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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정당 후원회에 기부할 수 없다는 법제처의 억지

현행 복무규정이 위헌인 이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드립니다

내가 준비중인 헌법학 박사논문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큰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면 군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인데, 세부적으로는 개헌의 연혁, 종교적 중립과의 비교, 롤즈와 드워킨의 중립성 논쟁, 정당 민주주의 등 고려할 논점이 많고 복잡하다. 공무원은 정치단체나 중앙당 후원회에 가입할 수 있을까? 공무원은 중앙당 후원회에 후원금을 낼 수 있을까? 직업 공무원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까? 다른 논점들은 제쳐놓고, 일단 이 글에서는 가장 간단하고 명확히 위헌으로 보이는 문제 하나만 언급하고자 한다.


- 일단 2020년 4월에 선고된 2018헌마551 결정에서, 교원에 대해 '그 밖의 정치단체'는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어 단순 위헌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교원이 아닌 대다수 군인, 공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존 법률이 유효하고 3년이 지나도록 개정되지 않고 있다. 이는 추가적인 헌법소원을 통해 동일한 논리로 위헌 결정이 가능하다고 보인다.


- 중앙당 후원회를 이해하려면 2013헌바168 결정과 2019헌마1271 결정을 읽어봐야 한다. 결론만 말하면, 2013헌바168 결정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해 중앙당이 후원회를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2019헌마1271 결정은 공무원이 중앙당 후원회에 가입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두 결정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무원 복무규정에 위헌이 있다는 논리적으로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제부터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 일단 정치자금법상 후원회원(제8조)과 후원인(제10조)은 다른 의미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중앙당 후원회 사이트에서는 '후원회원 가입'과 단순 후원금 기부를 구별하여 취급하고 있고, 선관위 정치후원금센터에서는 후원회원에 가입하지 않은 채 단순 후원인으로서 중앙당에 기부하는 방법을 마련해두었다.


정치자금법
제8조(후원회의 회원) ①누구든지 자유의사로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후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 다만, 제31조(기부의 제한)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기부를 할 수 없는 자와 「정당법」 제22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의 규정에 의하여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는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10조(후원금의 모금ㆍ기부) ①후원회는 제7조(후원회의 등록신청 등)의 규정에 의하여 등록을 한 후 후원인(회원과 회원이 아닌 자를 말한다. 이하 같다)으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하여 이를 당해 후원회지정권자에게 기부한다.


제10조 제1항에 따라 후원회원이 되지 않더라도 후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더라도 (회원이 아닌) 후원인이 되는 건 정치자금법상 금지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법제처가 공무원이 후원금을 아예 기부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이유는, 순전히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시행령) 제27조 제2항 제5호 때문이다. "그 밖에 어떠한 명목으로든 금전이나 물질로 특정 정당 또는 정치단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가 금지되니까 단순 후원인으로서 하는 후원금 기부도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 따라 금지된다는 것이다. 법률에는 직접적인 금지규정이 없는데 시행령에서 새로운 내용을 창설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특히 이 조항은 2013헌바168 결정의 결정요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헌재는 "정당법상 정당 가입이 금지되는 공무원 등의 경우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재정적 후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현행 기탁금 제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고보조금의 배분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지급하는 일반기탁금제도로서, 기부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에 재정적 후원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제도이므로 이로써 정당 후원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정당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이 전면적으로 금지됨으로써 정당이 스스로 재정을 충당하고자 하는 정당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정당의 정당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라고 했는데, 현행법 하에서도 공무원은 재정적 후원이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있으므로 구법과 정확히 동일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당시 국가공무원법이 심판대상이 아니긴 했지만, 법제처의 입장대로라면 헌재의 결정요지는 정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을 금하는 시행령의 존재도 모르고 설시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당원이 될 수 없으면 후원회원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정치자금법 제8조의 위헌성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단순 후원인으로서 기부하는 것마저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7조 제2항 제5호는 위헌성을 가진다는 게 내 결론이다.


한편 2019헌마1271 결정에서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는 공무원은 중앙당 후원회에도 가입할 수 없다는 법률이 합헌이라고 했다. 비판받을 지점은 있지만, 적어도 앞의 2013헌바168 결정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후원회에 가입하지 않은 채 후원금을 기부할 수 있다면 재정적 후원이 전면 박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결정을 종합하면, 정당 가입이 금지되는 공무원은 후원회원이 아닌 후원인 신분으로 정당에 재정적 후원을 하는 행위가 허용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를 가로막는 것이 다른 법률도 아니고 겨우 복무규정이라는 시행령에서 매우 포괄적인 문구로 전면적 금지를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7조 제2항 제5호는 명백한 위헌성을 가지며, 이를 도출하기 위해서 복잡한 과잉금지원칙이나 포괄위임금지, 법률유보를 끌고오지 않더라도 기존 헌재 결정문 분석만으로도 논리적으로 함축되는 결론이라고 할 것이다.


별개의 논점이라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은 국가공무원법 제65조의 위임을 받아 내용을 구체화해야 하는데, 상위법에 있지도 않은 소위 '금전적 지지행위'라는 명목을 새로 창설하는 것은 헌법이 예정한 체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포괄위임금지와 법률유보원칙, 의회유보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교과서적 사례로 지적될 수도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시행령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인지 흥미롭다. 2019헌마1271 결정에서는 청구인들이 복무규정의 위헌성도 판단해달라고 청구했지만 개별적인 기본권 주장이 없어서 심판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헌법소원에서는 더 명확하게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때문에 비회원 자격으로 중앙당 후원회에 후원금을 기부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주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헌재는 논리적으로 복무규정의 위헌성 심판을 거부할 방법이 없어진다.


참고로 중앙선관위 정치후원금센터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해 놓았다. 선관위 역시 정치자금법에 공무원 관련 제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give.go.kr/portal/main/contents.do?menuNo=200013)

후원금 기부의 제한
• 외국인 및 국내ㆍ외 법인 또는 단체(「정치자금법」 제31조)
• 교사, 공무원이 후원회에 후원금을 기부하는 행위에 대하여 「정치자금법」상 제한 규정은 없으나, 이러한 행위가 공무원의 정치운동 금지규정에 위반되는 지 여부는 「국가공무원법」등 해석에 관한 사항임.
※ 공무원이 후원금을 기부하는 경우 「국가공무원법」 및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위반될 수 있음. (법제처 유권해석)


사실 대부분의 법령과 헌재 결정은 많은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치기 때문에 자체적인 모순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고, 정치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추가적인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을 쓰면서도 방어적, 소극적으로 설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사안만큼은 최소한의 형식논리만 사용하더라도 확실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사안이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이 위헌이거나, 2013헌바168 결정이 잘못이거나, 2019헌마1271 결정이 잘못이거나 셋 중 하나의 입장을 택해야 한다. 다른 논리적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가장 놀라운 건 이러한 허점을 발견한 게 아직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내 사고과정에 오류가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헌재에서 조속히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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