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조항 변화를 통해 본 북한 기본권의 특징과 현실 이해하기
(본 글은 전문 정책보고서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국회 입법조사처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북한에도 헌법이 있고, 그 안에 '인권' 조항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권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북한 헌법 속 기본권은 어떻게 변화해왔고, 그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 글은 복잡하고 어려운 북한 헌법의 기본권 조항 변화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며, 북한 사회와 인권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1948년 첫 헌법부터 김일성-김정일 헌법까지, 북한 기본권 조항의 변화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북한 헌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독특한 인권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 헌법상 기본권 분야는 1936년 소련 스탈린 헌법의 영향을 받았지만, [주체사상]과 극단적인 [집단주의 원칙], 그리고 [정치사상의 통일성]이 기본권 전반에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주의 국가 헌법과 차별점을 보입니다(p.5). 주체사상이란 간단히 말해, 모든 문제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상입니다.
북한은 이를 "주체의 인권론"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인권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부적이고 보편적인 권리가 아닙니다. 본 연구에 따르면, 북한에서 말하는 인권은 "자주적이며,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적 인간'의 권리"(p.5, p.15)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인간'이란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집단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 인간을 뜻합니다. 따라서 인권 역시 개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사회 집단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서 실현되는 사회적 권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헌법에 규정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합니다(p.5). 이는 현 북한 헌법 제63조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기본권의 대원칙과 제81조의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p.5, p.56)는 의무 조항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원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법적 원칙인 것입니다. 결국 북한에서 기본권이란,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사회라는 틀 안에 개인을 통합시키고 국가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요구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본 연구는 이를 두고 북한의 기본권이 "국가로 부터의 자유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존재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법이론 구조"(p.5)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북한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분석하는 것은 단순히 법 조항의 변화를 넘어, 북한 사회의 이념과 체제, 그리고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본 연구는 북한 헌법상 기본권 조항의 변화 과정과 그 규범적 의미, 한계를 헌법사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이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대응 전략 마련의 기초를 제공하고자 합니다(p.6).
북한 헌법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공산권 헌법의 일반적인 발전 과정과 북한만의 독특한 사상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공산권 헌법은 일반적으로 '인민민주주의 헌법'에서 '사회주의 헌법', 그리고 '발전된 사회주의 헌법'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거칩니다(p.11).
1948년 제정된 북한의 첫 헌법은 이 중 '인민민주주의 헌법'에 해당합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구 공산권 국가들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형태였습니다(p.11). 이 시기 헌법은 소련 스탈린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p.11, p.32), 소자본가나 민족자본가, 일정 수준의 토지 소유와 사적 기업 형태를 인정하는 등(p.11) 완전한 사회주의 헌법과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1948년 헌법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노동당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었고(p.12), 주권의 소재도 단순히 '인민'에게 있다고만 선언했습니다(p.12).
그러다 1972년,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합니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자본가 계급)을 소멸시키고 자본주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며, 노동자 계급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단계의 헌법을 의미합니다(p.12). 북한 스스로도 1972년 헌법을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이룩된 성과의 법적 총화"(p.12)라고 평가합니다. 김일성은 1972년 연설에서 "우리나라의 도시와 농촌에서 사회주의적 개조는 1955년 4월 테제가 발표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 되여 1958년에 거의 동시에 끝났습니다."(p.13)라고 언급하며, 사회주의 개조 사업의 완수가 헌법 개정의 주요 배경임을 밝혔습니다. 또한 국내외적인 요인, 즉 사회주의 변혁에 따른 시대적 요청과 함께 중국-미국 간 화해 분위기 속에서 독자 노선을 걸어야 할 필요성, 그리고 김일성 1인 지배 체제를 법적으로 완성하려는 목적도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p.15). 이 헌법부터 주권의 주체가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어를 비롯한 근로인민"(p.12)으로 구체화되었고, 생산수단의 소유도 국가 또는 집단적 소유로 한정되었습니다(p.12).
한편, 북한 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p.13). 특히 주체사상은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과 함께 '주체의 사회주의 헌법 이론'과 '주체 인권론'의 등장을 이끌었습니다(p.14). '주체의 사회주의 헌법 이론'은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발전시킨 독창적인 법 이론으로, 헌법 역시 주체사상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p.14).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주체 인권론"은 앞서 언급했듯이, 인권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적 인간'의 권리"(p.15)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자주성', '창조성'이라는 표현은 주체사상에서 강조하는 개념과 동일하며(p.15), '사회적 인간'이란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권 역시 개인의 존엄성이 아닌, 노동계급으로서 집단 속에서 실현되는 권리로 이해됩니다(p.16). 북한 헌법 제4조가 주권을 '근로인민'에게 귀속시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 헌법의 기본 원리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는 기본권 조항의 해석과 적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의 첫 헌법인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당시 기본권은 어떻게 규정되었을까요? 1948년 9월 8일 헌법이 공포되기 이전부터 북한은 헌법 제정을 준비해왔습니다. 그 기원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북한은 주장하지만(pp.32-33), 실질적인 법 제정 작업은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p.32).
이 시기 북한은 소위 '민주개혁 입법'을 추진했는데, 이는 토지개혁법, 노동법, 남녀평등법, 주요 산업 국유화 조치 등을 포함합니다(pp.33-34). 본 연구는 이러한 개혁 입법이 "사실상 소련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p.34)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소련파였던 정률의 증언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에서 제작, 1945년 10월 평양의 소련군정에 이송되었"고, "이것을 다시 고려인 18명이 번역하여 김일성 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p.34, 주석 46)이라고 합니다. 이 법안들은 대표기관의 비준 없이 우선 공포·시행된 후 사후에 인민회의의 비준을 받는 형식을 취했습니다(p.34).
이 중 '노동법령'(1946.6.24 제정)과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1946.7.30 제정)은 이후 헌법상 기본권 조항의 토대가 됩니다. 노동법령은 8시간 노동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유급휴가, 모성보호, 사회보험제 등을 규정했습니다(p.35). 하지만 본 연구는 이 법이 "사실상 자본주의적 요소를 상당히 함유하고 있었기에 초기 정권의 수립과정에서 거의 적용되지 못하고 사문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p.36)고 평가합니다. 김일성 스스로도 노동법 제정에 대해 "소련 군대가 북조선에서 민주주의적 발전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려합니다."(p.36)라고 언급하며 소련의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남녀평등법령은 선거, 노동, 교육에서의 평등, 강제결혼 금지 등을 명시하며 봉건적 잔재 청산을 목표로 했지만(p.36), 본 연구는 북한에서의 여성 해방이 "이념적 도구적 기능이 강조되어 왔다"(p.37)고 분석하며, 여성이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주체로서 강조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본격적인 헌법 제정 논의는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 회의에서 시작되어 임시헌법제정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pp.37-38). 1948년 초 작성된 임시헌법 초안 제2장에는 공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가 규정되었습니다(p.38). 초안에는 공민의 동등권, 선거권(친일파, 민족반역자 제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김일성이 이전에 언급했던 내용과 스탈린 헌법의 사회주의 기본권 내용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pp.38-39). 또한 개인 소유 재산 보호, 인신 및 주택 불가침, 서신 비밀 보장, 의무 교육, 의료 지원 등도 언급되었습니다(p.39).
특히 주목할 점은 [법 앞의 평등] 조항과 [종교의 자유] 조항의 변화입니다. 임시헌법 초안 제11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체 공민은 '법령 앞에 평등하다'."(p.40)는 명문 규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남한의 과도입법의원 헌법 초안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었습니다(pp.40-41). 하지만 최종 제정된 북한 헌법에서는 이 문구가 삭제되었습니다(p.40). 헌법 초안 보고자인 김두봉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없이 "원안보다는 적절 한 것"(p.40)이라 판단하여 수정 제안을 수용했다고만 언급했습니다. 본 연구는 북한 지도부가 '법'을 부르주아 계급의 착취 수단으로 인식했고, '법 앞의 평등'이 인민민주주의 혁명성을 부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p.41). 즉, 북한에서의 평등은 법 앞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계급적 평등, 즉 국가가 공민에게 부여하는 평등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법치주의보다 당과 정치의 우위를 중시하는 북한 체제의 특징을 보여줍니다(p.41). 결국 "법 앞에 평등" 규정은 이후 북한 헌법에 단 한 번도 다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p.41).
종교의 자유 역시 초안(제14조)에서는 "교회는 국가로부터 분리하며 학교는 교회로부터 분리한다"(p.41)는 정교분리 원칙과 종교의 정치 악용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최종 헌법에서는 "공민은 신앙 및 종교 의식거행의 자유를 가진다"(p.42)는 단순한 문구만 남았습니다. 이는 당시 북한 내 주요 정당이었던 천도교 청우당의 정치적 영향력과 이를 우려한 소련의 개입 때문이었습니다(p.42). 소련은 초안의 정교분리 조항이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참여하는 청우당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양심과 신앙의 자유 종교의식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며, 교회는 국가로부터 분리되며, 종교단체는 종교 활동에서 자유롭다. 성직자를 육성하는 학교를 둘 수 있으며, 이 학교는 국가의 전반적인 통제 하에 있다. 교회와 종교를 반민주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금지한다. 국가가 종교단체에 대해 물질적인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pp.42)는 구체적인 수정안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양측의 타협 끝에 관련 조항들이 대거 삭제된 것입니다(pp.42-43).
사적 소유권의 경우, 1948년 헌법은 초안과 달리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로 국가, 협동단체 외에 "개인자연인이나 개인법인"(p.44)을 명시했습니다. 또한 제정헌법 제8조는 토지, 축력(가축의 힘), 농기구, 중소산업 기업소, 중소상업기관, 주택 등에 대한 개인 소유를 법적으로 보호한다고 규정했습니다(pp.44-45). 이는 중소산업과 상업까지 국유화하자는 수정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두봉이 "중소산업 상업가들의 개인 경제부분을 참여케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p.44)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 과정에도 소련의 입김이 작용했는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땅속의 광물 기타부원...(중략)...과거일본인이 소유했거나 일본인과 결탁해 조선인민을 침해한 자들이 소유했던 것은 국가소유로 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p.45)는 구체적인 지령을 내렸고, 이는 헌법에 반영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인 소유 인정은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전 과도기적 인민민주주의 단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1948년 북한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은 당시 북한의 정치 상황, 소련의 강력한 영향력, 그리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려는 지향성 속에서 복잡하게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법 앞의 평등'과 '종교의 자유' 조항의 변화는 초기 북한 헌법의 성격과 한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1972년, 북한은 기존의 인민민주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합니다. 이는 북한 헌법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북한 스스로 이 헌법을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이룩된 성과의 법적 총화"(p.46)라고 규정했듯이, 1950년대 후반 완료되었다고 선언한 사회주의적 개조 사업의 결과를 헌법에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은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초안 발표 연설에서 "종전의 헌법은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성과를 법적으로 고착시킨 것으로써 낡았다."(p.48)며, "종래의 헌법이 오늘의 현실에 맞지 않고, 모순되는 것도 많기 때문에 우리는 헌법을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고치기로 하였다."(p.48)고 밝혔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 헌법이 이미 달성된 정치, 경제, 사회적 질서를 규범적으로 확인하는, 이른바 '[정복된 영역]'(Conquered Territory)(p.48)을 기술하는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즉,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변화를 법적으로 확정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은 1948년 헌법과 비교하여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도 이념 변화: 맑스-레닌주의와 더불어 [주체사상]이 국가 지도 이념으로 명시되었습니다(p.48). 이는 당시 중-소 분쟁과 미-중 화해 국면 속에서 북한이 독자 노선을 강화하고 김일성 1인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반영합니다(p.48).
권력 구조 변화: 김일성을 국가주석으로 하는 주석제가 도입되어 김일성의 유일적 지배 체제가 헌법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p.49). 이는 이후 김일성-김정일 유훈 통치의 기반이 됩니다(p.49).
소유 형태 변화: 생산수단의 소유를 "국가와 협동단체만이 소유한다."(p.45, 주석 69 및 70)고 한정하고, 1948년 헌법에 있던 개인의 중소기업 및 상업 경영 자유 조항(구 헌법 제19조)을 삭제했습니다(pp.51-52). 이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사회주의 헌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p.52).
기본권 분야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헌법 제49조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p.49)는 기본권의 대원칙 조항이 신설된 점입니다. 이 집단주의 원칙은 이후 북한 기본권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가 됩니다. 이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기본권의 출발점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 헌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입니다(p.49). 본 연구는 이 집단주의 원칙이 노동계급의 본질적 특성을 반영하며, 공산주의 사회생활의 전제로서 집단의 방향과 목적에 개인이 따라야 함을 의미하고, 결국 개인의 이익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것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고 분석합니다(p.49).
개별 기본권 조항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거권: 선거 연령이 만 20세(1948년)에서 만 18세(1956년 개정)를 거쳐 만 17세로 하향 조정되었습니다(p.50). 선거권 박탈 대상에서 '친일분자'가 삭제되었는데, 이는 사회주의 혁명 완수로 더 이상 친일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대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p.50).
신소 및 청원권: 1948년 헌법 제25조에 있던 공무원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삭제되었습니다(p.23, p.50).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제53조)는 규정되었으나, 동시에 "사회주의제도를 반대하는 온갖 적대분자들의 책동에 대하여 혁명적 경각심을 높이며 국가비밀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제71조)는 규정을 두어 표현의 자유가 체제 수호의 맥락에서 엄격히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p.50). 특히 북한 헌법에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p.50). 북한 문헌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주로 '양심적 민족자본가'를 지칭하거나 '민족적 양심', 또는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과 연결되어 사용될 뿐, 개인의 내면적 자유로서의 양심과는 거리가 멉니다(p.51, 주석 77).
종교의 자유: 1948년 헌법의 단순한 규정 대신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제54조)고 개정하여, 종교를 믿을 자유뿐 아니라 종교를 반대하고 선전할 자유까지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명확히 했습니다(p.43, p.50).
신체의 자유: 1948년 헌법에서는 별도 조항(제24조 2항)으로 규정되었던 "재판소의 결정 또는 검사의 승인이 없이는 체포되지 아니한다"(p.51)는 인신 체포 제한 규정이, 1972년 헌법에서는 주거의 자유, 서신의 비밀 등과 함께 묶여 제64조에 규정되었고, 하단에 "법에 근거 하지 않고는 공민을 체포 할 수 없다"(p.29)는 문구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형식상 법률 유보 원칙을 따른 듯 보이나, 구체적인 영장 제도, 묵비권, 변호인 조력권 등 절차적 보장 규정이 미비하여(p.51) 실질적인 보호 장치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근로의 권리: 1948년 헌법 제15조의 '동일한 노력에 대하여 동일한 보수를 받을 권리'(p.51)에서 나아가, 1972년 헌법 제56조는 "공민은 능력에 따라 일하며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p.51)고 수정하여, 능력과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를 명문화했습니다.
기타 사회권: 휴식권, 무상치료 및 사회보장권, 교육받을 권리, 과학·문학예술 활동의 자유 등 사회권적 기본권 규정들이 구체화되거나 신설되었습니다. 특히 '혁명투사, 혁명렬사가족, 애국렬사가족,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에 대한 특별보호 조항(제61조, 현행 76조)이 신설된 것은, 김일성과 함께 항일 운동을 한 혁명가들에 대한 예우이자 "대를 이어가며 혁명을 끝까지 완수할 데 대한 조선의 시종일관한 혁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조선인민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성을 다하도록 힘 있게 고무"하려는(p.27) 의도로 해석됩니다.
결론적으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은 사회주의 개조 완료 선언과 함께 북한식 집단주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고,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며, 기본권을 국가 목표 달성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재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헌법은 또 다른 중요한 변화들을 겪게 됩니다. 특히 1992년 4월 9일 개정된 헌법은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불립니다(p.52). '우리식 사회주의'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북한의 정치경제 체제가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용어"(p.52)입니다. 이는 1980년대 말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라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고 내부 체제를 결속하려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등장한 개념입니다(p.52).
1992년 헌법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 이념 변화: [맑스-레닌주의]가 국가 지도 이념에서 삭제되고, 주체사상이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p.52). 이는 이미 1980년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 이념으로 선포한 것(p.52, 주석 80)을 헌법에 반영한 것입니다.
권력 구조 변화: 국가주석의 권한이 일부 축소되고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국방위원회가 중앙인민위원회로부터 분리되어 국가 국방 부문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승격되었습니다(p.52).
경제 정책 변화: 경제 정책의 다각화, 다변화 요구를 반영하여, 자립적 민족경제 기반 위에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p.52)를 추구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기본권 조항 변화: 공민이 되는 조건을 국적법에 위임하고, 재외공민 보호 규정을 "공민은 거주지에 관계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호를 받는다"(p.16, 제62조)로 정비했습니다(p.53). 종교의 자유 조항(제68조)에서 '반종교선전의 자유' 문구를 삭제했지만, 여전히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 할 수 없다."(p.53)는 강력한 제한 규정을 유지했습니다. 본 연구는 문구 삭제가 종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합니다(p.53). '인민의 복지향상'을 위한 국가의 의무 조항들, 예를 들어 "국가는 모든 근로자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하여 준다."(제25조), "국가는 사회교육을 강화하며 모든 근로자들이 학습할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보장한다."(제48조), "국가는 생산에 앞서 환경보호대책을 세우며... 인민들에게 문화 위생적인 생활환경과 노동조건을 마련하여 준다."(제57조) 등이 신설되었습니다(p.53). [거주 및 여행의 자유](제75조) 조항("공민은 거주, 려행의 자유를 가진다.")이 처음으로 헌법에 규정되었습니다(p.26). 하지만 본 연구는 당시 북한 주민 인터뷰(2014년 탈북자 대상 조사에서 95.1%가 여행증 필요하다고 응답, p.27)를 근거로 실제로는 여전히 여행 허가증이 필요하며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된다고 지적합니다(pp.26-27). 배급제 붕괴와 장마당 활성화로 과거보다 이동이 늘고, 국제 사회의 비판을 의식하여 헌법에 규정했을 수 있지만, 실질적인 자유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조항에 대해서는 북한의 연구 문헌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단지 "조선인민들의 안정된 생활조건과 문화정서 생활을 더욱 확고하게 담보해준다"(p.27)는 추상적인 설명만 발견됩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헌법은 김정일 체제를 공고히 하고 김씨 일가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됩니다. 1998년 9월 5일 개정 헌법에서는 처음으로 [서문]이 등장하여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 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 나갈 것"(p.54)임을 선언하고,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며 새 헌법을 '김일성 헌법'으로 명명했습니다(p.54). 또한 국가주석제를 폐지하고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서 최고 권력자임을 명확히 했습니다(p.54). 본 연구는 이를 두고 "죽은 수령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새로운 수령에게 넘겨주는 과정이자 유훈 통치의 산물"(p.54)이며, "김정일을 향한 충성이 김일성에게 못다 한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길이라는 논리를 정립함으로써 마침내 김정일의 집권기반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통치이념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p.54)고 평가합니다.
2009년 4월 9일 개정 헌법에서는 [선군정치]가 주체사상과 함께 국가 최고 지도 이념으로 추가되었습니다(p.54). 또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이 모두 삭제되었는데, 이는 동구권 붕괴와 북한 내부의 경제난 등으로 공산주의 이념의 현실성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p.55). 김정일 스스로도 "공산주의는 파악이 안된다. 사회주의는 제대로 해보겠다."(p.55)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09년 헌법 제8조 제2항에 처음으로 "[인권 존중 및 보호]"("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라는 문구가 명시되었다는 사실입니다(p.7, p.55). 이전까지 '인권'이라는 표현은 변호사법 등 하위 법규에만 등장했었습니다(p.7). 이 시기 북한은 장애자보호법, 연로자보호법에 이어 여성권리보장법, 아동권리보장법 등을 제정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본 연구는 이것이 "체제유지에 부담이 없는 여성, 아동, 장애인 분야의 법제 정비에 주력"하면서 "내부적으로 체제강화를 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선전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의도"(p.7)로 평가합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2012년 4월 13일 개정 헌법은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법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국방위원회의 최고 직책 명칭을 '위원장'에서 '제1위원장'으로 변경하여 김정은이 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김정은이 최고영도자로서 국가 전반을 지휘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p.55). 서문에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명시하여 김정일의 업적을 기리고 군사 강국의 이미지를 부각했습니다(p.55). 이후 2013년 4월에는 금수산태양궁전(김일성, 김정일 시신 안치 장소)을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며, 전체 조선민족의 존엄의 상징이고 영원한 성지"(pp.55-56)로 규정하는 내용이 서문에 추가되는 등, 김씨 일가의 신격화와 권력 세습 정당화 작업이 헌법을 통해 지속되었습니다.
이처럼 1992년 이후 북한 헌법 개정 과정은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김씨 일가의 권력 세습 정당화, 그리고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라는 통치 이념 강화라는 목적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인권 존중'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기본권 체계의 본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지금까지 북한 헌법의 기본권 조항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북한 헌법상 기본권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단주의 원칙] 우선: 북한 헌법 기본권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는 점입니다(p.56). 헌법 제63조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제81조는 공민에게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p.56)는 의무를 부과합니다. 이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과는 정반대의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본 연구는 북한이 이러한 집단주의 원칙을 그들의 정치사상적 통일을 위한 의무로서 강조하며, 심지어 "그 어느 나라의 헌법에도 규정된 것이 없는 독창적인 것이며, 특징적인 것이다."(p.57)라고 자평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집단주의가 권리 보장의 원칙이라기보다는, 공민이 따라야 할 '의무' 규범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법적 평등] 아닌 [계급적 평등]: 북한 헌법에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규정이 없습니다(p.57). 1948년 임시헌법 초안에 잠시 등장했으나 최종 헌법에서 삭제된 이후 단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p.57). 대신 제65조에서 "공민은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다 같은 권리를 가진다"(p.57)고 규정하는데, 이는 모든 개인이 법 앞에서 동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북한은 주권의 주체를 '근로인민'(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텔리)으로 한정하며(p.58, 헌법 제4조), 평등 역시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내에서의 평등을 의미합니다. 본 연구는 북한의 평등 개념이 "계급적 대립이 없고, 착취와 압박이 없으며, 모든 공민들이 리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되어 있기에 사회주의 사회에서 비로서... 권리평등을 실현 하게 되는 것"(p.58)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부르주아 계급과의 차별은 당연하며, 오직 노동자 계급 내부의 평등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통한 자유권]: 북한 헌법에 명시된 자유권(신앙, 신체, 표현, 거주·여행 등)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방어권적 성격보다는, 국가에 의해 주어지고 통제되는 실정권적 성격이 강합니다(p.58). 즉,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국가를 통한 자유' 또는 '국가를 향한 자유'입니다(p.58, p.68). 예를 들어, 신앙의 자유(제68조)는 보장된다고 하면서도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p.59)는 제한을 두며, 북한 당국은 "오늘 조선의 근로자들과 청년들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주체사상의 심오한 진리를 심장깊이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는 그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있다"(p.59)고 주장합니다. 이는 실제로는 종교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함을 보여줍니다. 표현의 자유(제67조) 역시 개인의 비판적 목소리보다는 "주체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고, 자기의 정치사상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나가"기 위한(p.60), 즉 체제 선전과 학습을 위한 집단 동원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권리 위의 의무] 강조: 북한 헌법은 공민의 권리보다 의무를 훨씬 강조합니다(p.60). 특히 제81조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 수호 의무', '조직과 집단 존중 및 사회와 인민을 위한 헌신 의무'(p.60)나 제85조의 "공민은 언제나 혁명적경각심을 높이며,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p.60)는 의무 등은 매우 추상적이고 광범위합니다. 북한은 이러한 의무들을 "그 어느 나라 헌법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정당한 규정"(p.60)이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심지어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사회주의사회에서 집단생활, 특히 정치조직생활과 유리된 사람은 사실상 '죽은 몸과 같다'"(p.60)고 하며, 조직과 집단에 대한 헌신을 공민의 신성한 법적 의무이자 고상한 정치 도덕적 의무로 간주합니다(p.60). 조국보위의무(병역의무, 제86조), 근로의무(제83조), 국가 및 사회협동재산 보호 의무(제84조), 법 준수 의무(제82조) 등도 매우 강조됩니다(p.61). 반면, 국가배상청구권, 재판청구권, 형사보상청구권, 노동 3권 등 기본권 침해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인 구제 장치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p.69). 이는 북한 헌법이 개인의 권리 보호보다는 국가와 체제 유지를 위한 공민의 의무 이행에 훨씬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북한 헌법상 기본권이 서구적 의미의 인권과는 거리가 멀며, 주체사상과 집단주의라는 독특한 이념 체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북한 헌법은 권리의 선언보다는 의무의 강요에,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통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헌법에는 공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여러 조항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인권 존중 및 보호'라는 문구까지 포함되었습니다(p.7, p.55). 하지만 이러한 헌법 규정들이 북한 주민들의 실제 삶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본 연구는 헌법 규정과 현실 사이의 큰 괴리를 지적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2014년 북한인권실태조사(p.62)에 따르면, 북한 이탈주민의 대다수(74.8%)는 북한 사회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다고 생각했으며, 74.4%는 스스로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88.3%는 권리보다 의무가 많았다고 느꼈고, 62.1%는 '인권'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북한 주민의 66%는 북한에 인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부정했습니다. 통일연구원의 2017년 북한인권백서(pp.62-63) 역시 초법적이며 자의적인 처형, 광범위한 사형 적용,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 자의적 체포 및 구금,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일상적인 감시를 통한 사생활 침해,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 등 암울한 인권 실태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의 자유는 "신앙생활을 하다 적발되면 정치범으로 처리될 수 있"기 때문에(p.63) 사실상 "[종교 박해]"에 가까운 수준이며(p.63), 응답자의 82.5%가 북한을 신분제 사회로 인식하는 현실(p.63)도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북한의 기본권 규정이 대외 선전용이거나 체제 유지를 위한 명목상의 장치에 불과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p.63). 북한 헌법의 기본권은 본 연구의 분석처럼, "국가로 부터의 자유 라기 보다는 사회주의 혁명의 완수를 위한 집단적, 사회적 인간을 상정한 권리이며, 권리 보다는 정치사상의 통일을 위한 의무로서의 권리"(p.68)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즉, 개인의 존엄성 보호보다는 체제 유지와 국가 목표 달성에 종속된 형태입니다. 본 연구가 지적하듯, 이는 "'표현할 권리가 아닌 표현해야할 의무'"(p.68)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법에 의한 통치, 즉 [법치국가(法治國家)]는 실현될 수 있을까요? 법치국가란 사람이나 권력자의 자의(恣意)가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모든 국가 권력 행사가 법에 구속되고, 권력 분립과 개인의 자유 보장을 핵심 요소로 합니다(p.64). 하지만 북한의 법 인식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김일성은 일찍이 1949년 검사장 회의 연설에서 "'정치를 떠나서는 법을 논의할 수 없으며 우리 당 정책을 떠난 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검찰일군들이 당 정책을 모르고서는 당의 의도에 맞게 법을 집행할 수 없습니다."(p.64)라고 말하며 법보다 정치와 당의 우위를 명확히 했습니다. 북한에서 헌법은 "노동계급의 당과 국가의 노선과 정책을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체 법"(p.64)으로 인식되며, 당의 정책적 요구가 헌법의 내용을 결정짓는 구조입니다(p.64).
최근 북한이 1970년대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사회 통제 수단이자 준법 생활 양식이었던(p.65) '사회주의법무생활' 강화를 넘어 '[사회주의법치국가건설론]'을 언급하고 있지만(p.65), 이는 서구적 의미의 법치와는 다릅니다. 북한의 '법치'는 여전히 "주체사상에 근거하여 당의 영도 밑에"(p.66) 이루어지는 것으로, 김정일이 제시했다고 선전되는 이 사상은 "사회주의국가가 왜 법치국가로 되어야 하며 사회주의법치국가는 어떤 국가이고 어떻게 건설하여야 하는가 하는 법치국가건설의 기본문제들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고 있다"(p.66)고 주장됩니다. 하지만 그 실제 목적은 외부 사상 문화적 침투를 막고, 정치 외교적 압력과 경제 봉쇄에 대응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결사 옹호하는 통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pp.66-67).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권력이 법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실질적인 권력 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에서의 진정한 의미의 법치국가 실현은 요원하다고 전망합니다(p.67). 헌법상 기본권 규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체제 변화와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 헌법 스스로가 "인민들 자신이 만든 국가관리의 기본이므로, 자신 스스로 만든 헌법과 법령은 인민의 의사와는 애초에 다를 수가 없고, 인민의 의사는 당과 수령의 의사와 일치 하는 고로 당과 국가, 그리고 인민이 일치 할 수밖에 없는 구조"(p.70)라고 전제하는 한, 개인의 권리가 설 자리는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 보고서는 북한 헌법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기본권'이라는 창을 통해 흥미롭게 탐색합니다. 단순히 법 조항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1948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헌법 개정의 역사적 맥락과 그 속에 숨겨진 정치·사회적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냅니다. 특히 '주체사상', '집단주의', '사회주의 법치국가'와 같은 북한 고유의 개념이 헌법상 기본권 조항에 어떻게 반영되고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련의 개입과 같은 외부 요인은 어떻게 작용했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북한 체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지적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피상적인 접근을 넘어 북한 내부의 논리와 헌법적 근거, 그리고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사회와 법, 그리고 인권 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얻고자 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본 글은 조재현, "북한헌법상 기본권조항 변화의 특징과 전개방향" (2017), 정책연구 보고서 pp.1-71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보고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정책연구관리시스템(PRISM) 게시판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prism.go.kr/home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