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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르타르 Jul 30. 2018

005. 인랑

이만큼 혹평할 영화는 아닌듯 한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 내용을 모르신다면 : 보기 전에 유튜브에 <백수골방>님이 올린 인랑 원작 스토리를 보고 영화를 보면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tJqknDxgo2Y)


[분단시대를 그리는 김지운 감독의 방식]  


분단과 통일 시대를 두고 메시지를 전할 방법은 많다.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로 역사적인 흐름을 추적하면서 과거 시대의 특징과 새 시대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드라마로 실향민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해 통일의 당위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광장과 밀실을 오가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소설로 풀어낼 수도 있다. 김지운 감독은 SF 영화로 표현했다.  


그는 분단 시대를 집단주의·권위주의 시대로 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조직에 희생을 강요당했다.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는 상부에서 지시한 것을 철저히 따르는 상명하복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직장에서 상사가, 국가에서 대통령이 지시한 방침은 쉽게 거스르기 힘든 구조였다. 상부가 결정한 노선에서 어긋나면 긴급조치, 계엄령 등을 통해 쉽게 잡아들이고 길들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운동조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씀, 바오, 2012)라는 책의 저자는 지난날 학생운동이 집단주의의 함정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대의를 위해 개인은 희생당할 수 있다고 여긴 사회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인랑’ 임중경은 분단 시대의 마지막 인물이자 통일 시대의 첫 인물이다. 조직의 명령이 아닌 ‘나’로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유주의 국가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적이었던 과거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누구보다 조직의 명령을 따랐던 인물이다. 그는 영화 끝무렵에 그런 과거를 청산하고 진짜 자유주의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친다.
  

그리고 강동원은 너무 잘생겼다. [사진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타인의 고통]  

그럼 시대의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감독은 극 중 이윤희가 들고 있었던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통해 방법을 제시한 듯하다. 수전 손택은 이 책에서 ‘사진(이미지)이 우리 인식 구조를 어떻게 바꿔왔는가’를 파고든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먼 세계의 고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통에 너무 익숙해지게 되었다는 점을 말한다. 연민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데 익숙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전 손택은 그 익숙함을 깨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뭘까. 권위주의로 얼룩진 분단 체제다. ‘조직이 생존해야 한다’ 혹은 ‘상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를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 뉴스를 뒤덮는 사법 농단, 군대 개혁, 미투 운동 모두 권위주의 사회에서 곪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감독은 너무도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 와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알면서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깨 보자고 얘기한다. 늑대처럼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이 만나는 평화의 문턱 앞에서 던진 것이다. 

한효주가 들고 있는 책이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사진 = MBC 출발비디오여행 캡쳐]


[‘경계인’은 언제나 감독의 중요한 문제의식] 

“뭐 우리 같은 놈들... 양반들 밑에서나 일본놈들 밑에서나 달라질 게 뭐 있어?” 영화 <놈놈놈>에서 주인공 윤태구(송강호)는 박도원(정우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주에서 도적질을 일삼는 윤태구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소도 키우고 양도 키우고, 말도 키우'는 것이다. 그게 끝이냐는 박도원의 물음에 그는 고심하다 덧붙인다.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울거야.” 이 장면을 보면서 독립운동이라는 선과 제국주의라는 악의 이분법 사이에서 ‘누군가는 저렇게 생각하면서 살았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캐릭터가 바람직하다와는 다른 문제다)  


인랑에서는 이연희가 이와 비슷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살기 위해 반통일 테러단체 섹트에 들었다가 공안부에 들었다가 특기대에 협조한다.(물론 이 영화에서는 공안부도 특기대도 절대 선 절대 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연희는 거센 파도에 휘둘렸던 인물이자, 그 속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선과 악이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다는 감독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캐릭터라 생각했다. 놈놈놈의 윤태구와 인랑의 이연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임중경의 입으로 무기도 없고 적의도 없는 사람이라고 변호해줬다는 점이랄까.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나면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는 게 정말 슬픈 것’이라는 이윤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인간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시대였던 분단 시대에서 휩쓸렸던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게 감독은 미래라는 시간을 설정해서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했다. 


 

[아쉬운 것은?] 


이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법(法)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기대도, 공안부도 정부조직임에도 법을 고려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이연희를 특기대 훈련소로 데리고 온 장면에서도 훈련소장(정우성) 임의로 즉결처분을 하고자 한다. 


전쟁범죄나 반인도적인 범죄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도 전쟁범죄 항에 <포로 또는 다른 보호 인물로부터 공정한 정식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고의적으로 박탈>한 경우 전쟁범죄로 보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도 재판을 받을 권리는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도중 벌어진 수많은 학살 등의 문제가 재판받을 권리를 무시한 데서 발생하였다. 


한국사회에서는 재판을 받았다 하더라도 졸속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았다. 최근 들어 재심 후 무죄 판결이 줄을 잇는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간첩 조작 사건에서 법은 권위주의 국가를 옹호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면 어떨까. 


만약 임중경이 훈련소장에게 ‘이건 우리 권한이 아닙니다. 판결을 해도 법원에서 받도록 하시죠’라고 했다면?(너무 뜬금없긴 하다.) 아니면, 사법부마저 공정한 판결을 하지 않는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그려진 사회였다면? 아무튼 즉결심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계속하고(그건 훈련소장이 구시대의 마지막 인물이라 그럴 수도 있다 치지만), 그에 대해 아무 말하지 못하는 임중경의 캐릭터가 아쉬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점은 이야기가 쫀쫀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이연희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모호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놈놈놈에서 윤태구(송강호)는 자기중심을 잡고 박도원(정우성)과 박창이(이병헌)를 이용했고, 밀정에서 박정출(송강호)은 독립운동과 친일 경찰 사이에서만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이연희는 자기 중심도 못잡고 특기대와 공안부뿐 아니라 섹트까지도 왔다 갔다 했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배경은 제시했지만 그 동기가 충분히 전달되기엔 분량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세 조직의 다양한 인물이 각자 다른 욕망을 안고 등장하면서 극이 산만해진 것 같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스토리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긴 했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생각하며 내가 상상으로 채워 나갔기 때문일까(아님 내가 관대했던 것일수도) 개인적으로는 큰 불편함 없이 넘어갔다.


 

[메시지 이외에 다른 볼 만한 이유?] 

맥락을 다 떠나서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과 만난 두 배우의 화보를 감상하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음악도 적절히 긴장감 있고 영화의 분위기를 잘 받쳐줬다. 누구였을까 궁금해하면서 엔딩 크레디트를 봤다. <악마를 보았다>, <동주>, <밀정>의 음악감독 모그(Mowg)였다. 이런 점들을 확인해보는 것도 영화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간의 혹평 때문에 너무 기대를 안 하고 본 작품 이어서일까. 그만큼 비난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진은 움직이는 화보를 찍으셨다 [사진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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