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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Dec 16. 2022

영화 ‘HER’

사랑에 실패한 당신이 봐야 할 영화


영화 포스터의 호아킨 피닉스에 시선이 빼앗긴다. 우수에 젖은 듯한 눈동자를 보면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남성의 섬세한 심리 연기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연기한 '테오도로'의 직업은 대필작가로 현실적인 계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닌 감성적인 성향이 빛을 발하는 직업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성적인 성향이 강한 테오도로는 아내와 이혼 소송을 겪는 중 형체 없는 AI와 사랑에 빠진다. 이별의 충격에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인간이 아닌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그를 보며 관객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 된다.


아내와 이혼 소송 중인 테오도로는 여전히 전 아내와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녀와 함께 성장해왔다는 말을 한 그는 그녀와 공유한 시간이 많은 만큼 떠오르는 기억이 많았다. 전 아내와 스킨십을 하며 장난치는 장면이 자주 플래쉬백 되어 홀로 도시 야경을 바라보는 그의 외로움은 더욱 극대화된다.


그렇게 외로운 밤과 투쟁하던 나날을 보내는 중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쾌활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사만다'라는 여성이다. 유머러스하고 눈치 빠른 그녀는 테오도로가 원하는 이상형을 담은 맞춤형 AI 로봇이었다. 허스키한 웃음소리를 가진 스칼렛 요한슨이 사만다의 목소리를 연출했다.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목소리에 고독한 영화의 분위기는 생기발랄해진다. 이내 관객은 남자 주인공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농담을 잘하는 사만다로 인해 테오도로는 웃는 날이 많아진다. AI라는 거부감은 사라지고 사랑하는 여인을 향하는 마음처럼 그녀의 매력 빠져든다. 남자의 취향 옵션으로 만들어진 사만다는 밝고 쾌활했으며 철학적인 대화로 그를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도 사만다는 신체가 없으니 호르몬이 없다. 전 아내와 달리 감정 기복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테오도로에게 정서적으로 완벽한 짝이었다. 이번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할 만큼 사랑스러운  상황이 이어지지만 결말에 도달할 때즘이면 역시 사랑은 어려운 것이야 하는 감상을 남기게 된다.


사만다 덕에 밝아진 테오도로는 미루던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기 위해 전 아내를 만난다. 사뭇 달라진 테오도로의 분위기를 눈치챈 그녀는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곧 그로부터 AI와 데이트를 한다는 답을 듣게 된다. 운영체제와 연애를 한다는 대답에 그녀는 화를 내는데, 질투하는 걸까 싶다가도 다음 그녀의 대사를 들으면 질투만이 아닌 듯했다.


"당신은 진짜 감정을 감당 못한다. 그리고 서로 맞춰가기보다는 순종적인 아내를 원하지.", "AI는 그런 당신에게 딱 맞는 짝이다"


라고 하며 비아냥댄다.


 뒤이어 나오는 장면에는 테오도로가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자신의 마음이 약해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걸까 라는 말을 한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전 아내 말대로 사랑을 감당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일까. 이쯤에서 영화 제목이 주체가 되는 주어 'SHE' 가 아닌 대상이 되는 'HER' 인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가 말하는 ‘진짜 감정’과 ‘관계’는 무엇일까. AI가 아닌 인간과 교류만이 진짜인가. 그러나 그녀가 덧붙인 말인, 서로 맞춰가기보다는 순종적인 아내를 원한다는 말에 유추해보면 테오도로는 인간인 아내와 진짜 감정을 만들지 못했다. 제목이 HER인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그는 상대를 같은 주체 선상에 두지 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본 것.

남이었던 둘이 합해지는 과정에서 전쟁 같은 시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했던 테오도로는 갈등을 견디기 힘들었고 대신 자기가 바라는 모습에 상대방에 맞추어 주길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테오도로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사랑에 빠진 AI 사만다가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얘기를 하며 인간이 하는 것처럼 숨 가쁜 호흡을 내뱉자 테오도로는 산소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인데 왜 연기하냐는 말로 상처 준다. 인간을 부러워하는 로본 사만다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테오도로는 아마도 사만다의 인간인 척하는 연기가 아내가 한 말인 '가짜 감정'이라는 말에 닿아 사만다가 AI라는 현실에 낙담한 감정을 잘못 표출했을 거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테오도로는 애초부터 사만다가 인간인 척하는 AI라는 걸 알고 시작했다.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은 테오도르를 향한 마음 때문에 강해진것이다. 그와 더 깊은 사랑을 맺고 싶던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대상이 아닌 그녀 자체로도 주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든 성향이 내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AI와 사랑에 빠지는 SF 설정이 가능하게 했다. 이상적인 상대방 역할로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AI를 이용해 사랑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인간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으로만 움직인다면 번식이 불가능한 AI와 사랑에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운영체제와 사랑을 한다는 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나온 내용처럼 인간은 감히 유전자에 반기를 동물이라는 것.


사만다를 향해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테오도로를 보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인간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었다. 이래서 SF 로맨스를 본다!



운영체제 진화를 위해 사만다는 테오도로를 떠난다. 테오도로 홀로 도시 야경을 바라보는 모습이 다시 연출되는데 또다시 집에서 덩그러니 창밖을 바라보는 테오도로지만 전과는 다른 테오도로다. 전 아내 캐서린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모습에서 자신의 사랑방식에 곰곰이 생각하고 깨우친 듯했다.


테오도로가 바라보는 고층 빌딩 속 또 다른 테오도로들. 함께 있어 괴롭고 또 혼자 있어 외로워 한 건물에서 각자 빛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사랑에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붙게 되는 우리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닌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고 서로를 사랑의 주체로 존중한다면 우리도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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