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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신해철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모두 공범일뿐 누구를 위한 발전이고 진보인가

이 글과 함께 감상하면 좋을 미술작품들


"The Elephants" by Salvador Dalí (1948):


설명: 다리가 길쭉한 코끼리를 초현실적으로 묘사한 달리의 작품은 기존의 현실을 거스르는 꿈 같은 자유를 상징하며, 가사에 표현된 것처럼 개인의 해방과 정신적 제약의 타파에 대한 열망을 반영합니다.





"The Elephant Celebes" by Max Ernst (1921):


설명: 에른스트의 그림은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을 결합하여 가사에 표현된 순응주의에 대한 투쟁과 개인의 정체성 찾기처럼 논리적 해석을 거스르는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Freedom" by Zenos Frudakis (2001)


설명: 이 조각 시리즈는 제한에서 해방으로의 여정을 상징하는 벽에서 서서히 자유로워지는 인물을 묘사한 것으로, 개인의 혁명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주제를 반영합니다.







신해철과 넥스트의 가사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속에 나를 숨기고> 

 이 발췌문은 부모, 학교, 또래 친구들이 설계한 미리 정해진 길에 순응하라는 사회의 압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순응에 맞서 개인주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을 강조합니다. "싸워라! 자유로워져라!"라는 외침은 사회적 기대, 즉 '껍데기'에서 벗어나 개인의 성장과 자기표현을 우선시하는 마음의 혁명을 일으키자는 영감을 주는 집회입니다. 

 인생을 울창한 숲을 통과하는 길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가능성을 무시한 채 앞서 간 사람들이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갑니다. 여기서 '껍데기'는 사회적 기대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장벽과 같아서 우리를 이미 만들어진 길에 가두어 탐험과 개성을 표현하지 못하게 합니다. "싸워라! 자유로워져라!"라고 외치는 것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수풀을 헤치고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모님이 계획한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는 대신 세계를 여행하며 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선택해 기대라는 '껍질'을 깨고 안정 대신 열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혁명'하는 한 젊은 예술가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이 인용문은 성인이 되는 것, 특히 부모의 역할에서 오는 뿌리 깊은 두려움과 책임감을 깨닫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부모가 직면했던 한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인정합니다. 이 구절은 종종 무언의 두려움과 희생, 부양에 대한 부담감, 너무 늦게 찾아올 수 있는 세대 간 이해의 주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처음 둥지를 떠난 새끼 새가 처음에는 어떤 위험과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성숙함에 따라 부모의 보호 행동을 제한이 아닌 경험과 관심에서 비롯된 필요한 조치로 이해하게 됩니다. 새의 미래 자손은 한때 부모에게 원망했을지도 모르는 비슷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화자는 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짊어졌던 두려움과 책임의 무게를 깨닫게 되고, 이것이 아버지와 자식 모두에게 절제된 자유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화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려움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세대를 거쳐 계속되는 소리 없는 희생의 순환을 암시합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난 너에게 머물렀던가 연인에서 타인이 되기 위해 넌 그렇게 서둘렀던가 갑자기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이 당신에게 속삭일 때 이제는 더 이상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죽는 날 까지 헤어질 수 없는 친구일 뿐이다.> 

 이 인용문은 어린 시절에서 성인이 되는 과정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문득 외로움을 깨닫고 외로움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합니다. 화자는 외로움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외로움을 평생의 동반자로 인식하라고 조언합니다. 

 외로움을 때로는 작고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때로는 길고 압도적으로 평생 동안 당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그림자처럼 외로움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존재하며, 특히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나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절된 느낌을 받는 군중 속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이나 직장을 위해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는 경우, 물리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여전히 깊은 고립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외로움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것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포용하라는 화자의 말처럼 연결과 커뮤니티를 찾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섹션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를 우뚝 솟은 산에 비유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합니다. 부모를 무결점 거인으로 우러러보던 자녀가 성장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인생의 성장 단계를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키가 커진다는 것은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자율성과 개인적인 야망의 발달을 상징합니다. 

 광활한 숲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를 생각해 보세요. 묘목일 때는 그 그늘 아래에서 자라며 나무를 영원한 보호자이자 힘과 안정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키가 커지면서 나뭇가지 너머로 하늘과 숲의 나머지 부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를 영웅이 아닌 한계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의 잠재력,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언젠가는 자신이 한때 우러러보던 나무처럼 웅장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롭고 야심차게 살고자 하는 열망은 새가 날아오르는 비유로 표현됩니다. 이는 진정한 성숙과 인간으로서의 삶의 시작은 수염과 같은 신체적 성인의 징후가 아니라 개인의 야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깨어나는 데서 정의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겠다는 의지를 의미합니다. 

 절벽 끝에 서서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내려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날아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 도약은 기대의 중력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개인의 선택을 상징합니다. 독수리가 힘들이지 않고 활공하듯, 여러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흐름을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자유와 야망의 성장이라는 비행의 은유는 날개를 펼치는 것과 같으며, 평범한 일상을 뛰어넘어 개인적인 성취와 만족의 경지에 도달할 준비를 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버스에 올랐지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네 집을 떠나올 때엔 마음은 무겁고 (우)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네 어머니는 나에게 슬픈 눈으로 꼭 그래야만 하느냐 했지 (아)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누군가가 내게 준 걸 따라간 것뿐> 

 화자는 집을 떠날 때의 망설임과 무거운 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다가 돌아왔음을 암시한다. 이 귀환에는 체념의 느낌과 함께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에 대한 주체성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익숙한 항구에서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의 안내에 따라 미지의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파도를 넘을 때마다 바다의 고립감이 당신을 짓누르고, 고요한 바다는 결심과 의심이 뒤섞인 내면의 혼란을 반영합니다. 결국 배를 돌리면 멀리 보이는 고향 항구의 스카이라인이 출발점으로의 귀환을 알립니다. 돌아가는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귀환이 아니라 과거의 선택에 대한 은유적인 반성을 의미합니다. 마치 여행자가 다른 사람이 선택한 길을 되돌아보며 그 목적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은 경험은 여전히 소중하고 성장의 일부였음을 깨닫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시간은 이렇게 조금씩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이 구절은 꿈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와 그로 인해 종종 수반되는 실존적 고독에 대해 고찰합니다. '사라질 뿐'이라는 궁극적인 망각과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덧없음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것을 제안합니다. 마지막 대사는 목적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삶을 강조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 후회 없는 평화로움을 전달합니다. 

 인생을 양쪽 끝에서 타오르는 촛불로 시각화하고, 그 불꽃은 사람이 품고 있는 꿈과 열망을 상징합니다. 촛불은 맹렬하게 타오르며 빛과 따뜻함을 제공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명이 짧아집니다. 이 은유는 자신의 존재를 소모하는 꿈을 좇는 아름다움과 희생을 요약합니다. 꿈을 붙잡은 개인은 돌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도 없는 탐험가처럼 두려움 없이 피할 수 없는 끝을 마주하며 홀로 서 있습니다. 모든 산을 정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마지막 시간이 다가와도 후회 없이 잘 다녀온 길, 잘 살아온 인생에 대한 만족감만 품게 됩니다. 



 <회색 빛의 빌딩들 회색 빛의 하늘과 회색 얼굴의 사람들 This is the City Life! 한 손엔 휴대 전화 허리엔 삐삐 차고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fast food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 바늘 보면서> 

 인용한 부분은 단조롭고 단조로운 도시 생활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회색의 반복과 건물, 하늘, 얼굴과의 연관성은 도시인의 획일화와 비인격화를 상징합니다. 이 구절은 일상의 편리함과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추격으로 특징지어지는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일상의 고단함을 요약합니다. 

 거대한 공장의 거대한 조립 라인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근로자가 획일화된 모습으로 상업과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조립 라인을 상상해 보세요. 집은 단순한 휴식 공간으로, 작업장은 전쟁터로, 노동자들의 삶은 기능과 효용에 따라 구획화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가공된 생계 수단으로 연명하며, 효율적이지만 생동감이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시계의 거침없는 행진을 한눈팔지 않고 지켜봅니다. 이는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끝없이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여 마치 움직임과 흥분이라는 환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목적지나 경로의 의미 있는 변화 없이 똑같은 반복적인 순환의 여정에 묶여 있습니다.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자판기 커피 한잔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앉아 점점 빨리 가는 세월들 This is the City Life!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이 코너는 도시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친 직장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숙취에 시달리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은 기업의 기계 안에 갇힌 기계 부품처럼 묘사됩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과 조용하고 외로운 군중은 도시 생활의 고립되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합니다.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있는 미니어처 사무실 안에 인간 직장인과 비슷하게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들이 놓여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인형들은 약간 구겨진 비즈니스 복장을 하고 작은 커피잔을 들고 인형 크기의 도시 풍경의 우뚝 솟은 구조물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유리 상자 밖의 관찰자가 보기에 이 인형들은 움직임은 있지만 생동감이 없고, 가까이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관찰자는 이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고독한 일상에 갇혀 있는 실제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개별적인 이야기는 도시라는 집단적 존재의 웅성거림에 묻혀버립니다. 시계의 빠른 바늘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속도는 개인에게 숨 쉴 틈도, 사색할 틈도, 소통할 틈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제는 쉽게 살라고도 말하지 힘겹게 고개젓네 난 기억하고 있다고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 노래의 이 구절은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한 인간 정신의 회복력을 이야기합니다.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꿈은 끊임없이 떠오르며 희망과 열망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상징합니다. '절망의 껍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장벽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이는 자신의 목표를 기억하고 쉽게 안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인생의 장애물을 상징하는 포장 도로가 갈라지는 마라톤 선수를 상상해 보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지쳐서 결국에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가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꿈과 야망을 상징하는 결승선에 대한 비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라고 충고해도 러너는 자신이 왜 레이스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들의 꿈은 폭풍우 속에서도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며 절망의 구름을 뚫고 높이 날아오릅니다. 모든 선수들은 쓰러지는 순간을 다시 일어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고, 내면에 꿈이 숨 쉬는 한 포기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이 글에서 작가는 도시 익명성의 역설, 즉 도시 생활의 표면적 획일성과 각자의 내면이 지닌 개성이 병치된 모습을 묘사한다.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악수와 같은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각자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숙취로 인해 피를 흘리며 간호하는 사람, 술에 취해 일시적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에서 신체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먼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를 상점 쇼윈도의 마네킹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악수하며 기계적 연대의 표시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네킹들이 실제로 살아난다면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는 마치 만원 지하철의 승객들이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각자 기쁨, 슬픔, 희망, 두려움 등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밤의 과음으로 눈이 침침해진 사람들의 이미지는 취기의 안개 속에서 잠시 피난처를 찾지만 다시 고립된 도시 생활로 깨어나 현실의 외로움과 단절감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를 대변합니다. 


 <우리 지난날의 꿈들이 이제 다시 너 떠나갔던 빈자리에서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네 우리 하나둘씩 흩어져 세월 속에 흐릿하게 잊혀져 간 약속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네> 

 이 구절은 한때 공유했던 꿈이 누군가의 떠남으로 남겨진 부재 속에서 다시 불타오르는 그리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흩어진 관계의 파편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는 약속들 사이에서도 기억은 지속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화자는 유대가 해체되고 과거의 약속이 희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꿈과 서약에 대한 기억에 집착하며 그 중요성과 한때 소중하게 여겼던 것에 대한 애착을 강조합니다. 

 과거 공연의 메아리가 공중에 남아 있는 낡고 버려진 극장을 상상해 보세요. 한때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꿈을 지켜보던 관객들로 가득 찼던 객석은 이제 텅 비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 숨 쉬던 꿈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관객이 흩어진 빈자리를 채웁니다. 극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서서히 잊어버린 약속과 꿈의 메아리를 간직하고 있는 심장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무대와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는 그 꿈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조용한 방 안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억과 꺼지지 않는 희망이라는 연료에 의해 다시 한 번 타오를 가능성을 품고 깜빡입니다. 



 <2>Part 2.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 The World we made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 보단 나아졌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어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 가. 그 어느 누구도 비난 할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이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사회의 발전과 진보가 진정으로 유익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특히 '폐허가 된 백화점'과 '끊어진 다리'에 대한 언급은 무분별한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패와 파괴를 상징하며, 우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는 근본적인 문제와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집단적 책임과 공모를 강조하며, 어느 한 당사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밤낮없이 돌아가며 경이로운 기술과 타워를 하늘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계의 일부가 녹슬고 볼트가 헐거워지고 있으며 기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섹션은 이 기계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를 묘사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다'는 안락함은 무너져가는 건물과 인프라에 대한 무지 또는 부정과 병치되는데, 이는 안락함이 종종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는 현대 문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6>The age of no god 이젠 사는게 문제인 세대는 갔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시대가 왔다. 좌익, 우익, 중도... 이데올로기는 쓰레기통에 갔다. 불안한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찾아 헤멘다. 어디로 가는가, 얼만큼 왔는가, 혹은 제자리인가. 

 이 섹션은 사회적 도전의 진화와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의 중복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는 것이 문제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떻게 사는지가 문제다'라는 생각은 생존에서 삶의 의미와 질을 찾는 것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전형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인 좌파, 우파, 중도를 버린다는 것은 이러한 낡은 패러다임이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는 곧 폐기물로 암시됩니다. 새로운 적을 찾는 사람들의 은유는 오래된 싸움이 무의미해졌을 때에도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 본성의 경향을 강조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광야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습득한 여행자 그룹을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물을 찾고, 식량을 사냥하고,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도시에 정착하면 생존 기술은 덜 중요해지며,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 및 서로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입니다. 한때 그들을 정의했던 이데올로기(또는 생존 기술)는 이제 개발되고 도시화된 지형에서 낡은 지도처럼 쓸모없습니다. 현대 사회가 기본적인 생존에서 조화와 개인적 성취가 새로운 영역이 되는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세계로 변화하는 것처럼, 그들은 공존하고 공동체적 삶을 구축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하며 물리적 도전보다는 심리적 도전에 직면해야 합니다. 



 <12>아가에게 / For a new born child (해철) 아가야 너의 웃는 그 얼굴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도 오랫동안 기다렸나봐. 너의 웃음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어. 또 다른 시작이 다가왔음을... (영석) 아가야 너의 얼굴 하나 안엔 그렇게도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어. 서로 자길 많이 닮았다며 싸우곤 해도 온 집안 가득히 웃음 뿐이야. 

 갓 태어난 아이를 향한 이 감동적인 구절은 깊은 희망과 삶의 연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의 미소는 세상의 어려움에 직면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과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아이의 한 얼굴 안에 여러 개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등장하는 것은 인간 관계의 상호 연결성과 세대를 통한 특성과 가치의 전달을 의미합니다. 이 섹션은 새로운 생명이 가져다주는 보편적인 기쁨과 화합, 개인의 차이를 초월한 통합을 요약합니다. 

 고대의 숲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생각해 보세요. 갓 태어난 아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듯, 나무에 돋아나는 새 잎사귀는 성장과 미래의 신호입니다. 아기가 가족의 특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잎은 새롭지만 나무의 유전적 역사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닮은꼴을 두고 다투는 것은 각 가지가 잎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무 전체가 새 생명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폭풍우와 계절이 나뭇가지와 줄기를 강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잎이 돋아나는 것은 언제나 생명의 회복력과 재생을 축하하며 숲을 하나로 모으는 순간입니다. 



 <10>Money 손에 잡힐듯, 너는 아찔한 미소로 나를 부르고 한걸음 다가서면 비웃듯이 내게 멀어져가지. (Oh, I love you, money) 온 세상에서 이제 너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어. 수 많은 사람들이 너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때론 키스처럼 달콤한 꿈을 만들지만 때론 독약처럼 쓰디쓴 절망을 만들고 사람보다도 위에 있고 종교보다도 강하다. 겉으로는 다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약한 자는 밟아 버린다. 강한자에겐 편하다. 경배하라, 그 이름은 돈, 돈, 돈. 

 이 구절은 돈에 대한 사회의 집착을 비판하는 구절로, 돈을 매혹적인 존재로 의인화하여 궁극적으로 매혹에 빠지게 하는 내용입니다. 돈은 매혹적이고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잡기 어려운 것으로 묘사되어 끝없는 추격과 종종 그 추격의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꿈을 꾸게 하는 돈의 능력과 절망을 가져다주는 돈의 병치는 부의 양면성을 말해줍니다. 돈으로 강화된 사회 계층 구조, 즉 부유한 사람은 더 쉬운 삶을 누리고 불우한 사람은 발밑에서 짓밟히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돈을 매혹적인 음악으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기쁨과 성취를 약속하지만 결국 바위투성이의 해안에서 파멸로 이끄는 사이렌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선원들처럼 사람들은 종종 부의 매력에 사로잡혀 행복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약속에 이끌리곤 합니다. 하지만 사이렌의 노래가 파멸로 이끄는 것처럼, 돈에 대한 추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도덕적 타락, 사회적 불평등, 개인적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웅장한 환상으로 관객을 현혹한 뒤 허공으로 사라지게 하는 일루셔니스트처럼, 돈 역시 성공의 외관을 만들어내지만 이내 사라져 개인을 공허하고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겨둘 수 있습니다. 



 <14>Questions 병든자와 노인들은 한쪽 문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문으론 지금 태어난 자들 들어 온다. 단 한번도 멈춘적 없는 시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달려간다.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고 또 느껴야 하는가. 내게 다가올 끝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찾았다 말해야 하는가. 세상을 알게 될수록 내 무거워진 발걸음은 아직 내가 걸어야 할 남은 세월을 두렵게 하네. 사랑한 것은 빨리 사라져 가고 새로운 것은 익숙해 지기 힘들어. 

 삶과 죽음의 순환, 시간의 흐름,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면서 생기는 실존적 물음에 대해 성찰하는 가슴 시린 구절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더 많은 경험을 쌓을수록 우리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이루지 못한 욕망과 열망의 무게가 커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남길 유산, 찰나의 순간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익숙한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인생을 긴 기차 여행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처음에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설렘과 경이로움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동료 여행자들이 탑승하고 출발하는데, 일부는 나이가 들어가고 다른 일부는 이제 막 출발합니다. 어느새 목적지의 현실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각 역을 지날 때마다 여행이 끝날 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선로 위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는 끊임없는 시간의 행진에 대한 은유가 되고, 바깥 풍경은 변화하는 인생의 챕터를 반영합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이들과 함께 보낸 순간의 소중함과 옛 경험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도전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 여정은 인생의 덧없음과 각 정거장, 각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5>해에게서 소년에게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네게 속삭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봐 길을 떠나야 해. 니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꺼야.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지마 움츠러 들지마 힘이 들땐. 

 이 발췌문은 성인기에 필요한 성숙함과 회복탄력성을 포용하도록 격려하는 상징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합니다. '눈물'로 상징되는 시련과 고난이 개인의 성장과 정신력 강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외부의 압력이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라고 조언하며 고난에 맞서는 개인의 신념과 용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을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비유로 생각해 보세요. 밝은 햇살 속으로 나오는 것이 두렵지만 안락한 고치 단계는 반드시 남겨둬야 합니다. 나비의 축축한 날갯짓과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성인이 되어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갈 때 겪게 되는 눈물과 도전과 비슷합니다. 나비의 날개가 마르고 강해져 날아오를 수 있듯이, 각자의 시련과 신념은 인격을 형성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합니다. 이 구절은 새벽의 첫 빛처럼 우리에게 속삭이며 하루의 도전을 안내하며, 깨어나고 성장하며 인생의 광활한 잠재력을 향해 용감하게 날아오르라는 초대입니다. 



 <4>Mama 한 때는 당신도 꿈 많았던 소녀였죠. 아직도 때로는 난 그렇게 느껴져요. 그 많은 세월 수 많았던 사연들에도 단 하나도 당신은 변한게 없어요. 하얗게 센 머리칼 하나 둘씩 늘어 눈가엔 어느새 주름 져도 내겐 언제나 제일 아름다운 엄마. 내 삶에 엄마는 처음 알게된 친구였어요. 나보다 더 많이 날 알았고 이해했죠. 난 이제 또 다시 험한 길을 떠나려해요. 생각보다 세상은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나 쓰러져 세상을 배울 때엔 날 위해 눈물 흘리지 말아요. 그저 나의 길을 지켜봐줘요. 엄마... 

 이 구절은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존재감과 한결같은 사랑을 인정하는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헌정입니다. 몸은 변해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노화의 역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머니의 이해와 우정에 대한 깊은 감사를 전하며, 인생의 길이 험난할지라도 좌절에 슬퍼하기보다는 조용히 지지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이는 회복력과 무조건적인 지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끊임없이 맞으며 바위가 많은 해안가에 굳건히 서 있는 등대를 상상해 보세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등대의 외관은 풍화되고 변할 수 있지만, 등대의 목적과 힘은 변함없이 유지됩니다. 이 등대는 본문의 어머니처럼 지나가는 배나 이 경우에는 인생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아이에게 길잡이와 안전의 등대입니다. 인생의 시련과 도전을 상징하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때때로 흔들릴 수 있지만, 어머니라는 등대는 흔들림 없이 그 역할을 다하는 든든한 불변의 존재입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엄마의 사랑과 빛이 언제나 자신을 집으로 인도해줄 거라고 믿으며 자신의 여정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합니다. 



 <3>The Power 그 어떤 모습의 세상이건 내 손에 쥐어야만 가치있고 남의 손 안에 넘어 가느니 차라리 모두 부서 버리겠다 내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울 것은 힘과 그 앞에 엎드린 자들 피와 화약 냄새만이 내겐 유일한 자극이며 안식일 뿐이다 어차피 인간들의 모든 역사는 승리한 자를 위해 꾸며지는 것 누군가는 지배하며 나머진 따른다 해매는 쥐떼보단 정원에 메인 개가 나은 것 어떤 대가도 내겐 상관 없으니 세상 전부를 손에 넣을 계약을 원한다 

 이 구절은 권력과 지배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마키아벨리의 철학을 반영하듯 소유와 지배에 의해서만 가치가 결정되는 관점을 보여줍니다. 이 텍스트는 공동 소유나 협업에 대한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보다 파괴를 선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승자에 의해 역사가 쓰여지고 사회 질서가 지배자와 추종자로 구성된 잔인한 현실을 암시합니다. 이 관점은 무자비한 실용주의와 절대 권력 추구를 위해 도덕적 고려를 피합니다. 

 이 구절에 묘사된 주제에 대한 은유로 체스 게임을 생각해 보세요. 체스에서 모든 움직임은 판을 장악하기 위한 계산된 싸움이며, 각 말은 최종적인 체크메이트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갖습니다. 체스는 소유권을 공유하거나 힘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위해 전략적인 지배와 졸의 희생을 통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체스 게임의 그랜드 마스터처럼, 이 텍스트의 목소리는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꺼이 희생하고 어떤 말이라도 희생합니다. 이 세계관에서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거리에 '피와 화약 냄새'가 진동해도 상관없습니다. 체스판, 더 나아가 세상은 힘이 옳은 곳으로 여겨지며, 정복의 폭풍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속에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8> The Hero 눈을 뜨면 똑같은 내방 또 하루가 시작이 되고 숨을 쉴뿐 별 의미도 없이 그렇게 지나가겠지 한 장 또 한 장 벽의 달력은 단 한번도 쉽없이 넘어가는데 초조해진 맘 한 구석에선 멀어져가는 꿈이 안녕을 말하네 난 천천히 혼자 메말라가는 느낌뿐이야 우 언덕 너머 붉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올 무렵 아이들은 바삐 집으로가 TV 앞에 모이곤 했었지 매일 저녁 그 만화 안에선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이 서사에서 작가는 하루하루가 변하지 않고 꿈이 점점 멀어지는 정체와 목적 상실감을 전달합니다. 이 구절은 옳고 그름의 개념과 영웅의 승리가 간단하고 확실했던 어린 시절의 단순함과 명료함에 대한 갈망을 반영합니다. 성인 생활의 단조로움과 복잡성 속에서 희망이 침식되고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을 이야기합니다. 이 섹션은 시간의 끊임없는 행진에 대한 씁쓸한 인정과 인생의 냉혹한 변화 속에서 내면의 영웅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포착합니다. 

 한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나 TV 쇼에 나오는 용감한 영웅이 된 척하며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으로 가득했던 낡고 버려진 놀이터를 상상해 보세요. 그 평온했던 시절은 희미해진 놀이기구의 색처럼 기억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녹슨 그네와 금이 간 미끄럼틀은 어제의 생생한 꿈이 오늘의 조용한 그리움으로 바뀌는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을 증명합니다. 어른들은 놀이터처럼 황량함을 느끼며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무적의 정의의 용사로 자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이러한 갈망 속에서 잠자고 있던 모험심과 악을 이기는 선의 힘에 대한 믿음을 다시 불러일으킬 불꽃을 찾아 한때 우상화하고 열망했던 영웅을 찾습니다. 



 <1>세계의 문 Gate of the World 흙먼지 자욱한 찻길을 건너 숨가쁘게 언덕길을 올라가면 단추공장이 보이는 아카시아나무 그늘 아래에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옆 복개천 공사장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뿌연 매연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우리는 가슴 두근거리며 동경했었다. 이제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나는 세계의 문을 지나왔다. 그리고 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의 저편, 내 유년의 끝 저 편에 남아있다. 

 이 인용문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에서 성인이 된 복잡한 시기로의 전환을 포착합니다. 먼지가 날리는 길과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더 단순했던 시절의 상징입니다. 익숙한 동네를 넘어 세계가 확장되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약속과 매력이 손짓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에는 타협과 길들여짐이라는 '대가'가 따르며, 이는 어린 시절의 자유를 잃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대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를 가슴 아프게 설정하여 젊은 날의 꿈의 영역에 자신의 일부를 남겨 둡니다. 

 어린 시절을 광활한 미개척지의 숲으로 둘러싸인 작고 아늑한 마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미 알려진 길과 지역 전설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숲은 모험과 발견을 약속하며 아이들을 부릅니다. 숲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어린 시절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며, 안전한 익숙함과 스릴 넘치지만 불확실한 성인이라는 광활함을 맞바꿔야 하는 일방적인 여정입니다. '통행료'를 지불하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난 후, 뒤돌아보면 멀리서 마을이 보일 뿐이고, 한때 놀던 나무 그림자 아래서 유령 같은 추억처럼 기다리는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만 보일 뿐입니다. 



 <13>Hope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 속에서 이렇게 힘든 때가 없었다고 말해도 하지만 이른게 아닐까 그렇게 잘라 말하기엔.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힘들 때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혼자란걸 느끼지. 하지만 그게 세상이야 누구도 원망하지마.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잃을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너머 이제서야 잡힐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그 언젠가 먼 훗날엔 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거야. 지나간 일이라고. 

 희망은 인생의 어려움에 수반되는 고통과 고립, 그리고 희망 속에서 발견되는 끈질긴 힘에 대한 감동적인 묵상입니다. 힘든 시기에 사람들이 우리를 버리고 고독감을 남길 수 있음을 인식하고, 고난 중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인간의 본성과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인정은 괴로움 없이 다가옵니다. 화자는 회복탄력성에 앞서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희미하지만 점점 커지는 희망의 전망에서 위안을 찾으라고 격려하며, 결국 과거의 시련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변화시킵니다. 

 폭풍우를 견디는 고독한 나무를 상상해 보세요. 폭풍이 거세게 몰아칠 때마다 나무는 뿌리째 뽑힐 위기에 처하고, 한때 새들의 쉼터였던 나뭇가지는 이제 맨살이 드러나 있습니다. 폭풍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바람과 비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대신 폭풍이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채 구부러지고 흔들립니다.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새벽의 부드러운 빛이 드러나자 나무는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약속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허리케인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것은 희미한 희망의 속삭임이며, 매일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어제의 슬픔을 딛고 뒤늦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신해철의 가사를 사랑하는 5가지 이유


1. 문화적 해설과 비전적 통찰력:

일부 비평가들은 신해철의 가사가 단순한 예술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문화적 논평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엮어내는 그의 능력은 실을 능숙하게 엮어 시대의 시대정신을 묘사하는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직공에 비유됩니다. "싸워라! 자유로워져라! 껍데기의 파괴!"와 같은 가사를 통해 사회적 제약과 개인적 장벽에 과감히 도전하고 해체한 선구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시대를 초월한 소명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2. 시적 탁월함과 정서적 공명:

신해철은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시적 기량으로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어떤 문학 학자는 신해철의 서정적 내용이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가장 대담하고 선명한 색채를 선택하는 화가와 같이 일상 언어의 단순함을 뛰어넘는 심오한 정서적 깊이를 구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음의 혁명!"과 같은 문구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개별적으로 주관적인 내면의 투쟁을 함축하여 듣는 사람의 본능적인 수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정서적 울림이 그의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3. 성찰적이고 철학적 깊이:

심리학 전문가들은 신해철의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작사에 대해 익명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사는 종종 실존적 주제와 철학적 사색을 탐구하여 생각을 자극하고 삶의 의미와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씨름하는 청취자에게 위안을 제공합니다. '나'에서 '우리', '연인에서 낯선 사람'으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구절에서 그의 성찰의 깊이가 드러나며, 관계의 일시적인 본질과 인간의 조건을 강조합니다.


4. 예술적 혁신과 영향력:

음악 평론가들은 신해철의 혁신적인 장르 융합과 미래지향적인 음악 제작 방식에 대해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방가르드로 여겨지는 그의 전통적 음악 요소와 현대적인 사운드의 융합은 새로운 음악 스타일의 길을 열었습니다. 청각적 모험으로 묘사되는 그의 노래는 창의성의 한계를 뛰어넘고 미지의 음악적 영역을 탐험하고자 하는 다음 세대의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사회적 영향력과 시대를 초월한 호소력:

신해철의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그의 가사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현대인들이 직면한 사회적 병폐와 개인적 딜레마를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도시 생활의 경직성, 끊임없는 돈의 추구, 진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희생에 대한 그의 관찰은 오늘날까지도 큰 울림을 줍니다. 그의 통찰력은 청중으로 하여금 삶의 선택과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도록 도전하며, 그의 메시지는 신랄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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