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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Dec 22. 2023

첫 해외여행

-대만과 일본 북해도

결혼 전, 일하면서 여름휴가가 주어지면 동료과 여행을 가기도 했다.



1.

내 첫 해외여행은 대만이었다. 4박 5일 일정 중, 나는 '九份 지우펀'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곳은 그 당시 방영했던 드라마 <<온에어>>의 촬영지였다. 한국으로의 복귀 전날, 나는 '지우펀'을 한번 더 가고 싶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지우펀의 저녁을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떠난 자유여행에서 처음으로 나 홀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인 진리대학과 지우펀을 다녀오게 된다. 그 당시의 내 영어는 "Where is the bathroom?", "How can I go there?" 정도의 수준이었고, 대만은 영어로 물어보면 중국어로 답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정말 말이 안 되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해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지우펀의 홍등을 보고 싶어 찾아 올라간 돌계단, 내 그림자가 뒤를 졸졸 쫓아오던 개들이 있던 골목길. 함께 걸었을 땐 보이지 않던 내면의 풍경들이 하루종일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고요한 적막감도 거들었다. 오가는 중국어 소리에 이방인이 되어, 그 소리를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인식하며, 그동안 내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것들을 하나하나 해체시켜 나가는 기분이었다.




아, 나는 깨달아 버린 것이다.

홀로 떠나는 것의 충만함을.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채울 수 없던 어떤 특정 부분의 아쉬움을,

내 두 발이 원하면 어디로든 내키는 대로 정처 없이 걸을 수 있음을. 빡빡한 일정표에 의존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움을. 대만에서의 하루는 그 뒤 내 여행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2.

두 번째의 홀로 예행연습은 일본 북해도였다.


동료와 친구들과 일본을 짧게 두 번 다녀온 후(도쿄/규슈), 결혼을 앞둔 한 달 전, 12월에 패키지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그 당시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일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유여행에 자신이 없었고, 패키지라도 다녀오자 싶었다. 패키지로 떠났지만, 거의 홀로 여행과 다를 바 없었다. 함께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철저히 관심 밖이었고, 나 또한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선택이 만족스러웠다.




3년간 일한 곳에서 퇴사했다. 열다섯 명 정도의 여자들만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이해관계도와 이간질이 난무하는 정치판 같았다. 수업은 그냥 하는 거였고, 내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 속에 있었다. 나는 자주 상처받았고, 그럴수록 마음을 닫아버렸다. 지금이라면 웃어넘기거나, 맞받아치거나 했을 일들도 그때는 말없이 수긍하거나 꽤 오래도록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꿈은 막연한 꿈으로, 아예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현실 속에 함몰되어 갔다. 이십 대 초반, 대학교 신문에 실린 내 소설과 학과 벽에 붙은 내 시를 보며, 내가 쓴 글을 보며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것이 진정 내 실력이고 내 길이라 믿었다. 그때는 어렸고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아니 이미 뭐가 된 줄로만 착각했다.


하루종일 일터에 있으면서 현실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언제든 확 놓아버리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바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

 

난 이것도 저것도 다 움켜쥐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하는 몹쓸 자의식.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헤어짐(우리의 헤어짐은 몇 달 정도이긴 했지만), 나의 이십 대 후반은 캄캄한 어둠만 존재하는 내리막길을 향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와 다시 만나고 급속도로 결정된 결혼, 퇴사.


변화의 물결 속에서 심적으로 답답했다. 특히, 오래 만난 이와의 결혼이라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지만,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을 비워낼 시간, 내 자의식을 덜어낼 시간


그렇게 북해도를 다녀와서 'Fairy tale'의 공식인,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를 가슴에 품고,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십 년간 봐온 남자 친구는 분명 평생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말이다.




P.S.

결혼은 사랑의 완성인가, 아니면 사랑의 무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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