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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공략집: 모범생의 무난함으로는 역전할수 없다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1. 다음 사항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다음 (1)~(3)을 합하여 총 3,000자 이내)
(1) 학부에서 수업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①전체 이수 학점 중 주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교양 등의 구분에 따른 학점 수, ②전공 및 교양 교과목을 선택한 기준과 이유, ③재수강을 한 경우 그 과목의 수와 이유를 포함)
(2) 학부에서 수업 외에 주도적으로 수행한 학습과 연구 활동은 무엇이었습니까?
(3) 그 외 대학 입학 이후에 어떠한 경험(예 :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또는 갈등 조정 경험, 노력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신장시킨 경험, 대학 졸업 후 직장 또는 연구 경험 등)을 하였습니까?

2. 대학 입학 이후에 공익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기술하시오. (동기-과정-결과-후속 활동을 포함하여 1,000자 이내)

3. 지원 동기를 기술하시오. (1,000자 이내)

4. 그 외에 지원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예 : 자신이 학생 구성의 다양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 지원서에 입력한 특이사항에 관하여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 그 내용 등)을 기술하시오. (1,000자 이내)

-2023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문석사과정 신입생 모집요강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소개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25년 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기를 소개하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미션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류 평가로 뒤집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 첫 줄 쓰는 것부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3년 전 입시를 치르면서 창작의 고통을 절감했다. 다행히 나는 자소서 스터디에서 뛰어난 친구들을 만나 깊이 탐구해볼 기회가 많았다. 자기소개서는 매우 심오하면서도 실용적인 글쓰기라서 더 흥미롭다. 영역과 분야는 달라도 요즘 세상에서 자기소개서 안 써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내 경험과 생각을 풀어보기로 결심했다.


자기소개서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과 쟁점이 있다. 자소서에는 정답이 있는 걸까? 자소서로 사람을 뽑는 건 정당한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자소서 점수는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인가? 나는 때로 스터디에서 정작 내 자소서를 쓰기보다 자기소개란 무엇이며 그 가치는 무엇인지 토론하며 시간을 보낸 기억이 많다. 글 한 꼭지에 모두 담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할 것 같아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단 명확히 하자. 자기소개서는 점수로 책정된다는 점에서 다른 에세이 글쓰기와 매우 다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책들은 저마다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어떤 획일적인 기준으로 점수를 매길 수 없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는 서류평가 항목의 하나로서, 내부적인 평가 프로세스가 완전히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종의 절차를 거쳐 평가 점수로 수치화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점수를 많이 받기 위해 쓰는 글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더 특이한 것은, 다른 일반적인 시험들과는 달리 모범답안도, 채점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모범답안이 있다면 각자의 인생에 정답을 제시한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선발 과정에서 (자소서든 면접이든) 풍부한 자기소개를 듣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불가피하며 상당히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는 지원자의 관심사와 세계관을 잘 파악해야 우수한 학교 공동체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는 정답이 있으면서도 정답이 없다. 지원자들은 설명서나 설계도 없이 자기 인생의 재료로 특별한 글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는 (다른 시험들과 달리) 튀어야 한다. 자기소개서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튀거나 독특하거나 돋보이거나 재밌어야 한다. 나는 자소서 평가는 개별 에피소드별로 포인트를 득점하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몇 가지 점프와 스핀, 스텝 등에 점수를 매기는 것과 유사하다. 흔히 변호사시험은 합격률이 50%라서 모든 문제에서 평균만 맞아도 되니까 굳이 튀려고 모험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는 평범하고 무난한 것이 가장 위험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무난하게 쓴다면 10명 중 5등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의 개성과 강점을 가진 9명에게 밀려 10등에 머무르게 될 지도 모른다. 한때 히말라야를 등반한 경험으로 대기업 자기소개서에서 고득점했다는 사례가 알려지고 나서 너도 나도 모방하면서 몇 년 만에 그 독창성이 퇴색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는 어느정도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자기의 여러가지 모습 중에 어떤 걸 강조하는 게 좋을지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로스쿨 자기소개서는 조금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막상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려고 하니, 법조계 특유의 보수성과 경직성, 안정성 때문에 괜히 밉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법조계 문화라는 걸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로스쿨의 문화가 동질적이고 위험회피적이라는 말은 어느정도 사실인 것 같다. 나는 후배들에게 독창적인 소재와 경험과 문체를 권하는 편이지만, 어떤 평가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차피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소위 '꼰대적'인 평가자를 만나서 도전적인 자소서가 낮은 점수를 받을 리스크도 있지만, 반대로 무난한 자소서를 냈다가 아무런 반짝임도 보이지 못하고 최하점을 받을 리스크도 있다. 내가 자소서 스터디에서 만난 어떤 친구는 성적이 나보다 높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보기에 그 글은 너무 평범하고 무난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소서 모범답안을 그대로 답습한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개성을 드러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그는 평균점수만 받고 싶다는 전략을 택했고, 아쉽지만 그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물론 서울대에 불합격한 것이 무슨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조언대로 했어도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저 내가 옆에서 지켜본 그의 개성과 장점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울대 로스쿨의 문항을 분석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자소서의 "골디락스 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골디락스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를 말하는데, 가령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골디락스 존에 위치해서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자소서의 핵심은 골디락스 존에 맞는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적절한 글을 쓰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고 진부한 조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화해 보면 생각보다 좋은 인사이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을 유명 축구 감독에 비유해서 자기 강점을 드러내려 한다면, 다음 중 어떤 사례가 가장 적절할까? 1) 거스 히딩크 감독, 2) 알렉스 퍼거슨 감독 3) 주제 무리뉴 감독, 4) 스팔레티 감독, 5) 맷 테일러 감독. 아마도 각자 가지고 있는 축구 상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 사람 중에 히딩크와 퍼거슨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무리뉴와 스팔레티는 매니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경우이고, 맷 테일러는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처음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그는 영국 챔피언십(2부) 리그의 로더럼 유나이티드 FC에 2022년에 부임한 젊은 감독이다. 사실 나도 전혀 몰랐던 사람이고 국내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중요한 건 분량이 제한된 자기소개서에 맷 테일러 감독이 누구인지 설명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고, 설령 내가 그의 진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자소서에서 평가자를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책이든 인물이든 논문이든 소재든 에피소드든 인용할 때에는 웬만큼 알려진 사람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히딩크나 퍼거슨에 비유하면 자기소개서가 너무 진부해질 수 있다. '저는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갖춘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시작하면 아마도 독자들은 김이 새버릴 것이다. 특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더라도 알 사람은 아는, 미묘한 영역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꼭 무리뉴나 스팔레티 감독이 적절한 사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물을 인용할 때는 인지도뿐만 아니라 스타일, 이미지, 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물론 지원자들은 법학과 법조계 실무에 대해 문외한이다. 마치 축구 입문자가 히딩크랑 퍼거슨을 알면서 뽐내는 것처럼 수험생들은 교수 앞에서 밑천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혹은 전문가들도 모를 만한 지엽적인 사례를 찾아서 아는체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소서에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면 먼저 관련 영역을 충분히 조사하고 공부해봐야 한다. 똑같이 제한적인 분량의 자기소개서라고 해도, 절묘한 예시와 비유를 통해 자기의 관심과 지식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지원자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과연 내 자소서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들기는 한다. 나는 사회학자 밀즈와 법학자 예링을 인용했는데 어쨌든 합격은 했고, 스터디에서도 꽤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냥 이런 사례도 있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조금씩 오픈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20학년도 입시를 치렀는데, 우리 기수가 로스쿨 입시와 자소서가 대폭 변경된 첫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래와 같이 3800글자로 다소 형식적이던 문항이, 서두에 인용한 것처럼 6천글자로 바뀌고 공익과 지원동기, 다양성에 관해 구체적인 주제가 제시되었다. 정성 요소가 강화되면서 학점, 리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1. 3000자 이내로 자기를 소개하시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습니다.
- 대학 입학 후 지금까지 특히 관심을 두고 수행한 활동과 연구(공부)한 분야. 그러한 활동과 연구(공부)가 지원자에게 가져온 변화
-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한 동기
-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

2. 800자 이내로 지원자가 제출한 대학(학부) 성적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사항을 설명하시오. 여기에는 다음 사항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합니다.
- 전체 이수 학점 중 주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교양 등의 구분에 따른 학점 수
- 전공 및 교양 교과목을 선택한 기준과 이유
- 재수강을 한 과목의 수와 그 이유


나는 경쟁자들에 비해 비교적 학점이 낮은 상황이었는데, 그런 약점을 커버하고 내 강점을 드러내고자 찰스 라이트 밀즈의 명저 <사회학적 상상력>을 인용했다. 그는 "대학의 목적은 스스로 가르치는 자의 양성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내 학점을 변호하면서 내 학문편력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다음 글에 계속)




내가 말한 '골디락스 존'과 유사한 내용의 밈으로, "당신을 000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시리즈가 있다. 나는 이 유머가 과도한 측면도 있지만, 나름 자소서 작성의 전략적인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축구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축구는 절대~볼 필요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축구전문가가 되기 위해 좋아해야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클래식 레벨에서는 펠레와 마라도나를 꼽아선 안됩니다. 그들을 꼽는 것은 다른 축구 전문가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매뉴얼은 마르코 반 바스텐이나 플라티니 정도입니다. 그때 태어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스페셜 영상 하나 안 봐도 됩니다.

프리킥에서는 베컴보다는 미하일로비치. 요즘에는 호날두보단 피를로를 추앙해야 합니다. 이도저도 다 싫으면 주닝요 정도 추천 드립니다.

요즘 영건 중에서는 호날두를 타겟으로 잡고 양민학살이라 까대며 메시나 토레스를 좋아하십시오. 토레스는 조금 애매한 위치군요. 메시 추천 드립니다. 라리가 중계 잘 해주지도 않지만 안봐도 됩니다. 메시를 좋아하십시오.

팀은 맨유 첼시 바르샤 레알 인터 AC 이런팀은 꼽지 마십시오. 리버풀, 로마, 아틀레티코 이 정도 가능합니다.

국가는...남미에선..브라질 안됩니다. 아르헨티나 강추.
유럽에서도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이런 팀 꼽지 마십시오. 메이저 대회에선 맨날 죽을 쒀대도, 곧죽어도 체코, 스페인, 네덜란드 이 정도 좋습니다.
그 중에서 체코가 가장 좋습니다. 체코선수는 네드베드랑 얀콜러만 알면 됩니다. 걍 댓글마다 체코 덜덜덜 하시면 됩니다.


대충 이 정도입니다...

아..그리고 마지막으로...박지성 맨유가고 나서부터 EPL 봤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 당합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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