 한참이 지나도 남편이 나오지 않는 거다. 남편도 끊임없이 나오는 개미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한 두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이 나와서 이제는 개미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들어가 봤더니 비닐봉투에 물을 담아서 하수구 구멍을 막았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새까만 개미들이 호텔 방안을 줄지어 나오는 꿈을 꿨다. 내 온몸에 개미들이 기어가는 상상으로 괴로웠다. 소름이 끼쳤다. 자이살메르 최악이야! 라고 생각할 뻔했다. 하지만 개미가 나오는 화장실을 빼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이른 아침,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를 나와서 걸었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는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으나, 부지런한 자이살메르 사람들은 바닥을 빗질 중이었다.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서 흙냄새가 났다. 오로지 빗질 소리만 거리를 에워쌌다. 저렇게 열심히 쓸어서, 자이살메르의 골목이 깨끗한 거였구나. 바라나시의 더러운 골목과 비교되었다.


제법 걷다가 오토릭샤를 탔다. 자이살메르성 입구까지 올라갔다. 덜컹덜컹, 예전 체코의 체스키의 인도에 깔려 있던 돌바닥처럼 평평하지 않아서 자꾸만 튕겨나가는 그런 길을 계속 달렸다. 릭샤꾼은 우리가 내려올 때까지 가디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자이살메르성 계단을 오르고 또올랐다. 위에서 내려다 본 골드시티, 아름다웠다. 자이살메르에 갔다면 꼭 올라가 보기를 추천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릭샤꾼에게 고마워서 팁을 얹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체크아웃하고, 미리 예약해둔 차를 타고 사막을 향해 출발! 남편은 아고다에서 골든 캠프를 예약해두었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이 몹시 기대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골든 캠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건물이 공사중이었던 거다. 그곳의 매니저를 통해 알아보니, 비수기라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아고다 측에서는 이미 숙박비를 받아갔다. 그런데 환불처리가 안 된다는 거다. 대신 자기들이 운영하는 다른 숙소에 묵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예상한 숙소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노숙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매니저가 알려준 숙소로 이동했다.


방 안과 화장실을 보고 기겁했다. 하지만 애들은 방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의 모래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모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종일 땅을 팔 기세다. 나는 둘째가 숙소 바닥에 기어다니는 곤충들을 혹시나 입에 넣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그러진 않았지만...)


지프차를 예약할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가 예약했던 상품에 낙타체험이 무료로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숙소 앞에 나가 있으니, 인도인이 낙타 두 마리를 끌고 왔다. 나는 첫째를 안고, 남편은 둘째를 안았다. 낙타의 키가 보는 것보다 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처음에 낙타가 일어설 때 고꾸라질 것 같아 비명을 질렀는데, 조금 걷자 안정감이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우리의 뒤를 따라 줄을 이어 다른 낙타들이 걸어왔다. 또 맞은 편에서는 돌아오는 낙타들도 있었다. 서로 손을 흔들었다. 외국인이라고 유독 반가워 해주었다. 즐겁게 샘샌드튠즈를 향해 가는 중, 낙타몰이꾼이 여기가 뷰 포인트라며 내리자고 했다.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친절함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여기까지가 무료체험이고 샘샌드튠즈까지 가려면 750루피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린 무료라고 알고 왔는데 돈을 더 내는건 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럼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럼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300루피만 내라고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우리 옆으로 낙타가 이끄는 카트가 다가왔다. 첫째가 카트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500루피를 내고 카트로 갈아탔다. 우린 낙타가 이끄는 수레에 올라타 지는 해를 등지고 달려서 사막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낙타몰이꾼은 낙타를 이끌고 쓸쓸하게 돌아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못이기는 척 300루피를 주고 계속 타고 갈 걸 그랬나 싶다. 너무 매정하게 대한 것 같다.

 


카트를 타고 가는데, 어린 아이가 달려온다. 이 아이는 장사꾼이다. 뭘 팔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콜라, 였던 것 같다. 모래에서 놀고 있는데, 피리 부는 악사가 와서는 노래를 들어달라고 졸랐다. 들어보고 마음에 안들면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에 들면 원하는 만큼 주면 된다고. 그래서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노래를 듣고 있자니,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도는 자의 삶을 상상하게 되는 거다. 그들은 우리에게 100루피를 받고는 다른 사람들 곁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노래가 마냥 흥겹지는 않았다. 숙소에 돌아왔더니, 야외 공연이 있다고 했다. 무희들이 열심히 허리를 흔들며 춤을 췄다. 우리는 짜이를 마시며 그들의 춤을 구경했다. '무희와 악사'라, 언젠가 소설 속에 꼭 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자이살메르 시내로 왔다. 캐리어를 점심 먹은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두고, 자이살메르 곳곳을 걸어다녔다. 둘째를 안거나 업고. 남편과 번갈아 가며.



그리고 조드푸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1등석 기차는 침대처럼 되어 있어서 편하게 누워서 갈 수 있다. 기차 안에서 호기심으로 식사를 주문해 봤는데, 이렇게 나왔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깜깜한 밤이 되었다. 조드푸르 역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기겁했다. 역 안팎 모두 빼곡하게 찬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 뒤, 조드푸르에서의 2박, 자이푸르에서의 당일치기는 무난한 편이었다.


당황했던 기억은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시간이 흐르니, 그냥 추억의 일부일 뿐인 거다. 그러니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안달복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냥, 툭 털어버리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조드푸르(좌), 자이푸르(우)







이전 04화 스리랑카의 기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