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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집을 읽으며

by 서은율


"춤을 춰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춤을 추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

굳이 밝히자면 내 이 모든 병은 후자에 속한다"


-이병률 시인, 시인의 말 중에서





빗속에서 뛰어본 적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였다. 창밖으로 비가 퍼붓는 걸 물끄러미 바라바보다 말고 맨발로 나와 뛴 것이었다. 사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였다. 살면서 딱 한 번 그랬는데, 시집을 펼치고 '시인의 말'을 읽는 순간, 불현듯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다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과정 자체에 몰입하고 즐기는 순간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균형을 지키려고 애를 써왔다. 한쪽으로 치우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건 아이를 키우면서 변한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아이에게 감사하다.)


피아노 선생님은 내게 늘 말씀하신다. 완벽주의 성향때문에 자꾸 긴장하고, 몸이 뻣뻣해지고, 릴렉스가 안되는 거예요. 선생님 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에요. 얼마나 대충대충인대요. 하지만 매번 선생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레슨 날짜를 변경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을때, 나는 괜찮다고 해놓고도 다음날 죄송하다고 못 간다고 문자를 보내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특별한 사정이 생겨서 피아노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습이 안 된 상태로 레슨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매일 한 시간 이상 꼬박꼬박 연습하고, 레슨을 앞둔 날은 몹시 설레었다. 내 마음속엔 잘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많은 열망들로 채워져 있나.

잘하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날씬해지고 싶고, 누군가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그 마음을 다 비워내면, 순간을 살게 된다.



우연히 나를 방문해준 블로거와 이웃이 되고, 그 블로거가 추천해 준 노래 Kristin Chenoweth의 "A house is not a home"을 들으며, 노래가 주는 위안과 행복에 취한다.


빗소리, 노래, 시집 한 권, 맥주.


이보다 완벽한 게 어디 있나. 난 이미 충분한 걸. 다 가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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