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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May 21. 2023

여자가 보는 메리 카셋의 그림들

이중적인 시선


대학원 시절 때 조금 더 친해지게 된 작가가 메리 카셋입니다. 제가 친해졌다고 칭하는 작가들은 해당 작가의 작품들에 호기심을 느껴 많이 찾아보고, 내밀하게 공감대를 형성한 작가들입니다. 대게는 미술사의 주류를 잇는 마스터들의 작품들에 흥미를 느끼지만, 여성의 삶과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보니 19세기 프랑스 예술을 좋아하는 찰나 메리 카셋의 작품을 만나게 된 건 어찌 보면 필연이기도 합니다. 에드가 드가를 알게 되면 메리 카셋을 알 수밖에 없거든요. 



메리 카셋에게 유독 눈길이 갔던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면서 미국인이지만 프랑스 파리 인상주의 작가로 "생존" 했기 때문입니다. 메리 카셋은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는 프랑스나 미국이나 여성에게는 사회적으로 제한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메리 카셋은 상류층 집안의 자녀였으며 이미 정해진 삶이 있었지요. 한 남자의 부인 혹은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정해진 길이었습니다. 메리 카셋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술공부를 하게 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원하던 미술 공부를 하지만 남성 학우들 사이에서 차별된 교육을 받는 것에 불만이 생겨납니다. 재미없는 정물화나 석고상들을 보고 앉아있어야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요.

메리 카셋
Mary Cassatt, Untitled self-portrait, ca. 1880


여성 미국인 최초로 살롱 전에 그림을 건 여인


아카데미 교육방식과 남학우들의 잘난 척에 불만을 가진 메리카셋은 독학을 하고자 프랑스 파리로 떠납니다. 초사실주의 적인 작품에 두각을 나타내던 장 레옹 제롬을 개인 튜터로 삼아 그림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의 사실적인 인물 표현, 풍성하고 과감한 색감과 패턴 그리는 방법들을 수학하며 원하던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메리 카셋은 1868년 파리 살롱에 '만돌린 연주자'작품을 출품하며 최초 여성으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최초로 두 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뽑혔고 그중 한 명이 메리 카셋) 까다롭고 보수적인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패스했다는 건 엄청난 일이죠. 

메리 카셋, 만돌린 연주자 1872


메리 카셋의 작품이 사랑스럽지만 불편한 이유


메리 카셋의 작품을 보면 이중적인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모성애가 느껴지는 그림이 많아서 따듯하고 포근합니다. 메리 카셋은 1880년대로 오면서 사적인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주로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에게 올가미처럼 씌어진 '모성애적 이미지'로 카셋의 그림이 평가됩니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성모자상 같은 이미지가 많다 보니 메리 카셋이 자기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리 메리 카셋은 미혼으로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습니다. 글 쓰는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모든 경험을 할 수 없듯이, 카셋 역시도 자신이 아이를 키우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경험들을 소재로 삼을 수 있었죠. 자신의 집에 자주 오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조카나 친구의 아이들이 오면 아이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조심성이 아직 없는 아이들의 무분별한 손짓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Maternal Caress   1896  


Mother and Child, 1893

두번째로 카셋의 투쟁이 느껴집니다. 최초 미국인으로 살롱전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현실적으로 카셋은 공간에 대한 제약을 겪으며 살았기 때문에 소재에 대한 제약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론가 그리젤다 폴록은 "여성은 공공 공간 점유에 제약을 받았다"라고 언급하 듯 카셋은 혼자 자유롭게 외출이 불가능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을 노출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깎아내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 표현을 좋아하던 카셋이 점차 자신의 작품 주제를 집안에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 인물이 경직되 보이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은 당시 인상주의 작가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던 붓터치 기법과 밝은 색채 덕분이지요. 카셋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은 에드가 드가를 포함한 인상주의 작가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인상주의의 빠르고 날카로운 붓터치들이 명료하게 보입니다. 날카로운 붓 자국들이 여러 색들과 어우러지며 시각적인 진동을 만들어 내니 카셋이 바라본 여성들의 노동과 노곤함이 느껴집니다. 
카셋이 만들어낸 애매모호한 공간은 정체되어 있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여자들은 분주하게 아이를 키우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시대에 드가가 오페라 하우스 백스테이지를, 앙리 툴르즈 로트렉이 물랑 루즈를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니며 다양한 소재들을 캔버스에 옮길 때 카셋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여성과 아이의 내밀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밖에 나가서 돈 벌래 아니면 애 키울래? 질문하면 열 명 중 일곱은 밖에 나가 일하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육아는 단순 모성애라는 신화적 사랑의 행위가 아니고 여성의 노동의 일부입니다.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책임과 진통입니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점은 카셋 그림 속 여성들의 표정은 환히 웃고 있지 않습니다.                                                 


Mary CassattWoman Bathing [La Toilette], 1890-91

그렇기 때문에 인물 표현을 좋아하던 카셋이 점차 자신의 작품 주제를 집안에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 인물이 경직되 보이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은 당시 인상주의 작가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던 붓터치 기법과 밝은 색채 덕분이지요. 카셋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은 에드가 드가를 포함한 인상주의 작가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인상주의의 빠르고 날카로운 붓터치들이 명료하게 보입니다. 날카로운 붓 자국들이 여러 색들과 어우러지며 시각적인 진동을 만들어 내니 카셋이 바라본 여성들의 노동과 노곤함이 느껴집니다. 


카셋이 만들어낸 애매모호한 공간은 정체되어 있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여자들은 분주하게 아이를 키우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시대에 드가가 오페라 하우스 백스테이지를, 앙리 툴르즈 로트렉이 물랑 루즈를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니며 다양한 소재들을 캔버스에 옮길 때 카셋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여성과 아이의 내밀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밖에 나가서 돈 벌래 아니면 애 키울래? 질문하면 열 명 중 일곱은 밖에 나가 일하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육아는 단순 모성애라는 신화적 사랑의 행위가 아니고 여성의 노동의 일부입니다.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책임과 진통입니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점은 카셋 그림 속 여성들의 표정은 환히 웃고 있지 않습니다.

Mary Cassatt, Breakfast in Bed, 1897
Mary Cassatt, Françoise in Green, Sewing, 1908–1909


카셋의 작품을 처음 한 두 번 보면 모성애라는 상투적인 프레임을 씌워서 보게 되니 아이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배경과 그 당시 카셋의 상황 그리고 그림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면 초반에는 보이지 않던 카셋의 투쟁이 엿보입니다. 커튼 뒤에 가려진 집안 여성들의 모습을 세상 밖으로 초대하고자 하는 메리 카셋의 노력이 보이기 때문에 단순히 모성애 적인 그림으로 읽혀지는데는 불편함이 생겨납니다.


Mary Cassatt – The Bo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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