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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Mar 06. 2024

시어머니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남편의 엄마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건 나의 진심이다. 그리고 내가 장점이 많다고 말한 사람은 나와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은 시어머니, 그분이다. 










시어머니는 아름다우시다. 

처음에 시어머니를 봤을 때 조금 놀라기까지 했는데 남편(시아버지)이 15년전에 죽고 혼자 지낸 분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왔다. 또한 연령에 비해 굉장히 건강하고 젊어 보였는데, 10살은 어린 친정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일 정도였다. 시어머니 집에는 장수 유전자가 있는지, 시어머니의 언니분은 80이 다 되는 연세에도 내 결혼식장에 쫄바지에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 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성격이 밝으시다. 이상하리만큼 긍정적인데, 동 연배의 노인분들이 의기소침하고 우울함이 있는 것에 비해 첫 인상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캔디 그 자체였다. 우울함 같은건 찾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요리도 잘하신다. 그냥 '잘한다'를 넘어 요리에 관심이 많으셔 수준급의 요리를 선보이시는데, 깻잎에 각종 야채를 넣고 돌돌말아 절여 먹는 신기한 장아찌가 있는가 하면, 김치에도 젓갈을 다양하게 넣어 시원하고 깔끔하게 담그신다. 시어머니가 만드는 반찬들은 요리를 못하는 친정엄마 밑에서 자라 입맛이 개떡인 나에게도 고급지고 세련되게 느껴졌는데, 반찬가게에 내다 판다면 아주 비싼값에 팔아도 잘 팔릴 것 같았다. 


거문도의 8자매의 막내딸로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않고 서울로 상경해 큰 언니 집에서 기거했다는 학력을 고려한다면 무척 총명하고, 자신의 앞가림을 정확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게으르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시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장점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칭찬해 주는 말도 전혀 듣지 않으시며, 자신이 그런 점을 가졌다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대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 시어머니 본인은 자신의 장점이 '재태크' 능력과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빌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70을 바라보며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아오신 시어머니에게 여의도 증권맨 같은 재태크 능력이 있을리 없고, 빌라를 올릴 거액도 없으시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식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며 돈을 달라고 하거나 빌라 언제 해줄꺼냐고 다그치는 것이 전부다. 남들이 해줘야만 하는 것을 자신의 장점이라 집착하며 불행하다 느끼신다.  









가끔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답답한 마음이 든다. 자신이 가진 좋은 면을 발전시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취미생활도 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행복한 쪽을 택하심이 어떠할까. 








나는 퇴근길 전화로 엄마에게 시어머니의 이런 장점과 내가 가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엄미는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그럼, 엄마의 장점은 뭔데?"


나는 엄마의 장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 역시 시어머니처럼 자신이 가진 장점에 대해선 무시하거나 관심이 없는 편이고,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 사람은 모두 그런 것일까. 나는 엄마가 물어본 김에 장점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졌다. 


"엄마는 말을 조리있게 잘하잖아."


보통의 엄마라면 그건 아니라며 손사례를 치고 들어보지도 않으려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방금 시어머니가 본인이 가진 진짜 장점은 무시하고 자신을 오해하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난 뒤라 집중해서 듣는 듯 했다. 


"설득력 있고 조리있게 말을 잘하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이잖아."

"또 있어?"

"엄마는 장점이 많지. 다른 사람에 비해 마음이 넓고 관용적이잖아. 그래서 엄마를 아는 사람들은 엄마를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

"....."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머리가 아주 좋아. 그래서 배운 걸 잘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에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엄마는 다른 사람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있어. 그래서 엄마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을껀데 그렇지 않어?"

"그런 것 같아."


나의 엄마는 장점이 아주 많은 사람임에도 과거 아빠가 사업이 망해 동년 노년에 비해 조금은 가난하게 살고있음을 여전히 슬퍼한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잘 생각해 본다면 엄마 역시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난 시어머니와 엄마의 장점을 말해 준 저녁, 집으로 돌아와 나의 장점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 장점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줄곧 용맹함과 위풍당당함이 나의 장점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남편은 내 장점을 '귀여움'이라고 했다. 엄마와 시어머니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며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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