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니지 않은 것으로 나를 증명하기
여권 기한이 만료되어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으러 시청에 갔다. 옆 창구에서는 잠시 소란이 있었는데,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러 온 한 남자가 신분증이 없다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 선생님, 인감증명서를 발급 받으시려면 신분증이 있으셔야 해요.
- 아니, 그러니까. 컴퓨터에 다 들어있을 거 아니야. 신분증이 왜 필요해? 내가 난데 내가 왜 나를 증명을 해!
난감해하는 직원 앞에서 신분증 없이 ‘내가 나다.’ 는 존재 증명을 하고 있는 그 남자의 말에 묘하게 웃음이 나고 말았다. 오호 천재인가?
내 손에 들려있던 기한을 다한 낡은 여권에는 이런저런 들고난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여권이 여행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라면, 사진이나 생년월일이 아니라 수많은 출입국 도장이 여행자의 증명이리라. 여행자의 평행우주에는 이미 가본 곳과 아직 가보지 않은 곳만이 존재할 뿐이다.
먼 곳으로 떠나보면 안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나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쌓아 올린 성벽 안에서 어떤 회사의 직장인으로, 누군가의 가족으로, 신용카드나 소유한 집의 등기부 등본 같은 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지만, 그 성벽을 벗어나는 순간 그 확실했던 증거들은 존재의 겨우 일부만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수상한 입국자이거나, 식사 중인 관광객이거나, 기차표를 든 동양인, 또는 길을 묻는 낯선 이방인으로.
결국 내가 지니지 않은 것들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복잡한 수학 공식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는 말이지... 뭐냐 하면... 그러니까.. 흠..
우리는 모두 한 때 삶의 목적이 존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도 안되는 삶의 우연들에 웃고 울다보면, 그 우연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말도 안되는 ‘우연’은 때로 행운이나 불운이기도 하고, 자의이기도 타의이기도 하며, 삶의 앞면이거나 뒷면, 혹은 옆면이나 바닥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 잡지에서 톱스타는 아니지만 꾸준히 연기를 해온 한 배우가 인터뷰 중 ‘본의 아니게 겸손해지는 인생’이라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되는 중이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겸손해 진다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우연들’을 받아 들이면서 견딘 시간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길’에 대해 귀 기울이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는 형의 기타를 치다가 뮤지션이 되기도 하고, 사업에 여러번 실패한 후 아귀찜 사장님이 되거나, 오랜 망설임 끝에 유학을 포기하고 엄마가 되기도 한다. 시작과 너무 다른 길이어서 실패라고도 말할 수 있는 그런 삶들.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된 길들이 생(生)의 여권에 남겨진 도장들을 들여다보면, ‘실패’가 아닌 ‘우연’의 길이었을 뿐임을 알게 된다.
2020년처럼 예측할 수 없음과 우연들이 가득한 한 해를 보내다 보면, 나를 증명하는 것은 내가 가진 것들이 아니라, 우연의 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걸어가고 있는지’가 아닐까 싶다. 여권에 찍힌 도장이 나의 발자국이라면, 내 생의 여권에 그 발자국이 끝나기 전까지는 나는 아직 정의되지 않는, 존재 증명 중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저 길을 떠나자.
곧 낡은 여권 대신 새로운 여정의 여권이 발급될 것이다.
우연을 오래 걸어야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