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얼음시계’
생수를 다 마시면 페트병 라벨 비닐을 벗겨 페트병과 비닐을 따로 버린다.
물티슈를 다 쓰고 나면 플라스틱 캡 뚜껑을 비닐 포장에서 떼어내고,
택배 박스는 송장과 테이프를 모조리 뜯어내고 순수하게 상자만 고이 접어 내놓는다.
전자 기기를 사면 전자 기기보다 더 부피감 있는 포장지들은 어찌할지 모르는 마음과 함께 분리배출한다.
이 귀찮은 작업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이를 닦듯 이미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일념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받아 왔던 걸 이십 년 넘게 지금까지 꾸준히 하지만 올해 지독한 여름을 겪으면서 의문이 든다. 이걸 한다고 얼마나 자연이 보호가 되는 건지. 지구 전체에서 쌀 한 톨 크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분리수거를 한다고 한들, 기후 변화에 얼마큼의 영향력이 있는 건지. 의문이긴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인지라 그냥 한다.
언제부턴가 여름은 '재난'이다. 여름 하면 ‘사랑의 계절’이라는 산뜻하고 낭만적인 단어가 떠오른다는 유럽인들의 생각과는 아주 멀다. 이제 ‘여름’이라 하면 떠오르는 게 이런 거다. 건강, 화상, 탈진, 에어컨, 선풍기, 화재, 생수, 운동. 모두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뙤약볕에 살갗이 바삭바삭 타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니 외출할 때 항상 생수 한 병과 양산을 챙기게 된다.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오늘 하루 잘 버티고 오자!”라는 다짐을 하고 현관문을 열지만 복도에서 내내 웅크리고 있던 습하고 묵직한 공기가 덮치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어 진다.
기후변화를 막자는 이야기는 수십 년째 들어왔지만, 더 나아지기는커녕 몸소 체감할 정도로 지구는 망가져가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묘한 사진 한 장. 눈이 소복이 쌓이거나 영롱한 푸른빛이 도는 빙하 위에 있어야 하는 북극곰이 야생화들로 가득한 초원을 걷고 있는 사진이었다. 하얗고 통통한 북극곰의 외모는 온데간데없이 마른 몸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북극곰의 눈빛은 어딘가를 찾는 눈치다. 무엇을 원하든 간에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추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환경에서 북극곰의 흰색 두터운 털은 불필요해 보인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빙이 사라진다. 북극곰도 더 이상 살아갈 곳과 살아가는 자생력을 잃게 되니 멸종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마치 도심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처럼,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자연 생태계에 균열이 가며 북극곰을 비롯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위협받고 있다.
덴마크 출생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은 지구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얼음시계 Ice Watch>라는 생태미술을 창조했다. 10년 전 2014년에 엘리아슨은 국제연합 제5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보고서를 기념하는 일환으로 이 작품을 코폐하겐 시청 앞 광장에 설치했다.
지금 이 순간, 불볕더위에 보기만 해도 시원함과 청량함이 느껴지는 빙하 덩어리들이 광장에 놓여있다. 얼음 조각 12 개가 시계의 시간을 나타내 듯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지나가던 군중들은 영롱한 푸른빛이 맴도는 거대한 얼음을 신기해서 만져보기도 하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는다. 이 얼음들은 실제로 북극에서 녹아서 바다에서 떠다니고 있는 빙하 조각들이다.
대체 이 빙하들은 어떻게 가지고 온 것일까?
엘리아슨은 그린란드의 뉘안 켄줄루아 피오르드에서 지질 학자 미닉 로싱과 함께 빙하 얼음 블록을 채취했다. 채취한 빙하는 개당 약 1.5에서 5톤 정도 될 정도로 거대하며 이 프로젝트에 쓰인 모든 빙하의 무게는 100톤 정도 된다. 덴마크 누크에서 알보그까지 깨지거나 녹지 않도록 조심스레 냉동 컨테이너에 담아서 운반했다.
시계모양을 한 빙하는 매초 조금씩, 우리의 눈으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양으로 녹는다. 광장에서 벌어진 이 생경한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 매체로만 접하던 빙하를 관찰한다. 차디찬 빙하의 표면을 혀로 핥고, 얼굴을 밀착해 본다. 구멍이 난 곳에 머리를 넣어 귀를 기울여보기도 한다.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빛깔을 관찰도 해본다.
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사진을 통해 바라본 빙하는 어떤 광물만큼이나 단단해 보인다. 순수하게 물로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올라퍼슨은 인간의 육체에 지식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들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건지, 인지하는 지식을 어떻게 행동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기후변화 역시 일반 사람들이 직접 몸으로 의식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가 모색한 방안은 꽤나 단순하다. 해수면을 높이는 빙하, 우리에겐 대리석처럼 단단하게 존재할 것 같은 빙하가 얼마나 기후변화에 나약하게 노출된 상태인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익숙한 삶에서 접하는 빙하라니! 영화 같은 사건이다. 이 작품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저 멀리 있는, 수 천년에서 수 만년동안 단단하게 응집한 빙하를 경험하게 해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빙하는 점차 물이 되고 형태도 변형되어 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광장을 지키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빙하를 보고 만져보며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기후 변화의 극단적 영향을 막기까지 시간이 짧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Olafur Eliasson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재 우리가 북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2천만 년 된 빙하들은 점차 사라지고 겨우 3,4년 된 빙하들은 ‘어른빙하’가 되기도 전에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매해 열대야 기록을 경신하는 여름을 체감하고 나니 이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서울 시청에 ‘얼음시계’를 가져다 놓는다 생각하면, 컨테이너에서 꺼낼 때부터 얼음시계는 망설임 없이 째깍째깍 돌아갈 테니.
안 그래도 점점 짧아져 아쉬운 봄과 가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계절인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살이 에이는 불볕더위의 여름과 눈만 겨우 내놓고 다녀야 하는 매섭게 추운 겨울. 이렇게 두 계절만 남는 건 아닐지. 올라퍼 엘리슨의 <얼음시계>는 무지한 우리 인간들에게 다시 경각심을 심어주는 소리 없는 타이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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