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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Dec 29. 2023

인도 바라나시

갑자기 떠나버린 건 아니었다. 바라나시에 대한 열망이 스무 살부터 마음속에 있었던 거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같이 일했던 언니는 내게 인도, 제주도 배낭여행의 꿈을 심어주었다. 그때 샀던 인도 여행 책자에서 본 사진 한 장은 인도에 살고 있는 내게 언젠가는 꼭 가보아야 할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내 인생에 아이는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히지만 남편 따라 들어간 인도에서 둘째가 덜컥 생겼다. 만 6개월쯤 한국에 들어와 친정부모님과 함께 생활했고,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다. 출산 다음 날 남편은 병실로 찾아왔다. 첫째가 난산이었지만 자연분만에 성공했는데, 둘째는 자연분만 도중, 태아가 위험한 상황이라 긴급 수술을 했다. 내 몸은 만신창이었다. 칼로 배를 마구 찔러대는 느낌이라고 할까.


시댁에 안 좋은 일이 터졌고, 우리를 보러 올라오신 어머니가 하소연을 하셨다. 둘째가 백일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거기에 두 아이가 아파서 입원을 했고, 간호하다 나도 옮아서 같이 아팠다. 그러고 며칠 뒤, 인도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몸이 아팠고, 정신상태도 좋지 못했다. 남편과 자주 싸웠다.


11월의 어느 날, 미싱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하다 말고 뛰쳐나와 남편에게 선포했다.


-나 바라나시 갈래, 보내줘.


처음에 남편은 당황했지만, 결혼한 해에 먼저 여행 다녀오라고 등 떠밀던 사람이었기에, 이내 다녀오라고 해줬다. 사실 두 아이를 두고 바라나시를 가겠다는 말은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절규의 표현이었다. 그가 그걸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이 호텔과 픽업차량을 모두 예약해 줬고, 나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예를 들면, 밤늦게 돌아다니기, 모르는 이가 주는 거 먹기 등)


1박 2일. 지금 같으면 1박 2일은 아주 짧은 여정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1시간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48시간은 천국의 시간과도 같은 거였다.


2017년 11월 18일 뭄바이를 경유해서 바라나시로 갔다.


인도의 거리는 조심해야 한다. 온갖 것이 다 튀어나올 수 있다. 그중, 바라나시는 유독 똥오줌이 많았다. (각종 똥의 종류를 다 볼 수 있다.) 걷다가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인도 남자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물이 빠지는 작은 하수구 구멍 같은데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거였다. 정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빠른 걸음으로 애써 그 방향을 외면하고 걸으려니 식은땀이 났다. 그 외에 호객하는 사람들이 많이 따라붙었다. 곤니찌와, 니하오, 안녕하세요, 차례차례 아시아의 인사말을 하며 접근했고,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그 두 가지가 나를 진땀 나게 했다. 나머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갠지스강을 따라 가트가 형성되어 있고, 호텔이 있는 가트, 내 시작점부터 시체를 태우는 곳까지 느릿느릿, 걸었다. 역시나 들은 대로 바라나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한쪽에서 빨래를 하고, 또 한쪽에서 몸을 씻고, 어떤 이는 그 물을 마신다. 저편에는 시체를 태워 흘려보낸다. 하지만 이것이 기이하거나 경악스럽거나 공포스럽진 않았다. 그저, 이곳은 이런 곳이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은 이랬고, 나는 그저 보이는 그대로 믿으면 되는 거였다. 신기하게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지만, 이들에게 아주 신성한 의식이며, 이곳에 와서 죽고, 화장되기를 염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삶인가 죽음인가 비장한 주제 선율이 흐르는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나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그저 관람객의 편안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한낱 감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체 태우는 냄새와 약간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빌게 되는 거였다. 생의 어려움은 모두 잊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죽음에 당도할 때, 눈 감는 일이 두렵지 않기를. 헛것으로 살았다는 후회를 하지 않기를.


우연히 찍은 이 사진 속의 한국인 여성을 바라나시 뒷골목에 있는 라씨 집에서 마주쳤다. 나는 함께 라씨를 마시고, 팔지를 만들러 간다는 그녀를 따라갔다.



인도국기를 상징하는 오렌지, 그린, 화이트 실로 팔찌를 짰다. 팔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인도인과 그녀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게 신기해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엉성하지만 나만의 팔찌를 완성했다. 지금도 바라나시 하면 나는 이 팔찌가 떠오른다. 아주 오랫동안 하고 다녔는데, 나중에 색이 더러워져서 버렸다.


뿌자 의식이 행해지던 화려한 불빛의 저녁, 그들은 불을 이용해서 의식을 치렀고, 종교 구절을 암송했다. 많은 이들이 보트를 타고 몰려와 그것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나의 도망은, 뒤돌아 봤을 때 옳았다. 그때도 무조건 옳다고 믿었기에 행동으로 옮긴 거였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남는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하지만 바라나시에 다녀온 건, 지금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망치는 일은 비겁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도망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그대여,


삶이 못 견디겠거든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달아나라.


거기가 끝은 아니다. 이전의 삶에 매듭을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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