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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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이 세 글자를 보면 연한 파랑색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하늘이 꼭 연파랑 색이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나에게 하늘색은 당연히 연파랑 색이었다. 아무래도 크레파스와 관련한 기억 때문이리라. 처음 잡은 연파랑 색 크레파스 위에는 ‘하늘색’이라는 세 글자가 당당하게 적혀있었다. 뭐 일 년 중 대부분 하늘이 푸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해가 떠 있는 날, 푸르게 빛나는 하늘이 진정한 하늘색이라고 느끼꼈던 것 같다. 회색 구름으로 덮인 하늘이 보통의 하늘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밝은 햇살이 회색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춘 것만 같은 흐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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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흐린 날이면 색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색色다른' 점이다. 색이 좀 더 선명해 보인다.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는 사라진다. 누군가에 가렸던 색들은 제 색을 드러낸다. 바깥으로 나가 소나무를 보면 녹색 잎이 더 짙푸른 녹색으로 보인다. 단풍나무 몸통의 갈색은 더 갈색답게 보인다. 보라색 철쭉이 더 눈에 띄며, 연분홍빛을 하고 있는 꽃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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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의 키리시마는 우리에겐 하늘의 태양만큼이나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 무언가다. 그는 배구부의 믿음직한 주장이었고, 리사의 멋진 남자친구였고, 히로키의 제일가는 친구였다. 그런 키리시마가 어느 금요일,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열심히 활동하던 배구부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없어진 그 때문에 모두들 ‘멘붕’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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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만 계속되는 것 같은 날들이었다. 그 속에서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색을 발하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는 그 점을 인식한다. "잘난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당연한 것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옥상의 관현악부 친구, 졸업반임에도 입시 준비보다는 야구 연습에 몰두하는 야구부 주장, 자기가 원하는 좀비물을 기어이 찍겠다는 영화부 주장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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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남긴 진동은 물결이 되어 퍼져나갔다. 이 물결에 주변 사람들도 영향을 받았다. 먼저 나와 비슷한 색을 가진 친구들을 발견했다. 언니보다 잘 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는 친구는 자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배구부 새로운 리베로 고이즈미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영화부 주장은 매니악한 영화를 가끔씩 즐긴다는 카스미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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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해는 쉽지 않다. 내가 이해하고 싶은 상대는 내 앞에서 여자친구와 키스를 하기도 하고, 놔두고 온 시나리오를 찾으러 간 교실에서 다른 남자에게 팔찌를 채워주기도 한다. 젠장 맞을 일이지만 어쩌랴.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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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이곳이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라는 좀비물의 한 대사처럼 각자는 각자의 빛을 계속해서 뿜어내면서 살아갈 것이다. 잘 되든, 안 되든. 때로는 당연한 것이 사라져 공허함만이 남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흐린 날일 수록 색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각자의 색을 확인하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도 보일지 모른다. 농구를 사랑하는 친구와, 야구에 최선을 다하는 주장과,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부 주장의 고백을 삼연타로 맞고 나의 위치를 찾은 히로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