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전공의 이상과 현실: 프롤로그
난 어린 시절부터 장래희망에 퍽 진지한 타입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게 어린이들의 꿈이라는데, 타고난 덕후 기질 때문인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진로를 한 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고 오랫동안 파고들었다. 그래서 어릴 적 장래희망의 변천사가 비교적 명확하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풍경화가를, 2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천문학자를,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는 소설가를 꿈꿨다.
진로를 천문학자에서 소설가로 바꾸는 일은 내 나름대로 꽤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내 부모님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진보적인 분들이라, 딸이 정한 진로가 무엇이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엄마는 천체관측 망원경을 사 주셨고, 아빠는 함께 천문학 서적을 공부하고 밤하늘을 관측하러 다녀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냥 어린아이의 장단을 맞춰 주신 것이었고, 공대 출신인 아빠는 딸의 꿈을 당신의 취미생활로 즐기셨던 것이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는 꿈을 작가로 바꾸는 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눈물 젖은 장문의 편지를 엄마께 남겨서 양해를 구했다.
책벌레로 유명했던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소설을 읽으면 현실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감각적인 체험을 선사하는 문학 특유의 언어에 매료되기도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권씩 책을 읽었고, 틈만 나면 공상에 빠졌다.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재들을 습관처럼 적어 두었다. 그렇게 적어 놓은 메모들 중 일부는 습작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물론 끝까지 완성한 작품은 몇 편 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고 원칙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타고난 "쌉T"였다. 내가 몸소 경험하지 않았거나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은 글로도 서술하지 못했다. 내게 특히 어려웠던 것은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묘사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사랑"은 완전히 불가사의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사랑"은 인물들이 극도로 비합리적이고 과장적으로 행동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그렇게 신경을 거스르는 현상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엄마께 내가 쓴 소설 한 편을 보여드렸다. 엄마께서는 "잘 쓴 글이지만 문학이라기에 너무 냉철하고 논리적"이라고 평가하셨다. 소설보다는 차라리 르포나 논술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이 발언은 내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공상을 즐기고 서사를 사랑하며, 표현의 아름다움을 좇는 것 외에, 소설가가 되려면 또 무엇을 갖추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엄마의 말씀을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다. 실제로 중학생이 되어 읽은 소설에서는 "사랑"이나 "집착, " "자기 연민"과 같은 논리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감정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내게는 꿈을 이룰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글쓰기를 멈췄다. 돌이켜 보면 내가 서사문학에서 좋아했던 것은 인위적으로 창조된 세계에서만 가능한 인과적 완결성, 그리고 문어(文語)만이 가진 구조적 정합성이었다. 고전주의 미술이나 음악이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결벽적인 완전성을, 나는 언어예술의 틀 안에서 좇고 있었던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라면 모를까, 21세기에 품기에는 다소 촌스러운 꿈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꿈 없이 지내기를 1년,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처음으로 사회 과목에서 독립된 국사 과목을 배우게 됐다. 그때까지 나는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역사책들은 고전적인 영웅담 형식의 위인전이거나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연대기뿐이었다. 한마디로 극도로 지루하고 멋없는 장르였다. 무엇보다 나는 암기에 아주 취약했다, 연도를 줄줄이 외워야 하는 (혹은 그래야 한다고 여겨지는) 역사 과목은 나에게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내가 뒤늦게 외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 나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과목은 아예 건드리지 않는 학생이었다. 암산이 필요한 수학이나 물리 같은 과목을 특히 싫어해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종종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뼛속까지 이과였던 아빠에게 영혼이 털릴 정도로 놀림을 당했다. 한동안 이름 대신 점수로 불리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과목만 선택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숫자에 약했던 내가 국사를 암기하기 위해 택한 전략은, 교과서에 서술된 인물과 사건들을 인과관계에 맞춰 다시 구조화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메이지유신(1868), 강화도조약(1876),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5), 임오군란 (1882.7),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1882.10), 조일통상장정 (1883.7), 갑신정변 (1884)을 하나의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으로 간주하고, 일본, 청나라, 서양열강 그리고 각 외세와 결탁한 조선 내 정치 세력들을 각 사건을 주도하는 "등장인물"로 설정했다. 그렇게 해석하니 연도만 놓고 보면 전후 관계가 모호했던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그 순서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자기 완결적인 플롯을 이루었다.
바로 그때, 나는 역사가 내가 추구하는 미학을 실현한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서사문학에서 내가 추구하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 "역사"란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서술된" 역사를 말한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사회 질서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제2의 세계를 체험한다. 이 세계는 저자가 선택한 주제에 따라 불필요한 변인이 통제되어 있다. 저자는 특정한 주제 또는 주인공을 선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인과적으로 상당히 "그럴듯한" 서사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읽는 이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정제되고 설득력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한편으로 역사는 소설에 비해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장식적인 언어 사용을 자제한다. 그래서 내가 꺼려했던, 인물들의 감정선을 강조하는 일이 드물었다. 무엇보다 역사는 철저히 사료를 근거로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그 자체로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글이었다. 나는 마침내 내가 즐길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역사 전공을 택하는 여느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다소 독특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