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커피와 물 한잔은 날 귀하게 만들어준다.
별거 아닌 물 한 잔. 그게 뭐라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커피와 함께 나온 물 한잔에 난 신분 상승하는 듯한 특별함과 품격을 느꼈다.
3월의 비엔나도 꽃샘추위로 바람이 매서웠다. 옷을 단단하게 여미고 공복인 배를 움켜쥔 채 카페 센트럴로 향했다. 카페 센트럴은 1876년부터 지금까지 영업을 하는 오랜 역사가 깊은 카페다. 세월만 거저먹은 카페가 아니라 19세기 문학, 철학과 예술문화가 응집한 곳이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레프 트로츠키, 아르투어 슈니츨러 등 각 종 분야의 사상가들과 학자들의 집합소여서 ‘센트럴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심지어 두뇌 속도가 남다른 체스 마스터들까지 이곳에 죽치고 앉아 체스 경기를 펼쳐 “체스의 대학”이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카페야? 궁전이야?’
높은 층고에 값비싸 보이는 타일과 대리석으로 뒤덮인 내부전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난 이곳에서 소박하게 오믈렛 같은 아침을 커피 한잔과 먹으려고 왔는데, 화려한 내부 전경에 놀라,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역시 오스트리아는 다르구나 싶었다. 스테이크를 팔면 그냥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사실 카페 센트럴은 레스토랑으로도 운영되고 있어 다양한 음식도 판매한다)
또다시 눈을 사로잡는 건 알록달록한 색감의 디저트다. 중앙에 있는 디저트 진열장에는 눈으로만 먹어도 먹음직스러운 달콤한 케이크와 타르트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 산다면 매주 한 두 개씩 다른 디저트들을 맛볼 텐데. 아쉬웠다. 며칠 후면 비엔나를 떠야 한다는 사실이.
카페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원형 테이블에 한 커플과 합석해서 앉았다. 이 커플은 비엔나식 아침 세트메뉴를 시켰는지 요거트와 빵, 달걀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먹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렇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흘깃흘깃 몰래 쳐다봤다.
난 베이컨과 달걀 두 개가 함께 나오는 식사 하나와 비엔나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비엔나에 와서 먹는 첫 비엔나커피. 그간 마셔왔던 달달한 비엔나커피와 전통 비엔나커피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원래 타국에서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서 음식의 맛을 현지화하기 때문에 오리지널과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뻔히 아는 아인슈페너 커피도 아마 비엔나 현지에서 마시면 뭔가가 다를 거라고 예상했다.
내 눈앞에 서빙된 비엔나커피는 “에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은 적었다. 작은 유리잔의 반은 크림이었고 반은 커피였다. 하얀 크림 위에는 부드러운 식감의 막대 과자가 하나 올려져 있고. 컵 소서에는 붉은 포장지의 초콜릿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은 적은데 달콤한 것들이 함께 나오니 푸짐해 보였다.
그 옆에 함께 서빙된 건 물 한 컵.이었다. 유리잔 위에는 티스푼이 뒤집어져 있었다.
나 물은 안 시켰는데…?
물도 돈을 받는 게 당연한 유럽 국가에서. 내가 주문하지 않은 뭔가가 서빙되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공짜인 줄 좋아서 대뜸 먹었다가 생각지 못하게 지불해야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다들 물 한잔이 커피 잔 옆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안심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커피를 마셨다.
말로만 듣던 비엔나에서 마신 비엔나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가 생각보다 진해서 크림의 단 맛이 많이 묻혔다. 단 맛이 모자라면 충전하라는 의미로 과자와 초콜릿을 준건 가보다.
커피의 맛도 좋았지만, 티스푼과 함께 서빙된 물컵에 자꾸 시선이 갔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물이 함께 서빙된 적은 처음이었다. 손님을 위해 신경을 쓴 세심함과 격식이 이 물 한잔에서 느껴졌다. 이런 문화에 무지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종업원은 그리 한가해 보이지 않았다. 이 카페를 떠나고 나서도 비엔나커피의 맛이 아니라 함께 부록처럼 따라 나온 티스푼을 얹은 물 한 컵이 자꾸 떠올라 찾아보았다.
커피에 물 한잔을 함께 주는 건 19세기부터 행해져 온 카페의 관례였다. 티스푼의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물컵 위에 올려두는 건 신선한 물을 부어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커피를 젓는 데 사용한 티스푼을 올려둘 데가 없어 물컵 위에 올려두라고 함께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단계 발전해 커피하우스 주인들은 자기 가게 커피와 음식을 좋은 퀄리티의 물을 사용해서 만든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신선한 물을 함께 서빙해주었다. 이때부터 이 친절한 배려는 지금까지 카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귀찮아서 안 줘도 그만인 이 관례를 지금까지 지킨다니. 신선했다.
화장품을 사면 받는 샘플, 옛날에 잡지를 사면 받는 부록, 두 개 사면 한 게 더 주는 2+1. 하다못해 이런 별거 아닌 사사로운 것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데, 커피에 함께 딸려 나온 과자와 초콜릿과 물 한잔을 받으니 극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식사를 마친 후 물을 마셔 입을 헹궜다. 역사를 모른 채 친절과 배려라고만 여긴 이 물 한잔이 참 맛있었다. 역사와 커피 사장들의 자부심이 함께 깃든 이 물 한잔이 나의 단순함을 일깨웠다. 사람은 단순하고 사사로운 것에서 감동을 느낀다. 익숙해진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제스처가 타지에서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낯선 타지에서의 여행은 즐거운 삶을 만드는데 팔수다.
요즘 카페에서 물 한잔을 종이컵에 따라 마시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카페 센트럴의 비엔나커피와 티스푼이 올려진 물컵이 문득문득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