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주 늦은 밤, 비가 쏟아지자 그는 나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일층에는 우리뿐이었는데,
비가 하도 굵어서 어둠속에서 하얗고 굵은 실처럼 보였다.
그 비가 우리를 계속 묶어둔 셈인데,
한 번은 운무가 가득한 비를 만난 일이었다
차로 오르고 오르고 한참을 올라 높은 곳에 있었던 우리만의 보금자리,
빗소리를 듣고 싶어 문을 열어두면 고양이가 기웃거렸다
가로등 아래에 모여드는 서늘한 비와 뿌연 운무
턱을 괸 채 그를 바라보면, 그는 기지개를 피듯 몸을 뒤로 젖힌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래도록 함께 하다 보면 말이 아주 많거나 말이 아주 없거나,
너무 편한 사이라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너무 편한 사이라 말이 없어도 괜찮았다.
우린 이렇게 늙어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