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돌아보며

잘 살아냈다, 올해도.

by 허연재

2024년의 끝자락. 새해가 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말에 항상 맴돌던 설렘은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훔쳐간 건지, 아니면 제발 달려 달아난 건지... 2025년 탁상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놔도 특별한 감흥은 없다. 올해가 힘이 들어서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재촉하는 마음도, 더 나은 내년이 왔으면 하는 바람도 없이 그냥 공허함 뿐이다.


잠시 차 한 잔을 하면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내가 올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봤다. 공허함만 있는 줄 알았던 그 공간에는 뿌듯함, 후회, 실망, 안심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올해 가져가는 게 세 가지가 있었다.


01. 마음 돌봄.

스트레스로 인해 처음 몸의 이상을 겪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경에 적색경보가 울려 전신에 저림 증상과 불면증에 몇 달간 시달렸었다. 아직 다 완치된 것은 아니라 계속 관리 모드이니만큼 외부의 자극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덕분에 습관처럼 켜던 OTT서비스도 보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신경 쇠약에 걸리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버린다는 것을 느끼곤 앞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거는 과감하게 쳐버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남이 나를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내게 쏜 화살 때문에 더 힘들었다.

현재는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고 있다. 이 전에는 몰랐다. 이리 잠이 귀한지. 눈을 감아도 감은 느낌이 들지 않는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는 고통이다. 최악의 고문이 따로 없다.


02. 안녕! 내 사랑 프랑스 여행서 출간.

작년부터 초고를 시작하여 올해 말 여행서를 출간했다. 우선 뿌듯함이 제일 크다. 나의 경험과 순간 느낀 감정들을 풀어낸 여행서를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이다. 이 책을 읽고 "프랑스 여행을 함께 하는 것 같다.", "술술 잘 읽히게 썼다."라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그간 고생한 노력에 위안이 된다. 출판사를 잘 택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 책에 원하는 내용을 다 담았는지, 원하는 만큼의 아웃풋이 나왔는지 등등 아쉬움과 후회가 교차하기도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더 좋은 글을 쓰고 미술을 비롯한 정보들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게 하는 동력이 된 것으로 일단 마무리 짓기로 했다. 또 다른 여행서를 쓸 설레는 마음으로 내년을 맞이해 보련다.


03. 겨울 핫쵸코

올해 거의 반년은 건강이 좋지 않다 보니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회사, 집, 헬스장.

누가 '김종국' 아니냐고 할 정도로 삼각 구도의 장소만 다니며 아주 거룩하고 건강한 나날을 보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오롯이 체력을 올리는 데에만 전념했다.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외에는 최대한 체력을 비축했다.

12월이니 올해 머리에서만 문득문득 생각나고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났다.



D: 언니, 겨울인데 우리 그거 마셔야지!

나: 뭐?

D: 핫쵸코렛. 미국 핫쵸코! 좀 있다 스타벅스 가자!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D와 따듯한 핫초코를 마셨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D와 그간 밀린 이야기를 했다. 직장의 이상한 사람 이야기, 왕따를 시키는 한국 회사의 이상한 꼰대 문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친구에 대한 안부 등등 사소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문득 추운 겨울 토론토에서 D와 교복을 입고 스타벅스 핫쵸코를 마셨던 이십 년 전 우리의 모습이 순간 그려져 웃음이 났다.

여전히 함께 맛있는 음식과 따스한 핫쵸코를 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 아닐까?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와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조차도.

겨울에 입김이 나는 시기에만 마시는 핫쵸코는 정말 달콤했다. 겨울이 오는 걸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다.



잘 가라 2024년!

그래도 올해를 잘 살아 낸 것만으로도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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