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밀레이가 그린 순수한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기묘함

by 허연재

넌 그냥 그대로 흐르는 거야.

그냥 그 물결에 몸을 맡겨 떠 내려가는 거야.

네가 눈을 다시 떴을 때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는 모르지.

더 꽁꽁 얼어버릴 차디찬 바다 한가운데일지,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어떤 섬 뭍에 머리가 닿아 더 이상 떠내려갈 곳이 없어질지.

그건 아무도 몰라.

흐르는 시간 만이 알지.

머리가 뭍에 닿았을 때 알 거야.

그때가 다시 일어날 시기라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여인이 다시 스르륵 일어날 것만 같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새 내 안에서 자라난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52)


존 에버렛 밀레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된 오필리아다. 이 그림을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죽은 여자의 몸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입과 눈은 벌어져 있고, 손 제스처도 열려 있으니, 아직 신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화려한 색감의 예쁜 제비꽃들도 이 여성의 드레스의 장식처럼 함께 떠내려가고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죽음을 맞이한 모습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오필리아는 극 중 덴마크 왕자인 햄릿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이 여인이 차가운 강물에 누워 있는지 그 연유를 알기 위해선 극 속으로 잠시 들어가 봐요 할 것이다.



햄릿 스토리


<힘릿>의 1막 1장에서 왕(햄릿의 아버지)은 ‘유령’의 모습으로 햄릿의 친구와 보조병들 앞에 나타난다, 이들은 성 안에서 이미 죽은 왕의 모습을 보자 기절할 정도로 놀랐고, 왜 왕이 유령이 되어 성을 맴도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햄릿의 친구였던 호레시오는 햄릿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처음에 이 사실을 들은 햄릿은 믿지 않았다. 죽은 아버지가 유령이 되어 성을 떠돈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윽고 햄릿은 유령이 된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감춰진 사실을 알게 된다.

왕은 사리 풀 독살에 의해 자신이 사살되었고 이 사건의 배후에는 남동생 클라우디우스가 있었다고 말했다. 연이어 아들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클라우디우스는 왕비, 거트루드와 결혼하며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

햄릿은 맨 정신으로 복수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미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상심한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햄릿의 이상해진 정신상태를 알렸고, 이들은 햄릿이 환각제에 손을 댓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햄릿은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 있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던 점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 과연 클라우디우스가 진정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를 했는지 진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떠돌이 극단을 만나 클라디우스와 햄릿 왕 사이에 있었던 일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왕 클라디우스와 여왕 거트루드 앞에서 연극을 선보이기로 한 거다. ‘

이 연극에 왕이 흠칫 반응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타살인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연극에 왕과 왕비를 초대했다. 연극은 진행되었고, 극 중 귀에 독을 넣는 독살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클라디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고, 햄릿은 유령의 말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된다.


다니엘 아클리스, 햄릿의 연극씬: 연극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 있는 왕의 모습을 보시라

햄릿은 이 시건으로 인해 어머니 거트루드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융단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햄릿은 클라디우스가 숨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거라 짐작했다. 누구일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검으로 융단을 향해 힘껏 찔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클라디우스가 아니라 다름 아닌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였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햄릿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망연자실하게 된다. 이후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가 오필리아는 강물에 자신의 몸을 던져 목숨을 거두고 만다.



존 에버렛 밀레이오필리아 (1851-52)

존 에버렛 밀레이는 햄릿 4막 7장의 <오필리아>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청초한 모습으로.

밀레이의 치밀한 묘사력으로 그린 자연 풍광은 오필리아를 더욱 화사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밀레이는 넉 달 동안 호그스밀 강가에 머무르며 그림의 배경을 스케치하고 구상했다. 그리고 집착할 정도로 수십 종의 꽃과 나무에 상징적 의미와 비유를 부여하며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그림 속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 쐐기풀은 고통, 붉은 양귀비는 죽음을 상징한다. 실제 관찰하기 어려운 식물들은 식물도감을 뒤져 풀과 꽃을 정교하게 그렸다


밀레이는 물에 빠진 오필리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여성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다. 모델은 엘리자벳 시달이다. 이 작품을 위해 시달은 물을 채운 욕조에 누워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포즈를 취했다. 추운 몸을 따듯하게 데워주던 오일램프 하나가 꺼졌지만, 시달은 불평 없이 포즈를 취했다. 젖은 드레스를 계속 입고 있으니 결국 폐렴에 걸리고 말았다. 이에 성난 그녀의 아버지의 성화에 밀레이는 그녀의 약값을 대주었다.

밀레이가 묘사한 물에 젖은 옷을 보면 얼마나 표현력이 디테일한지 실감할 수 있다. 그만큼 얼마나 시달이 장시간 물속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괴로웠을지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엘리자베스 시달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미련이 있어 보이는 오필리아. 밀레이가 그녀의 포즈와 표정을 애매하게 한 것 역시 자신의 중심이 있기보다 주변 인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캐릭터라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시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자신의 주체성과 생각이 없는 여자인 거다. 정신학 용어로 '오필리아 콤플렉스'가 있다. 타인의 생각과 의견에 의지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오필리아의 캐릭터를 알고 나면, 이 그림이 주는 기묘함이 더 깊게 다가온다. 반짝이는 비즈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과 배경은 극적으로 아름답지만,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모습에서 애매모호함이 주는 공포감이 느껴지게 한다. 오필리아의 생사유무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오필리아>는 테이트 브리튼의 소장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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