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한 인물들
폴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는 십 여년 전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서 보게 된 작품입니다. 세잔은 이 작품을 총 5점 그렸습니다. 시리즈 중 한 작품은 2011년에 2억 5천만 달러에 낙찰되었던 작품입니다. 카타르의 로얄 패밀리가 구매했다고 합니다. 칙칙한 누런 빛의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쓴 남자 두 명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왼쪽 남성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자신의 카드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심미적으로 특별해 보이지 않아 보이는 이 작품이 왜 이런 높은 가격에 낙찰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본 작품은 아래 이미지인 런던 코톨드 갤러리의 소장품이었습니다. 세잔은 이 작품을 그리는데12개의 스케치와 습작을 그렸다고 합니다.
왜 정물화와 풍경화를 즐겨 그리던 세잔이 카드 놀이 하는 사람을 그렸을까?
세잔은 자신의 고향인 엑상프로방스 그라네 미술관에서 우연히 Le Nain형제가 그린 <The Card Player>를 보게 됩니다. 르 냉 형제는 1630-40년대에 파리에서 꽤 잘 나갔던 바로크 시대의 작가들입니다. 로얄 아카데미 소속으로 전통 미술을 교육받아 추상화나 제단화를 매우 잘 그렸지요. 하지만 이들은 상인, 노동자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들을 매우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작가들로 더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르 냉 형제가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무대 위 연기자 처럼 표정과 몸짓이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가운데 남자는 오른 쪽 빨간 옷을 입은 소년의 패를 견눈질을 하니 소년이 매우 기분 나빠하며 몸을 돌려버립니다. 맨 왼쪽 누런색 옷을 입은 남성은 관람자인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르냉 형제가 그린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 세잔은 가족이 소유한 건물 관리를 위해 고용된 소작농들을 모델로 삼아 그렸습니다. 세잔은 작품 속도가 워낙 느리고 꼼꼼하다 보니 모델들은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지루함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세잔은 전반적인 골격과 구조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색감을 줄이고 페인트도 얇은 레이어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인물의 피부, 옷 주름, 모자에 색감과 채도의 강약을 이용하며, 형태감을 구조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세잔이 입체주의 초반에 그린 사과 작품처럼 인물 표현 역시 경직된 느낌을 자아냅니다.
Paul Cezanne, Apples, 1878–79
누가 이기고 질 것인가!
두 사람의 팽팽한 마인드 게임은 경직된 인물들의 모습과 구도에서 느껴집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나라, 프랑스답게 와인 병이 작품 한가운데 배치되어 있는데요. 곧게 서 있는 와인병이 두 남자가 자기의 패를 감추며 견제하는 분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듯 보입니다. 세잔은 정밀 묘사를 생략하였기에 들고 있는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힌트 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관람자인 우리도 카드 놀이하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가서기가 어려운 느낌을 줍니다.
두 남자는 아무리 불러도 고개를 돌릴 것 같지 않습니다. 마치 정물화 처럼 생동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죠. 아마도 세잔이 픽사나 디즈니에 포트폴리오를 낸다면 에니메이션 제작 분야에서는 똑 떨어지겠죠?
왜 세잔은 이렇게 경직되고 딱딱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을까요?
세잔은 최대한 눈에 보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이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다각도의 시선에서는 보이는 모습들을 평면에 표현하길 원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기하학적인 형태의 면들이 조합되어 전체 형태의 덩어리감을 만들어내는 '입체주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죠. 기하학적인 아웃라인들과 큐드 Cube들이 쌓여서 형태를 만든 것 처럼 보여 비평가 루이 비셀은 '큐비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빛과 그림자도 시간에 혹은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로인해 큐비즘 기법으로 만들어진 세잔 그림 속 정물들은 정확히 어디서 빛이 들어오는지 예상하기 힘들어집니다.
빛이나 선형 원근법이 사라지다보니 이질감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또한 인물 표현에서는 더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사람의 움직임이 뻣뻣하게 느껴지니까요.
세잔이 그린 또 다른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