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감정의 빛을 느껴보아요. with 타막여우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한 동안 부아를 느끼는 사람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을 드러내는 길은 참 여러 가지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몸짓으로 또렷하게 드러내는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들은 목소리가 한껏 커진다거나, 손을 불끈 쥔 채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몸짓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런 모습을 그저 버릇없거나 마음 다스림이 서툰 이들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저 또한 여러 가지 마음결을 겪으면서 문득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고, 살펴보고 싶은 너그러움이 생긴 것 같습니다. 부아라는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사하라 모래벌.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밭과 뜨거운 바람이 가득한 이곳은, 그 자체로 살아남음의 신비로움을 보여줍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단봉낙타가 되었다고 마음속으로 그려봐 보세요.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바람과 모래먼지가 몰아치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하라의 단봉낙타는 그런 거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갑니다. 그 까닭은 바로, 낙타의 남다른 콧구멍에 숨어 있습니다. 단봉낙타의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낙타의 콧속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콧구멍을 꼭 닫아 놓은 듯한 모습이지요. 이런 남다른 콧구멍 덕분에 낙타는 뜨거운 바람과 모래먼지로부터 숨길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모래벌의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낙타는 콧구멍을 오므려 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꼭 필요한 만큼만 숨을 들이쉽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단봉낙타가 되어본다고 마음속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마치 뜨거운 온돌방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잠시 온돌방을 이야기하자면, 온돌방, 곧 찜질방은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겨레의 쉼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증소'라 불리었다지요. 한증소가 어디냐고요? 아픈 몸을 땀으로 다스려 몸앓이를 고쳤던 곳입니다. '몸을 고치는 곳'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찜질방은 사하라 모래벌처럼 목숨이 아슬아슬한 곳은 아니지요. 모래벌의 열기는 그보다 훨씬 더 거셉니다.
자 다시, 그 뜨거운 모래벌 한가운데 내가 있다고 마음그림해봅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 안이 바싹 마르고, 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길이 따끔거립니다. 그 뜨거운 바람이 식도를 타고 폐까지 닿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속이 쓰리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러옵니다. 이 뜨거움과 답답함이 어쩌면 '부아가 치밀 때'의 마음과 닮지 않았을까요?
다만 모래벌 한가운데 선 이와 부아가 치민 이의 다른 점은, 스스로 그런 뜨거운 자리에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입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숨 막히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답답함을 풀어낼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로, 부아라는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이번엔 또 다른 극한 곳인 물속을 떠올려봅니다. 여러분은 물속에서 숨을 참고 들어가 본 적 있으신가요? 혹시 없다면, 집에서 세숫대야에 얼굴을 살짝 담그고 짧게나마 숨을 참아보는 것도 에돌은 겪음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물속에서 서른 숨결 즈음 숨을 참아본 적이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고, 끝내 참지 못해 "어푸!" 하며 물 위로 올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답답함과 두려움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이처럼 숨도 구 없이 오롯이 숨만 참고하는 잠수를 '무호흡 잠수'라 부르지요. 저는 얕은 물(20cm)에서 잠깐 해본 것이지만, 제주 바다 해녀들은 바닷속 스무 길(20m)이나 되는 깊이까지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그 깊은 바다에서 숨을 참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아득하지요.
이렇게 숨을 오래 참는 일이 잦아지면 몸에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실제로 해녀나 바다잠수꾼 가운데는 '숨병'이라 부르는 증세를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면서 갑자기 어지럼이 밀려오고,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자꾸 찾아오는 거지요. 그 순간의 아찔함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숨 막힘과 답답함, 어쩌면 부아가 치밀 때 우리가 느끼는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요?
사하라 모래벌의 단봉낙타가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을 내뿜는 모양이 떠오른다면, 제주 해녀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부아를 삭이며 가슴속 열기를 천천히 내보내는 모양이 그려집니다.
부아를 느끼는 사람의 모습을 다시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예전엔 그런 이들을 버릇없다거나 마음 다스림이 서툰 이들로 쉽게 여겼던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들은 저마다의 아픔 속에서 스스로와 힘겹게 맞서며, 답답한 찰나를 견디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한편으론 참 참하다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듭니다.
부아라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나 자신을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내 안의 뜨거운 감정이 때로는 남에게 상처로 번질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면, 마음을 조금 더 다스리고 어루만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 따스한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내 안에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조용히 들여다보고, 다독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마음을 더 잔잔하게 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살핌이 우리 삶을 조금 더 부드럽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은 어떤 숨결을 내쉬고 있었나요? 그 느낌, 앞으로 어떻게 남기고 이어갈지 생각해 봅시다. 먼 훗날, 당신은 아이와 어떤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그려봅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타막여우가 잠시 그늘에 쉬듯 작은 쉼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