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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an 05. 2023

독서가 잘 되는 조건


책을 읽는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마음의 양식을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흘려보냈던 시간을 심리적으로 충전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어야지 마음을 먹고 보면 숙제같이 느껴지지만 대신 '나도 모르게 모래처럼 빠져나간 시간들을 다시 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원래 독서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히면 괜찮았던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한 것 같고.


꿈으로 남겨둔 편하고 아름다운 북유럽 안락의자와 플로어 램프가 있는 서재를 떠올리면 불편한 현실 속 내 의자를 타박하기도 한다.


잡생각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머리를 훼방 놓으니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런데 책이 정말 잘 읽히는 때가 있다.


해야 하는 일을 한참 동안 미루고 머리로만 "해야지" 생각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거나


지인의 부탁을 듣고 문득문득 그 부탁을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 고민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낸다거나


배만 부르도록 너무 먹어 불뚝 튀어나온 내 배를 보며 한심한 생각이 들다 결국 잠이 들어버리고 나면 그토록 아껴두었던 시간들이 가버린 걸 알아차린다.  허무한 기분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책을 연다.

안타깝지만 지나간 시간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어떤 것도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책 글귀를 몇 줄 읽으면 낭비되었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증발해버리지 않고 고체화되어 내게 공처럼 다시 굴러들어 오는 것 같다. 꽤 신기하고 배부른 순간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까망베르 치즈가 햇살에 녹아내리는 걸 보며 시간의 정체와 중첩성을 느꼈다. 그래서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 빨래처럼 널려있는 시계들을 보면 꿈 속인 것 같이 멈춰 있는 시공간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책에 응집된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 속 초침 속도를 늦추고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든다. 1800년대로 건너가 서너 명의 인물을 만나 복잡하게 꼬인 사건들을 관망하던 중 내 탁상 위 시계를 보면 놀랍게도 십오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은 꽤 느리게 가지만 책에 몰두하는 동안 얻는 것은 많다. 사랑도 하고, 여행도 하고, 공자의 깨달음도 얻어가니 꽤 효율적이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니 말이다.


물론 이건 심리적인 것으로 끝나지만, 어쩌겠나.

누가 대신 내게 시간을 꿔줄 것도 아니니 핸드폰 볼 시간에 책을 드는 게 시간을 아끼는 것이고 나 스스로를 충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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