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교수의 변명

by 천둥소리

다시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며칠 전이었다. 정확하게는 지난 2년 현생이 바빠서 유유자적 뭔가를 써야겠다고 생각할 새가 없었다. 박사과정 때만큼 한량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이미 지나갔다는 소리다. 그 동안 결혼을 했고 아기가 생겼으며, 대학에선 연구하랴 티칭하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빠르게 흐른 시기였다.


싱가포르로 온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거리에서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린다는 점만 제외하면 싱가포르는 생각했던 것처럼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한마디로 필요한 모든 곳이 있었고, 또 가까이 있었다. 미국 북동부 황량한 회색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이 땅에 발을 처음 디딜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아기가 생기고 나서는 결국 이 역마살 같은 생활의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이후에도 글을 쓰겠지만 아기의 존재는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결국 올해 가을 직장을 서울의 모 대학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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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들을 하기에 앞서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일반화하자면 박사학위를 막 받은 초짜 조교수로서의 경험과 소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박사과정 시절의 흔한 착각 중 하나는 일단 조교수로 임용이 되면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초임 조교수는 이제 막 부대에 배치받은 신임 소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학교시스템과 행정에 아는 게 없어 이리저리 치이고 수업시간에 얼타다가 교육서비스 고객인 학생들에게 신랄한 피드백을 받기 일쑤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아직 테뉴어(종신교수직 혹은 정년보장)를 받지 못한 교수는 "계약직" 신분이라는 점이다. 향후 6-7년간 내 연구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군말 없이 짐을 싸서 나와야한다. 신임 조교수의 연구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는 공감하나, 내가 평가 대상이 되면 그만큼 잔인한 제도도 없다. 이 테뉴어 제도와 이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교수의 삶을 정의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뉴어 심사의 핵심적인 요소는 당연히 논문이다. 안타깝지만 많은 경우 수업과 학과 서비스는 부차적인 영역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논문을 요구하는가.


당연히 좋은 대학일수록 좋은 논문을 요구한다. 세계적인 대학이라면 해당 전공의 박사들은 대부분 평생 내지 못하는 탑저널에 출간된 논문"만"을 요구한다. 다른 논문들은 평가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좋은 연구기관일수록 논문의 양이 아니라 논문의 질을 잣대로 보는 것이다. 그보다는 명성이 좀 낮은 대학, 소위 미국의 R1 대학, 혹은 그에 준하는 세계 여러 국가의 명문대들은 잣대를 조금 낮춰준다. 말하자면, 해당 전공 박사들이 들으면 누구나 아는 저명한 저널들에 X편의 논문, 이런 식이다. 연구의 프론티어를 벗어나면 일반적으로 들었을 때 좋은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논문의 질보다는 양을 따진다. 공산품으로 치자면, KS 인증마크를 받은 저널이면 어디라도 X편 이상 쓰면 된다는 식이다. 안타깝게도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좋은 학교에서 오퍼를 받는다는 사실은 독이 든 성배라고들 얘기한다.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에서 교수직을 시작했다가 논문 한편 제대로 게재하지 못하고 훨씬 더 낮은 학교로 떠나게 된 사례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지난해 우리 학과에서 조교수 오퍼를 줬지만 스탠포드에서도 오퍼를 받고 간 케이스가 있었다. 시니어 교수님들은 뿔이 난 건지 어차피 테뉴어를 받지 못할 거고 빅샷만 노리다가 결국에 우리 학과보다 훨씬 더 못한 학교로 옮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악평(?)을 하셨다. 무슨 신포도질이냐 싶겠지만 내가 그 상황이 되더라도 그런 걱정이 들 거라는 생각에 등골이 싸늘했다. 세계적 논문을 써낼 확률이 낮은 평범한 사람이 그런 자리에 우연히 뽑힌다면 행복은 고사하고 연구에 대한 정신적 압박으로 머리가 다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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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에 반대되는 사례도 많다. 이미 30여년 전 일이다. 내가 박사과정을 한 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A 신임교수가 있었는데 5-6년 간 퍼블리시한 논문이 단 한편도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동료교수들은 A 교수의 미래를 길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학과장은 A 교수와 면담 후 오히려 테뉴어 심사를 1년 미뤄줬다. A 교수가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다른 교수들을 달랬다고 한다. A 교수가 몇 년을 바쳐 썼던 그 논문 한 편은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고 2018년 그 공로를 인정 받아 A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A 교수는 그 자리가 요구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역량을 가졌던 것이다.


내가 일하는 대학은 테뉴어를 위해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연구 결과를 요구한다. 어차피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겠지만 이미 테뉴어 심사도 전에 떠날 걸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상황임에도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동료 교수들과 연구에 대해 얘기할 일이 많이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내 스스로도 소속된 곳의 기준에 미달하는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을 써도 아무 저널에나 제출할 수가 없다. 이상하리만큼 동료 교수들은 내 논문이 어디에 투고되고, 어떤 프로세스에 있는지 궁금해했다. 소위 말하는 필드 탑 저널에 투고된 것이 아니라면 상당히 이상한 시선을 주는 분위기였다.


높은 곳에서 시작하면 당연히 퍼블리시되는 논문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저널들을 명성에 따라 순서대로 줄을 세운다면 A 저널 심사에 4개월, 98% 확률로 리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후 B 저널에 제출하면 심사에 4개월. 여기서도 떨어지면 C 저널, D 저널... 2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참고로 이것은 1차 심사를 얘기하는 것이다. 결국 1차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저널 측에서 논문에 상당한 수정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이런 저런 절차를 거치다보면 (소위 필드 탑 저널에서는) 1년 이상 시간이 더 걸린다. 학계 밖에서 보자면, 논문의 심사 프로세스나 연구의 윤리성, 정합성에 대해 의구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프로세스들을 겪다보면 여느 사회시스템이 그러하듯 상당히 엄격하고 빈틈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저널의 명성도가 낮아질수록 심사 프로세스 기간과 엄격도가 낮아지고 더 수월하게 논문을 퍼블리시할 수 있다. 그래서 논문의 수준이 E 저널이라고 정확히 메타인지를 했고 애초에 거기서 투고를 시작했다면 금방 퍼블리시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그걸 힘들게 하는 학교, 동료교수들의 분위기가 존재한다. 결국 내가 대학과 동료교수들이 바라는 수준의 논문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문실적 부족으로 향후 더 수준이 낮은 학교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까지 가중된다. 이러한 프로세스 덕분에 스스로의 수준에 과분한 대학에서 일을 시작할 경우,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살게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내 역량보다 못한 대학에 임용된 것 같더라도 혹시나 겪었을 정신적 고난을 피했기 때문에 다행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돌이켜보면 대학을 옮기고자 한 데에 이 영향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분야든 결국 그 사람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그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중요하다. 공자가 주장했던 정명(正名)과도 부합하는 얘기일지 모르겠다. 내 능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상황에, 운이 좋게도 과분한 자리에 간다면 그건 필시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그 자리에 따라오는 무게감을 견딜 수 있는지, 무게감이 짓눌렸을 때 따라올 파급효과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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