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납함> 리뷰
목요일, [단숨에 책 리뷰]
열다섯 번째 책 : <납함>
“몹시 어렵습니다. 세상이 뒤숭숭하고, 일정한 규정도 없이 마구 돈만 걷어가고, 게다가 작황은 나빠만 가고, 농사를 지어서 팔러 가면 세금만 몇 번이고 바쳐야 하고…” ('고향' 중에서)
1. 왜 읽었나
근대 중국의 지성, 루쉰이 쓴 소설들을 죽 읽어보고 싶었다. 중국 신해혁명과 신문화운동 시기의 중국 상황과 지식인의 상황판단 등이 궁금했다. 납함은 루쉰의 첫 번째 소설집 제목이다.
*신해혁명과 신문화운동이란 무엇인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이후는 그때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신해혁명과 신문화운동은 새로운 제도와 문화라는 토대 위에 강한 국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신해혁명 이전에도 중국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숱하게 있었다. 양무운동부터 변법자강 운동을 지나 신정(新政)까지 정부 주도 아래 다양한 근대화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청의 군대는 전쟁마다 패배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신해혁명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기존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은 왕조라는 정치체제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청조를 타도하고자 했다.
신문화운동은 신해혁명보다는 조금 뒤에 벌어진 일인데, 이 역시 기본적인 배경은 신해혁명과 같다. 이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고 판단했다. 전근대적인 문화는 근대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천두슈(陳獨秀), 후스(胡适), 리다자오(李大钊) 등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으며 이것이 바로 신문화운동의 기원이 된다. 루쉰도 비록 이 시기에 고독감에 빠져 있었지만, 일본 유학 시절 문학을 통해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자 했다는 점을 볼 때 신문화운동에 동조할 여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처음 광인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망설이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 점이 광인일기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어떤 내용인가?
‘납함’이라는 말은 우리 사전에 있지만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말로, 우리 방식대로 표현하면 고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아무 고함이나 다 포함되는 건 아니고 고함의 배경에 특수한 상황이 놓여야 한다. 바로 ‘전쟁’이다. ‘납함’은 전쟁 시작을 알리며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돌진하면서 내뱉는 고함을 의미한다.
루쉰은 첫 소설집에 왜 <납함>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전쟁이 시작하는 순간에 관한 것이라면 <북소리>도 있을 것이고, 제갈량이 써서 올린 것처럼 <출사표>라 붙여도 무방할 터였다. 하지만 루쉰은 어떤 이유에 선지 소설집에 ‘납함’이라는 이름을 써 붙였다. 하필이면 고함일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겪은 일 중에서 ‘납함’ 소리를 들어본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전쟁 상황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어 완전히 이해하는데 한계는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두 가지 경험을 이와 비교해볼 수는 있다.
첫 번째는 군대에서의 경험이다. 군대에서 매일 아침 기상나팔을 불어대면 똑같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장정(壯丁)이 연병장으로 나온다. 지휘관은 ‘전방에 대하여 3초간 함성 발사’따위를 꼭 시키곤 하는데, 아마 이 상황이 ‘납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한다. 군대에서 매일 아침 내지르는 납함 소리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소리는 어둠이 서편 산골 사이로 숨고 동쪽 벌판에서 아침이 떠오른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소리며, 또 위험천만한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는 다짐의 소리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들은 소리로 비교적 최근에 들었다. 바로 2016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내지른 고함이다. 군대에서 아침에 내지른 소리가 듣는 대상을 정하지 않고 내지른 소리라면, 이때 내지른 고함은 듣는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대열을 맞추고 자못 진지한 마음으로 대의(大義)를 가득 담아 외친 고함이니 전쟁을 시작할 때 병사들이 가졌던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고함이 듣는 사람의 정신을 내리치고, 어떤 행동을 하게끔 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굳이 고함일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 내는 소리며, 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상정한 소리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북소리는 비장하지만, 인간의 목소리는 아니다. 인간의 의지를 담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게다가 출사표는 자신의 군주를 위해서 내는 목소리요 글이다. 이런 글로는 자신의 의지를 다질 수는 있지만 듣는 사람의 정신을 내리치고, 어떤 행동을 요구하게 하지는 못한다.
정리해보면, 납함은 나에게서 우리로, 우리에서 타자로 전해지는 목소리다. 외치는 사람의 정신을 가다듬고, 새날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다. 또한, 듣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소리기도 하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루쉰이 그의 소설집에 납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첫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고자 했으며, 둘째, 듣는 사람을 깨우치고자 했다. 그는 우매한 민중을 깨우치고자 했고, 망설이는 지식인이 변화하길 바랐다.
즉 납함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광인일기', '아Q정전'같은 소설은 근대 중국인에 대한 고함이다. 정신 차리라는 고함. 그 속에서 '우매하지만 순박한 민중에 대한 애정', '정신승리하는 민중에 대한 고함', '고쳐야 할 과거 제도', '혁명 투사에 대한 위로' 등을 담아냈다.
3. 어땠나?
그의 글은 격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고 냉철한 어조로 글을 썼다. 따라서 그의 글을 읽고 혁명에 대한 감정이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글은 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투사에게 위로가 될 만한 글이었다. 또한, 세상을 개혁하기 위한 지도(map)가 되는 글이었다. 그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느 대상에 감정을 이입해야 하고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는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흡인력이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당대인이 겪은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아직도 천두슈와 후스의 글보다 루쉰의 글이 많이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민중의 정신을 옹호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정신승리’나 ‘약한 자를 괴롭히는’ 썩은 정신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중국 땅에서 이름 없이 잠깐 머물다 간 모든 생명을 안타까워했다.
루쉰은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남긴다. “조물주의 채찍이 중국의 등판 위에 내리쳐지지 않는 한, 중국은 영원히 이런 식의 중국이지. 결코, 스스로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바꾸려 하지 않을 걸세.” 그는 사람들의 관성적인 삶, 타성적인 삶을 비판한다. 개혁적인 그의 성격으로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관성처럼 사는 사람들은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쉽게 잊고 다시 관성에 빠져 산다. 늘 살던 대로 산다. 한때 변화였던 것은 다시 땅처럼 굳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개혁적인 사람들은 균열을 만들고, 굳어버린 땅에 쟁기를 들고 온다.
2018년에 한국 사회에 신문화운동이 일어난다면 관성에 빠진 한국사회의 문화를 갈아낼 수 있을까? 예를 들면 권위주의적인 문화나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문화를 들 수 있겠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다시 느낀 점을 쓰면서 마무리해보면, 신문화운동은 관성으로 굳은 정신에 쟁기질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변혁을 꿈꾸는 사람에게 지도(地圖)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을 위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