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인생에서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 엘 우즈: 제 이름은 엘 우즈고 하버드 입학을 위한 비디오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왜 제가 엄청난 변호사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할게요. 저는 여학생 클럽 대표로서 기숙사 화장싷 휴지의 품질이나 브랜드처럼 매우 중요한 이슈를 주도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연애 드라마에 관해서라면 세부 사항을 모조리 기억할 수 있죠. 저는 일상 생활에서도 법률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합니다. "(캣콜링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제게 한 표를 주셔야 할 이유입니다.
- 심사위원들: 패션 전공이라고요? 음, 우리 학교에 한 번도 없었던 전공이군요. 우리는 항상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그녀의 과외 활동 목록은 인상적이에요. 리키 마틴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고, 음악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그리고 여학생 클럽의 자선행사를 위해 인조 모피 팬티를 디자인했다는군요. 동물들의 친구이자 박애주의자이기도 하다니. 그래요 엘 우즈, 하버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비디오 에세이 장면
입시업무는 편해졌다. 예전에는 서류심사를 맡은 교수들끼리 자기소개서와 성적표의 이면을 읽어내려 고심을 거듭하며 밤이 깊도록 의견을 나누곤 했지만, 이제는 정량점수로 큰 줄기가 가려지고 자기소개서에는 별 내용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적어졌다. 거짓 자기소개서에 속을 위험도 적어졌다. 입시의 예측가능성도 높아졌고 입시 불공정에 대한 비판도 수그러졌다. 우려했던 부작용은? 장학금 신청자가 줄어드는 걸 보니 유복한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블라인드 선발이니 잘 모른다. 특목고와 8학군 소재 고교 졸업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이제 출신고교는 못 밝히게 하니 잘 모른다. 잘 모르니 마음도 편하다.
하지만 지난주 입시설명회에 몰려든 학생들을 보니 억누르던 의문이 다시 비집고 올라온다. 서류심사를 맡은 교수들이 자기소개서를 돌려 읽으며 밤늦도록 토론하고 고민하던 그 열정은 불공정한 것이었을까? 정량 위주로 줄 세우는 것만이 국민들이 믿어주는 공정일까? 오히려 그것이 구조화된 불공정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천경훈, <그 말을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법률신문 칼럼 중.
초식동물인 소는 원래 근내 지방(마블링)이 생기지 않는다. 소의 지방은 근육 ‘사이’에 낄 뿐이다. 그런데 소가 풀이 아니라 ‘옥수수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지방이 팽창하여 근육 사이를 파고든다. 과거 미국은 남아도는 옥수수 사료를 처리하기 위해 소에게 먹였고, 곡물업자들로부터 막대한 로비를 받은 미국 농무부는 ‘마블링’ 등급제를 실시했다. 등급제 전에는 ‘기름 많은 소고기'였던 것이 등급제 후에는 ‘좋은 소고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풀 먹인 소’의 고기는 낮은 등급을 받았다. 이제 시장에서는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곡물 사료를 먹이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최대한 좁은 공간에 가두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소가 아프다. 그 소고기를 먹은 사람도 당연히 아프다. 그럼에도 그 소는 ‘등급’이 높기에 좋은 소다.
게다가 ‘미국 소에 질 수 없다’는 한국인의 괴상한 의지는 미국에서 최고급이 ‘프라임’ 판정을 받은 소고기는 감히 넘보지도 못할 1+급을 만들더니, 심지어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를 1++급까지 탄생시킨다. (참고로 미국 사람들도 잘 안 먹는다는 ‘프라임’은 한국에서는 1, 2등급 사이다.) 더 많은 옥수수 사료를 먹이고 더 많은 항생제 주사를 맞은 소지만, ‘청정한우’ ‘명품한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높은 가격에 팔린다. 정육점에 가서 2등급이나 3등급 소를 찾으면 ‘우리 가게엔 그런 질 낮은 고기 없습니다!’라고 한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등급’으로 포장되면 속수무책이다. 마블링의 사례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영역에까지 자본이 들어갈 경우, 얼마나 많은 기이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소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블링’으로 평가할 이유는 없다. 한국의 대학도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평가기준을 선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