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Dec 21. 2023

프롤로그

나는 집을 떠나고 싶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일상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 했을 때, 나의 원심력이 작동했다. 내 안의 여행벽이 도지고, 자꾸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거였다.


학생 때의 공식적인 수학여행, MT, 농활, 문학답사 등의 여행을 빼고, 개인적으로 여행을 계획해서 떠난 건 스물한 살 때였다. 그 당시의 나는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내 수중에는 시로 대상을 받아 손에 거머쥔 백만 원이 있었다. 당시에 백만 원은 아주 큰돈이었다. 아르바이트비가 시간당 이천 원이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원해서 간 학과였지만, 상상했던 것과 달랐던 분위기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거기에 안주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답답한 집안 분위기.


태풍이 몰아치던 여름 방학의 어느 날(일부러 이렇게 날짜를 정한 건 아니었다. 예약한 날이 하필이면 태풍이 분 날이라니..), 나는 4박 5일간의 일정을 짜서 나를 따르던 동생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태풍의 강한 비바람이 우리를 휩쓸어갈지도 몰랐지만, 의지로 똘똘 뭉친 우리는 비옷을 입고 사람이 없는 제주도의 한 길가를 열심히 걸었더랬다. 그래서일까. 제주도 하면 아직도 비가 퍼붓고 바람이 우리를 떠밀던 그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돌아와서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갔고,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후로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학과 졸업 후, 낮에는 조교로 일하고 야간에는 교육대학원의 수업과 졸업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또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새롭게 임용시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암흑의 시간이었다. 나는 교육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교육자의 마음과 목표의식은 결여된 상태였다. 물질적으로 이 년간 지원해 준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려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집 근처의 학원에 취직했다. 오후 한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쉬지 않고 수업을 하고 돌아오면 한 마디도 하기 싫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싶었다. 시험기간이면 주말에도 나가서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나의 구심력은 자꾸만 밖을 향해 튀어나갔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이 아니면 되는 곳, 이곳만 아니면 어느 곳도 다 괜찮았다.


그때부터였다. 여행은 돈이 많지 않던 내가 누리기엔 사치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란 것을.


나는 몇 년 간,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렸다. 두 달간 유럽 여행하기!

동행자도 구했고, 여행 계획도 함께 세웠다. 모아둔 돈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법적 책임자이자, 나를 아끼는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는 일을 빼고.


아버지는 단번에 외치셨다.


"안 돼! 여자 혼자서 어딜 나간다는 거냐. 그것도 두 달이나. 안 돼. 결혼 허락해 줄 테니까, 차라리 결혼을 해라!"


아버지는 나와 오래된 남자친구의 만남을 반대하셨고, 우린 헤어진 상태였는데 갑자기 결혼을 하라고 하셨다.


"싫어요! 결혼 안 하고 유럽 갈래요!"


살면서 아버지의 의견에 반한 두 번째 사건이었다.

(첫 번째는 대학원이었지만, 자력으로 돈을 벌어서 다니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유럽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나는.... 여행 대신 다음 해,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