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탈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다가도 폭풍이 휩쓰고 간 자리를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허무함과 잔잔한 정막이 불안하게 만든다. 지난 몇 년간 꽤나 사람들에 치여 사는 듯했다. 엄청 외향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내가 중심으로 친구 모임을 이끌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만 자석처럼 붙는 게 아닌데, 사람을 선별하기보다 받아들이기만 했었다.
사람마다 삶의 챕터가 있다면, 나도 현재는 새로운 챕터를 열고 사는 중이다. 직업도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도 가지치기가 되었다. 이전 챕터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시기라 생각이 든다. 다양성이라는 건 원래 나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 불편하고 낯선 것들을 경험하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다양성을 체험하는 데는 체계 따위 던져버린 상업 갤러리도 한몫했다. 갤러리에서 일하면서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작가, 컬렉터, 진상손님, 자의식과잉인 사람들 등등 많다.
소수 정예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인위적인 표정 짓는 게 어색하고, 트렌드에 큰 관심 없는 나의 성향은 이곳과 극과 극이었다. 또한 체계적인 것과 규율이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지만, 갤러리에는 거의 없다.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가 되는 곳이니, 가끔은 이 자율성이 숨 막히게 했다. 어느 사회생활이나 힘들다고 하지만, 온갖 각종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만큼 피로도가 높았다.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몸과 정신이 항상 붕 떠 있었기에 이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민첩하고 예민한 상태가 기본값이었달까. 갤러리를 그만둔 언니에게 항상 말했었다.
“사람이 지겨워. 온전히 혼자 있고 싶어.”
무교이지만 가끔 신은 내 말을 참 잘 들어준다. 요즘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일도 혼자 하는 시간이 많고, 혼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원래 내 성향과 더 맞는 듯하다. 그렇게 지겹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버렸다. 점차적으로 연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자연스레 정리되기도 하고, 정리를 당하기도 하고, 내가 정리를 해 나가기도 했다. 이전에는 마치 항아리에 쟁여 둔 된장을 깊은 곳에서 퍼 담 듯, 오래 못 본 사람들도 연락을 해서 관계를 이어 나갔다. 그게 귀찮지 않았고 나의 즐거움이었다.
불어로 ‘팔이 길다’라는 문장을 발이 넓거나 인맥이 넓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내 팔이 짧아졌다는 것을 심리적으로 느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관계 역시 의무가 아닌 그냥 강물처럼 흘러두게 둬버렸다.
바깥으로 향하고 있던 정신은 소란스러움에서 탈피하여 아주 조용하고 고요하고 통제된 공간으로 들어왔다. 방치해 두었던 진짜 나를 다시 돌보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규칙이었던 내 삶에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삶에 루틴을 만들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니 자기 통제와 자기 관리가 월급쟁이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내 라이프 스타일도 심플하게 바꿔갔다.
멀티 태스킹 방식을 버리고, 공중에 떠 있던 마음과 몸을 정돈시켰다. 멀티 태스킹을 버렸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버렸고 우선순위에 둔 것에만 집중했다. 건강관리, 그림과 글(일), 가족이다. 이 외에 다른 것은 부차적이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다 중요하다 여겨 우선순위에 넣었었다. 친구, 연애, 인맥, 맛집, 유행 등등 모두 다 중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들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졌다. 왜냐하면 모두 다 파도처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변덕스러운데 굳이 멀리 있는 것에는 신경을 껐다. 유동적인 것은 그냥 흘러가게 둬버렸다. 그래서 심심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심심한 기분 오랜만에 느껴보는데 꽤 좋다. 공백이 생긴 거니까.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 비해 삶이 단조롭게 바뀐 것도 어쩌면 운동이 우선순위에 들어오면서부터 일 것이다. 일이 끝나면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까? 혹은 어느 유행하는 맛집을 친구와 가볼까?라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은 저녁 시간은 무조건 나의 몸에 투자했다.
요즘은 요가와 조깅 딱 이 두 가지만 한다. 내가 이 두 가지를 하면서 느낀 것은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단조롭게 내 몸뚱어리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원래 운동은 되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시간이 남으면 하는 활동이었고 예쁜 옷을 몸 핏을 살려 입을 수 있는 다이어트 방법으로 생각했다.
요즘운동은 비움과 채움의 과정인데 사실 비움의 비중이 훨씬 크다. 먹으면 배설을 해서 다시 또 맛있는 것을 채워 넣듯, 운동은 각종 스트레스와 우울함을 물리적으로 털어 내버리는 과정이다. 조깅을 할 때는 옷을 벗는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달린다. 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특히 글을 쓸 때는 보통 업무 보다 체력이 더 소진되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보니 엉덩이도 무거워지고, 특히 머리가 무겁다. 그럴 때는 무거워진 갑옷을 벗어 던 지 듯이 가벼운 복장으로 나가서 천천히 뛴다. 뛴 후에는 흘리는 땀방울에 조급함과 초조함이 함께 배출되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빨리 뛰는 만큼 몸은 편해지고 차차 조급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다지 욕심부리지 않고 달린다.
조깅이 몸을 가볍게 비우는 과정이라면 요가는 헝클어진 몸과 정신을 정렬하고 집중하는 과정이다. 다행히 요즘 다니는 요가원은 나와 잘 맞는다. "우리는 진짜 요가를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하는 요가원이다. 이 전에 다른 요가원들도 다녀봤지만 지금 요가원만큼 집중도를 끌어올리는 곳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수련 시간도 80분 이상으로 꽤나 길고, 이전에는 내가 전혀 할 수 없었던 동작들도 시도하면서 내 몸을 정렬시키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요가만큼 자신의 몸을 잘 살필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 아직은 못 찾았다. 숩타비라아사나로 시작하며 항상 긴장 속에 고생한 나의 몸과 마음을 깨워준다. 불편한 자세이지만 이 자세로 시작하면 내 몸이 최대한 납작해져 땅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