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겪은 후 삼년만에 12살 둘째는 체험학습을 간다. 엄마인 난 체험학습을 반기다 이내 도시락 지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떤 도시락을 싸줘야 하지?'
'김밥?, 유부초밥?, 주먹밥?'
체험학습 날짜가 다가올수록 틈틈히 고민을 했다.
첫째는 딸이라 아기자기 싸주었던 예전생각하면 남자아이인 둘째에겐 어떤 도시락이 좋을지 고민이다. 이렇게 고민인건 도시락을 너무 오랜만에 싸기도 한게 한몫한듯 하다.
4년전 첫째아이 도시락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포켓몬이다.
'맞다. 포켓몬이 있었지.'하며 찾던중 맘에드는 아이템을 골랐다. 아이도 좋아하고 나도 만들기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포켓몬 마스터볼 김밥을 선택하고 둘째에게 물어보았다. 마스터볼은 내가 아는 빨간색 하나가 아니였다. 보라색도 있고 파란색 각각의 업그레이드 된 마스터볼이 또 있다고 한다. 고민은 이 아이템들의 색을 어느 식재료에서 찾느냐이다.
여러 다른 아이템들을 찾아보다 마카롱을 만들며 사용하던 식용색소가 생각났다. 마침 원하는 색들도 구비되어 있다. 김밥만 말면 된다는 생각에 재료를 구매하고 체험학습 당일이 되었다.
들뜨는건 아이보다 나다. 왜그러지?마스터볼 김밥 만들 생각에 설레나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서두른다. 밥솥부터 확인하고, 김밥 재료를 챙겨 계란 지단도 부치고 들어가는 가짓수만큼 분주하다.
밥솥 알림소리에 맞춰 참기름, 깨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반듯해 보이는 김 한장 바닥에 깐다. 고슬고슬하게 따뜻한 밥을 한주걱 올려 얇게 핀다. 김밥 재료 가짓수 세어가며 돌돌 말아주어 한켠에 잠시 둔다.
체다 치즈와 미리 색을 입혀둔 슬라이스햄을 꺼내었다. 김밥 크기에 적당한 무언가를 찾으려 싱크대 안을 두리번 거렸다. 적당한 커터가 없다. 이 부분까지 생각 못했다. 찍어낼만한게 없을까?하며 평소 잘 안쓰던 싱크대 상단까지 열어보았을때 눈에 띄는게 있다.
와인잔. 끝이 얇에 오므러져 최적이다. 치즈와 햄을 나란히 두고 와인잔으로 찍었다. 반듯한 원모양이 맘에 든다. 김을 가위로 잘라 한바퀴 돌려 꼼짝못하게 김밥을 에워쌌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굵은 빨대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없다. 이번엔 싱크대 서랍장을 두리번 거린다. 눈에 딱 걸린 약통.
그래 이거다. 약통 뚜껑이 당첨이다. 일이 왜이리 술술 풀리지? 뭔가 잘되고 있는 기분이다. 마무리로 약통 뚜껑으로 찍은 치즈까지 올려주니 그럴싸하다.
완성시킨 포켓몬마스터볼을 보니 아이가 좋아할 생각에 엄마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먼저 일어나 등교 준비하던 첫째가 한마디 한다.
"와~이렇게 극과극일수가. 난 시험보느냐 힘든날인데 00은 체험학습 가느냐 좋은날이잖아. 엄마는 중간에서 기분이 이상하겠다. 00가 이거보면 엄청 좋아할거같은데? 암튼 엄마 이거 어디든 꼭 자랑해. 나도 예전에 엄마가 해준 도시락 엄청 좋았었거든..."
그리곤 이내 둘째 아이도 부스럭 소리에 잠에서 깼다.두리번두리번 식탁을 확인하더니 도시락을 들여다보곤 씨익~ 웃는다. 무언가 맘에 들때 번지는 미소다.
그렇다. 첫째 아이의 말에 담긴 정서. 그당시 느꼈던 도시락의 좋은 기억들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잘 안되지만 좋았던 기억들의 순간들이 현재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둘째 아이에게도 힘든 순간순간을 이겨낼수 있는 힘이 될수 있을지 모르지만 엄마의 정성으로 스며드는 정서로 든든한 한끼가 되어주기를 바래본다.
'그런데 그거 아니?너희는 엄마가 해준 도시락에 고마워 했지만 사실 내가 더 고맙다는거 말야.
너희가 있어 도시락 만드는 기쁨을 내게 주었잖아. 만드는 동안 엄마가 더 행복했단다. 고맙고 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