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좋아하세요? 내가 동화를 소재로 글 쓰는 이유

미래가 변하려면 아이들이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동화도 함께 변해야 한다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린 왕자>


우리나라에는 베이비붐 세대, 86세대, X, Y, Z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흥미롭게도 각 세대가 어린 시절 읽은 명작 동화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솝 우화, 백설공주, 인어공주, 성냥팔이소녀, 빨간 모자, 흥부와 놀부 등 고전적인 동화들이 그 자리를 지키며 창작동화들과의 경쟁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인간사의 핵심적인 주제를 간결하게 풀어낸 명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동화야말로 진정한 상식인 것 같다. 영국이 섬나라인 건 몰라도, 토끼와 거북이 중에 누가 이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어떤 주장을 펼칠 때 활용하기 좋은 도구가 된다. 특히 요즘처럼 책을 안 읽는 시대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나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인용하면 대화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피노키오와 양치기소년을 활용하면 누구든지 한마디 덧붙일 수 있다. 그래서 대화의 좋은 starter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고전적인 동화의 보수성과 폭력성, 편향성에 반대하며 아이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기존의 텍스트를 폐기하기보다는 비판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논쟁을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통념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동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독자에게 거부감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동화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동화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 게 일반적이며, 꼭 행복한 결말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동화는 모든 시대와 문화에 통용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저자 역시 특정 상황에서 여러 가지 편견과 취향을 가진 일개 작가라고 봐야 한다. 때로 민담이나 구비문학처럼 특정 저자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문화의 일반적인 관념이나 욕망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동화의 메시지는 결코 윤리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고, 오히려 과거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어떤 어른들은 동화의 부적절한 부분들을 감추고 각색하려고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동화를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스스로 비판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TEDx 프로그램에서 Anne Duggan 교수는 동화 빨간 모자에 대한 재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일찍 쓰인 버전의 '빨간 모자'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의 찰스 페로가 성인들에게 동화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능청스럽게 말하는 신사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그가 소녀들을 유혹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19세기에 농촌 프랑스에서 수집된 또 다른 버전의 '빨간 모자'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소녀를 삼키는 대신 소녀가 늑대를 속이고 탈출하는 스토리다. 이 버전은 소녀의 성장과 주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이야기는 유사해 보이지만, 핵심 교훈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늑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매사에 조심해라'는 수동적인 교훈과, '위기에 빠지더라도 기지를 발휘해 극복할 수 있다'는 능동적인 교훈이 모두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해석의 과정은 끝이 없다. 어떤 사람은 빨간 모자를 커리어우먼의 상징으로 읽고, 늑대는 남성과의 결혼 혹은 사랑이라는 유혹으로 여성의 자기완성을 방해하는 서사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해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찰스 페로가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겠지만, 원래 작품 해석의 결정권은 작가가 아니라 해석자가 가지는 것이다.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과, 남성이 여성에게 결혼하자고 제안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이 착취당해 왔던 현실과 유사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논쟁을 촉발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Jason Link는 <Why We Absolutely Need Fairy Tales>라는 TEDx 스피치에서 어른들도 영웅신화와 판타지 이야기를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치를 의심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물질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철들지 않았다, 순진하다, 동화 속에 빠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Link에 따르면, 동화에서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들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옳고 용감한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거북이의 인내, 흥부의 선의, 인어공주의 사랑 등은 우리가 칭송하지만 실제 행하지 않는 가치들을 보여준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선택의 근거는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야성적인 충동, 혹은 심리적인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론에 따르면 동화를 많이 읽은 사람은 더 윤리적이고 도전적이며 열정적이고 실존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의 가치 추구는 동화 말고도 만화, 문학, 영화, 게임 등으로 확장되지만,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동화 속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적인 어른이 되면서 여러 가치를 잊거나 무시하기 쉬운데, 적어도 동화를 읽을 때의 어린이는 대부분 동심을 간직하고 있다. 문득 동화를 볼 때 우리는 어릴 적 자기의 꿈과 세계관을 돌이켜볼 수 있고,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성찰하게 된다. 어른들이 다시 동화를 꺼내 읽고, 잃어버렸던 자기의 동심을 찾게 된다면 아마도 세상은 더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성선설로 유명한 맹자는 인간들이 자기 본성을 잃은 현실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놓아버리게 되면 곧바로 알고 찾으려고 애쓰면서, 자기 마음을 놓쳐 잃어버리게 되면 구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자기가 놓쳐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

나는 맹자가 말한 '마음'이 상당 부분 '동심'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산이나 이득을 잃어버리는 일에는 혈안이 되면서, 자기의 가치와 세계관과 동심을 잃어버리는 일에는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경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피터팬과 어린 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야 한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Heidi Shamsuddin 작가는 <Myths, Folklore & Legends> 강연에서 동화의 롤모델에 대해 이야기한다. "9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동화의 인물들이 나와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소녀들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졌고 피부는 눈처럼 하얗거든요. 우리 동화는 어디에 있나요?

말레이시아에도 서양의 늑대만큼 멋진 악어와 호랑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Heidi의 말대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화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유명 동화들을 각색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인어공주의 실사판 영화에서 흑인 배우가 연기한 것이 동심 파괴라는 식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작품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단순히 인종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비판의 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Heidi는 아래와 같은 말로 동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우리는 자연재해, 탄생, 태양, 달 등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해 왔습니다. 동화는 우리 인간문명의 고유한 결과물이며, 지구상에서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는 다른 종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동화의 진정한 가치는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화를 통해 우리 주변의 세상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도덕적 나침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폭풍이 나비의 날개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처럼, 동화처럼 작은 이야기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Heidi Shamsuddin


영미권에는 아인슈타인이 "자녀가 똑똑해지길 원한다면 동화를 읽어주세요. 자녀가 더 똑똑해지길 원한다면 동화를 더 많이 읽어주세요."라고 말했다는 속설이 있다. 교육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더 많이 읽어주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동화를 더 날카롭게, 더 논리적으로, 더 창의적인 관점에서 읽고 토론해야 한다. 동화를 재해석하는 경험은 다른 시, 소설과 미술, 음악, 영화, 더 나아가 정치인의 TV토론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백 년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오래된 동화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논쟁과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두뇌에서 뻗어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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