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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May 12. 2020

나의 집


어린 아들 셋을 키우는 여동생이 좁은 서울 아파트 생활을 견디지 못해 마당 넓은 친정으로 짐 싸서 아이들과 내려간 지 한 달. 눈 뜨면 마당에서 흙을 파고, 점심 먹고 다시 마당에서 흙을 파는 사촌들이 부러워 몸부림을 치던 아들이 혼자라도 버스에 태워서 자기를 내려 보내달라고 조르는 통에 아이를 내려 보낸 지가 여흘이 넘었다. 학교 온라인 수업도 들어야 하고, 3학년인데도 맞춤법 다 틀리고, 책 한 권 읽기도 힘들어 하는 빈약한 독해력을 지닌 아들을 마냥 둘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주말에 아이를 데리러 내려갔다.  

비가 왔다.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멀리 소쩍새 소리가 섞였다.

아이의 외가, 그러니까 내가 나고 자랐고, 나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또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짓고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나고 자란 집. 아주 오래된 한옥. 기와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수가 섬돌 아래 무늬를 만드는 집, 송홧가루 노랗게 앉은 대청마루를 시시때때로 쓸어야 하는 집,  저 멀리서 아득히 들리는 소쩍새와 두꺼비 울음이 뒤안의 산벚꽃을 피어올리는 곳,  저녁이면 오래된 소나무향과 흙냄새가 살 속을 파고드는 집, 노오란 오후의 햇살이 고요하게 스며드는 집, 수 백 명 사람들이 나고 자라 오로지 나만의 집일 수 없는 나의 집,  나는 그 집에서 나고 자랐다.  


생에 처음 마주한 집은 폐허였다. 무너지는 돌담과 박쥐가 날아드는 안채, 쥐똥이 나뒹구는 별채.  잡목이 뒤엉킨 뒤안. 밤이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서워 방문도 열기 무서웠던 집. 산골의 찬바람에 바르르 떨리던 문풍지와 윗목에 놓아둔 걸레가 꽁꽁 얼어붙는 냉골의 방들, 서울에서 할아버지들이 내려오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피고, 두 세 겹 장갑을 끼고 꽁꽁 언 얼음을 깨서 빨래를 하는 엄마와 그 엄마를 보며 딴 꿈을 품은 딸이 있던 집. 비가 오면 담이 무너질까 비를 맞으며 비닐로 담을 감싸던 어린 남매가 살던 집. 내 아버지의 집이었지만 내 아버지만의 집이 아니었던 집.


이 폐허에 처음 관심을 가져준 이는 노랑 머리 군인이었다. 사람들이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던 그때에 이 집은 아버지를 옥죈 족쇄였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 버릴 수도 없었던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가방을 쌌다가 풀기를 반복하셨다. 수 십 명의 노동으로 지탱되던 아름다운 집에는 도시에서 온 젋은 부부와 그의 아이들만 남아 집과 함께 허물어져갔다. 어둠 속에 웅크린 짐승같은 집,  거대한 폐허가 무서워 친구들도 놀러오지 않던 집에서 젊은 아버지는 테니스를 치고  술을 마셨고, 젊은 엄마는 눈물겨운 노동을 했고, 어린 우리는 집과 함께 유폐될까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 군복을 입은 그가 사진기를 메고 홀로 그 집 안마당으로 걸어들어왔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아버지와 짧은 영어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올려다 보며 그가 살았을 먼 나라와 그의 어깨에 걸쳐 진 사진기를 생각했다. 그는 어째서 이곳에 와서 허물어져 가는 이 집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일까? 그가 사는 먼 나라에서 내 이름은 무엇으로 발음될까? 이 땅을 파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나라로 떨어질 수 있을까? 땅을 파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하늘은 좁고, 산은 깊기만 했다.


내가 커가는 내내 집은 공사중이었다. 썩은 써가래와 기와를 갈면서 우리가 과거에 유폐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집을 개조했다. 맏딸이 4학년이 되기 전에 서울로 가겠지, 중학교는 딴 데로 가겠지, 라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나를 설레게 하는 날도 간혹 있었지만, 마당에 풀을 뽑고, 손님 대접을 하고, 제사를 지내고, 일 년에 몇 번씩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해대는 엄마를 보며 막연히 그것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평범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풀을 매고 꽃을 심고, 텃밭에 야채를 기르고, 마루를 닦고 또 닦을 수록 집은 점점 윤이 났고 기품있게 아름다워졌다. 아름드리 대들보에 거미줄이 걷히고, 꽃문양의 창살에 햇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언론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는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해댔다. 그러나 집이 아름다워질수록 엄마의 몸은 닳아갔다. 수 십 명의 노동에 기대어 지탱되는 '과거의 집'은 오늘날의 삶의 양식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긁힌 자개장을 엎고 셋방살이를 하는 것처럼 과거의 영화가, 과거의 영광이 현실에서는 턱턱  숨이 막혔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랜드로바를 타고 모랫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금발의 여성이 흘린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막의 소녀 가 있었다. 한 순간, 강렬하게 각인 된 그 한 장면을 마음에 품고 파리로 건너가는 그 소녀의 여정(르 클레지오, 사막)을 읽으며, 행랑 앞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올라다 보았던 그 노랑머리 군인을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내딛는 섬세한 발걸음과 주위를 둘러보는 경이에 찬 눈길,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내리던 우리집을 아름답게 알아봐준 그 눈길이, 그리고 그 눈길을 되돌려 그가 떠나 온 먼 곳을 그리워하는 꼬마가 있던 한낮의 풍경이 오래토록 잊히지 않는다.

별채 마루에 앉아 봄비에 떨어진 꽃잎을 보며 마룻장을 쓸어보았다. 오래 전에 이 마룻장 위를 걸었을 수많은 사람들이 숨결이  습기를 머금은 소나무 속에 숨어들어 있을 것 같았다. 똑, 똑, 똑, 똑,

언제나 그립지만 떠나고 싶은 . 그리움과 떠남,  것과  것이 아닌 것,  중간에 서서 그리워한다. 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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