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명왕성으로 보낸 '인류의 눈'이라는 별칭의 뉴호라이즌호는 9년 6개월 만에 14일 오후 8시 49분 57초 명왕성에서 1만 2500km 떨어진 궤도에 다다랐다.
뉴호라이즌은 한국 시간으로 15일 오전 10시 2분 이 궤도에 다다른 이후 첫 데이터를 NASA로 보낼 예정이다.
그 기사를 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이러고 있을 시기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즉시 나는 나름 과학을 사랑한다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이봐. 응. 그거 봤어? 뭘? 인류의 눈이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에 이르렀대. 그래서? 그래서 라니.
그래서,
가 꼭 나와야 했냐? 나는 그래서, 연락을 끊었다. 과학만으로는 부족하군,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름 문학을 사랑한다는 친구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이봐. 응. 그거 봤어? 뭘? 인류의 눈이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에 이르렀대. 오, 그것 참.
오, 그것 참
자네라면 놀랄 줄 알았어. 그래서?
그래서,
가 꼭 나와야 했냐? 나는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문학의 힘도 별 볼일 없군, 나는 생각했다. 연락 돌리기를 그만두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먼 옛날 떠나 보낸…뉴호라이즌 호가 발사된 연도에 대한 자료부터 찾기 시작했다.
2006년은 뉴호라이즌이 발사된 해이다. 또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갸넨드라 국왕의 전제정치를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 인권단체, 학생, 야당 정치인이 참여한 해이기도 하고, 검찰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해이기도하며, 아베 신조가 일본의 총리로 취임했으며, 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교수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그 해 8월에 명왕성은 행상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누가 누구의 지위를 박탈하느냐, 할 수도 있겠다만, 명왕성은 발언권이 없었으므로, 안타깝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최후변론도 없이 얼마나 분통했을지. 홀로 명왕성 일대의 지성체 단체에 도움을 청하며 고군분투하다가, <이 짓도 이제 때려 쳐야겠어>라고 말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우스운 입장은 뉴호라이즌 호였다. 우습게도, 뉴호라이즌 호가 가고자 마음 먹은 ‘태양계의 명왕성’이란 것은 출발 7개월 만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얼마나 분통했을지, 역시 <이 짓도 이제 때려 쳐야겠어>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더 이상의 자료 수집을 그만 두고, 컴퓨터를 껐다. 무언가 먹먹한 기분에 둘러 쌓여, 문득 하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 아프리카 룰라>를 하나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요 며칠 붉었다 파랬다 온갖 색깔을 들이 붓더니, 결국 오늘에서야 견디지 못하겠는지 회색 빛으로 탁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한 바탕,
물을 꽉 짜야할 날씨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쪼그려 앉았다. 그때, 누군가 내 옆에 다가와 앉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아, 네 안녕하십니까. 무얼 보고 계셨습니까. 하늘을 좀 보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를 말하는 그의 표정이 먹먹해 보였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가 물었다. 톱보…라고 합니다. 톱보…
이국적인 이름이군요.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무렴 어떱니까, 우린 지구의…유일한 지성체가 아닙니까. 그렇군요. 나는 어떤 우애가 생기는 듯한 느낌에 휩싸이며 긍정했다. 지구의 두 지성체는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나는 <디스 아프리카 룰라>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 담배는…코끼리가 떠오르는군요. 코끼리…
이국적인 동물이군요. 아,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무렴 어떱니까, 우린 지구에 적(籍)을 두는…같은 동물이 아닙니까. 그렇군요. 나는 코끼리에게 모종의 우애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긍정했다. 순간, 누군가 내 옆에 다가와 앉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건
아프리카 코끼리였다.
두 지성체와 하나의 동물은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나는 문득 그들에게 좀 전에 본 기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네. / 뿌우(네), 인류의 눈이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 /뿌(오),
외로웠겠군요.
그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무언가 핑그르르 해서, 아 이것이 지구의 공전 속도인가, 눈동자를 바람이 슬며시 스치고 간 느낌에 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다. 하늘은 여전히 먹먹했다. 톱보가 입을 열었다. 지구에서…몇 번의 화산이 폭발하고, 수 십 개의 폭풍이 발생하고 소멸하고, 셀 수 없는 만큼의 테러와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와중에…뉴호라이즌 호는 묵묵히 우주를 떠다녔겠군요. 문득 먹먹한 하늘 저편에 우주 어딘가를 먹먹히 떠다닐 뉴호라이즌호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아프리카 코끼리가 호밀빵을 내밀었다. 이것은…호밀빵이군요. 그때 톱보가 코끼리의 손, 아니 코를 낚아채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이것은, 명왕성입니다. 명왕성이라구요? / 뿌우우욱우욱(명왕성이요)? 네,
틀림없는 명왕성입니다.
마치, 햄버거는 음식입니다, 를 말하는 것 같은 확신의 어조에 우리는 긍정했다. 톱보는 그 ‘명왕성’을 우리에게 하나씩 넘겨주었다. 두 지성체와 하나의 동물은 손…또는 코에 호밀빵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위하여!
위하여! 를 마지막으로 호밀빵을 한 입에 넣었다.
답답했다. 목이 막혔고,
목이 막혀서
눈물이 났다.
목이 막혀서 말이다.
우유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명왕성에 우유 같은 게 있을 리없었고
천천히 명왕성의 고독을 음미하며
뉴호라이즌호가 차마 보듬어주지 못한
여기 저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차가운 행성이 따뜻이, 물렁해지며
천천히 식도를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