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y G 문화예술 리뷰 2>
- 작가: 이세현 / 전시명: 기억중독
- 2025년 12월 10일 ~ 2026년 2월 22일
- 동곡뮤지엄
온통 빨간색인 산수화. 크기가 압도를 선사하는 산수화. 해골이 등장하고 GOP 초소가 보이고 미사일이 발사되고 작가의 페르소나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킨 산수화. 물리성과 소재만으로도 차별에 성공했는데 이에 더해 전통 산수화를 뿌리 삼아 관객의 고정관념을 영리하게 이용한 산수화 혹은 풍경화. 이세현 작가의 작품을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러할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관객이라면 우선, 작가가 사용한 빨간색과 작품의 크기에 놀랄 것이다. 색과 크기는 모두 물리적 성질이다. 직관적으로 감각되는 크기와 달리 색은 뇌의 순간적 해석을 통해 감각된다. 색을 해석할 때 뇌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색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으로 색에 대한 기억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으로 색을 해석한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빨간색에 대한 기억은 어떤 감정일까. 또 인류에게는 어떤 감정일까.
피가 빨간색이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빨간색이 금기시되지 않았다면, 빨간색을 금지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를 멈춘다면, 특히 한반도가 1900년대 초중반 강대국들의 ‘셈법’으로 파생된 ‘이념 논쟁’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면 작가의 작품은 덜 압도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대게 부정이란 감정은 사람을 절망에 몰아넣고 무력하게 만들어 압도하기 때문에 작가의 빨간색 산수화는 인류에게 특히 한반도인에게 압도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기억은 빨간색에서만큼은 부정에 중독되어 있다. 빨간색의 시뮬라크르(기호적 의미)는 특정 세력에 의해 합의되고 만들어져 유포되었다. 미셸 푸코는 ‘특정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세력’과 ‘특정한 의미를 형성하는 체제’ 그리고 ‘체제와 세력에 의해 형성된 특정한 의미’ 모두를 가리켜 ‘담론’이라 명명했다. 빨간색은 잘 보이지만 동시에 담론이고, 담론은 대게 잘 보이지 않기에 빨간색은 양가적인 존재이다.
작품의 소재인 해골에서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도, GOP 초소와 부서진 탱크에서 분단의 아픔을 느끼는 것도, 미사일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심을 느끼는 것도 그 안에 담긴 특정한 의미 즉 ‘담론의 작용’이다. 이러한 소재들에 더해서 소재들을 표현한 색이 빨간색이고, 부정적 의미보다는 주로 긍정적 의미로 해석되는 전통 산수화의 요소들을 작가가 함께 배치해서 증폭되는 부정과 긍정이 머릿속에 대립하니 관객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질 들뢰즈는 시뮬라크르를 ‘의미이면서 사건’으로 정의하며 “의미라는 사건이 물리적인 변화보다 훨씬 큰 파급을 낳는다.”라고 말했다. 들뢰즈의 이론처럼 빨간색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얼마만큼 강렬하고 견고하게 부정적인지 스스로 따져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빨간색이 색으로서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로서 사회에서 얼마만큼 커다랗고 막강하게 작용하는지 우리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 낙인은 빨간 줄의 형태로 생산된다.
빨간색에 대한 기억이 부정에 중독되어 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부정성을 타자가 은밀한 의도를 담아 만들어서 퍼뜨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관객의 혼란은 바람직하다. 타자가 만들어 주입한 것을 바탕으로 생성된 인식 다시 말해서 ‘빨간색에 대한 기억중독’을 깨뜨리는 망치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으로 표현되었으나 작품에 쓰인 또 다른 소재들인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정다운 산책, 평화로웠던 독서, 젊음의 에너지, 안중근 의사와 파릇파릇한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어린 아이유(가수) 등의 인물에 담긴 긍정석은 빨간색의 부정성과 2차 대립을 일으킨다. 결론적으로 이세현 작가는 자신과 관객들의 ‘타자에 의해 형성된 기억중독’을 깨뜨리는 토르라고 볼 수 있다.
습관적 사고와 시선은 인간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을 가로막는 벽이다. 인간의 사고와 시선은 타자에 의해 형성됨을 배제할 수 없기에 습관적 사고와 시선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대상이다. 예술은 그러할 때 제 모습을 드러내 변화의 시작을 열어준다. 이세현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그의 희망은 그가 관객에게 기여하고 싶은 희망은 저 멀리 은하수에까지 가 닿는다.
예술에 화답하자. 빨간색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중독을 해체하자. 빨간색에 대한 기억을 주체적으로 만들자. 만물을 새롭게 바라보자. 더불어 세상에 대한 인식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하자. 예술이 미소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