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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Jul 17. 2023

SNS 안 해도 별 문제 안 생긴다

박사과정 유학을 마치며 (4)

박사과정 유학 5년 내내 SNS, 특히나 요새 가장 많이 쓰는 인스타그램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박사과정 동안 바쁘니까 그렇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SNS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유학생들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대체로 자국에 있는 지인들과의 인적교류가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걸 인스타에 올리는 게 나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사과정 동기 대부분은 인스타를 아주 적극적으로 했었다. 인스타가 글로벌한 SNS 플랫폼이라고 느낀 것이, 중국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심지어 세미나나 수업 시간에도 인스타 피드를 확인하곤 했다.


요즘 세상에 인스타를 안 하니 친구가 굉장히 적은 사람인가 보다, 내성적인 사람이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친구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한국에 방문할 때면 늘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 바빴고, 유학생활 동안 기존의 인간관계가 끊어졌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친구들과의 통화가 더 늘어나기도 했다. 해외에서 혹여나 굶어죽을까봐 하는 걱정에 친구들의 연락 빈도가 오히려 늘어난 결과였다. 물론 몇몇 지인들은 왜 SNS를 하지 않느냐, SNS로 일상생활 좀 공유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스스로 곰곰이 비용-편익 분석을 해본 결과, SNS를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롭다고 느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로, 온전히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중요한 성취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묵묵히 전진할 때 가능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SNS는 이 "혼자서 묵묵히 견디는 "을 불가능에 가깝도록 만든다. 누군가 말했듯,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의 일상은 극도로 단조롭다. 이런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이 성취를 이루고, 여행을 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내 정신상태를 무너뜨린다. 예컨대, 고시생이 자기 전 이미 고시에 합격한 친구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훑어본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을까. 그렇기에 SNS를 하지 않을 때 나 스스로에게 온전히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SNS를 하지 않았기에 박사과정 동안 일상생활을 연구에 집중하고, 세미나를 준비하고, 목표로 했던 성취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는 데에 온전히 할애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고 통화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타인이 내 머릿속을 10분 이상 지배했던 적이 없었다. SNS가 끊임없이 송출하는 타인들에 대한 무수한 정보가 차단된, 이 고요하고 잔잔히 흐르는 시간이 나를 더욱 성숙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경험적으로 보아 SNS 메시지, 댓글보다 간간히라도 통화하거나 만나는 것이 인간관계에 훨씬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만남이 더 개인적일수록, 나누는 대화가 더 깊을수록 서로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SNS는 그 포맷 특성상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30분, 1시간 통화할 내용을 인스타 댓글에 쓰지는 않으니까. SNS로는 꾸준히 연락을 하지만 그 이외의 더 깊은 관계로 진전되지 않는 지인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나누지 못했던 그동안의 일상을 얘기할 때 훨씬 더 대화가 풍부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번 약속이 유익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에 방문해서 오랜만에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미국에서의 일상을 얘기하면 대여섯 시간이 나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리곤 했다.


셋째로, 중요한 네트워크는 오프라인에서 발생한다. 물론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에 나오듯 SNS 자체가 기회의 발로가 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여전히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SNS가 피상적인 정보 이상의 것을 제공해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계는 그 점이 더욱 분명하다.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잡마켓에 나오면 추천서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즉, 나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주변 교수들이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 나를 추천하고, 이 기관들은 나를 잘 모르더라도 이 추천자의 평판을 믿고 기회를 주게 된다. 컨퍼런스에 참석할 때에는 누군가 내 발표를 보고 관심이 있다면 발표 이후 티타임이나 식사를 가지며 연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내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채용 기회를 주기도 하고, 공동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 세계은행 컨설턴트로 일하게 된 바 있다.


넷째로, 시간낭비가 너무 극심하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SNS는 어쩌고 저쩌고, 이런 진부한 얘기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SNS를 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분명하다. 석사과정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합리적 결정 하에서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는가를 연구한 적이 있다. 당시 닐슨데이터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활용했는데, 6천 명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사용 흐름을 자동적으로 추적하는 이 데이터가 보여준 가장 극명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에 극도로 중독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 2시간 이상 SNS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SNS를 전혀 하지 않는 나조차도 학창 시절 싸이월드를 꾸미고, 포스팅하고, 댓글을 쓰는 데에 몇 시간씩 할애한 적이 있으니 결코 과장된 수치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모두들 SNS의 폐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SNS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랬다가 인간관계가 끊기지 않을까,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SNS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관계는 별 탈 없이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내가 정말 존중받고, 환영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연락을 준다. 왜냐면 SNS를 안 할 때 오히려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SNS, 타인들의 일상과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에 집중할 때 내가 존중받을만한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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