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목민, 떠도는 게 지겨워지다

세 대륙을 오가면서 살았던 역사학 박사생이 지난 10년을 성찰하는 이야기

by 반야

나는 뉴욕에서 중세 후기 오스만 역사를 공부하는 박사생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22살 때까지 한국에서만 살았다. 하지만 별안간 이역만리 아나톨리아에서 번성했던 오스만제국에 꽂혀버렸다. 이후 약 10년 간 한국과 미국, 튀르키예, 오스트리아 4개국을 전전하며 유학생 노릇을 했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 세월만 합쳐도 어언 6년. 이제 전 세계 그 어느 곳에 가도 집처럼 편안하지 않고, 처음 간 여행지처럼 설레지도 않는다.


열정과 호기심이 하늘을 찌르던 20대에는 역사학자 특유의 장똘뱅이 같은 삶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남의 돈으로 지구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전 세계에서 온 연구자들과 외국어로 교류하고,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고서들을 연구할 수 있다니! 이만큼 간지 나는 직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교환학생 2년, 석사 3년, 그리고 박사 2년을 마무리한 지금, 유목민 같은 삶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거주하는 도시가 해마다 바뀌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은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지독해졌다. 한국에서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과는 소원해졌고, 해외에서 만난 인연들은 덧없이 스쳐갔다. 외국어로 생활하다 보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에 시달렸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친구들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꼈고, 대학원생으로서 마주한 불투명한 미래에 압도당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지도교수님께 혼나지 않을 만큼만 공부하고, 박사 동기들에게 창피하지 않을 만큼만 연구하고, 학교에서 받는 돈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일했다.


박사 2년차를 마치고 사료조사를 빙자해 이스탄불에 왔다. 연구할 사료들과 유적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무기력하고 비생산적인 생활은 여전했다. 오전 대부분은 호텔 방에서 하릴없이 흘려보냈고, 오후가 되면 호텔 로비나 인근 카페, 도서관에 들러 간단한 작업을 했다. 오늘도 아침 내내 호텔에 머무르다가 문득 지겨워져 별다른 목적 없이 길을 나섰다. 하염없이 차도를 따라 걷던 중, 불쑥 자괴감이 엄습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이 의문은 당장 낭비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난 무엇을 위해 낯선 땅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를 시작했을까? 과거의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즐거웠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 탈진했을까?


호텔에 돌아오고 나서, 글을 통해 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공부 외의 모든 행위를 사치로 여겼다. 자기 고백적인 에세이를 한국어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쓰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충동적으로 시작한, 잠깐의 일탈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이렇게 방치하다가는 어느 순간 영영 학문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내 삶을 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어느 역사학도가 적는 비망록이자 참회록이다.


2025년 6월 4일

이스탄불 에미노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