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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양 Sep 16. 2021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한,
엄마표 김밥

엄마가 된 친구 '연'의 이야기


  '연'은 1986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쭉 한 곳에 살다 취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난 그녀는 어느덧 서울살이 10년 차,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연'은 자신의 꿈을 발표했던 최초의 순간을 기억한다.
  유치원 행사에서 사회자가 장래 희망을 물었고, 어린 그녀는 "아가씨요."라고 답했다.
  아가씨는 누구나 되는 거라며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내밀자 어린 그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답했다.
  "엄마요."
  그러자 사회자가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되는 것이라고. 



 


 

  '연'과의 재회는 송도해수욕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녀의 결혼식 이후로 몇 년 만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을 지나 송도 구름산책로까지 쭉 걸었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이었지만, 그녀는 간만의 외출에 숨통이 트인다는 듯 밝게 웃었다. 나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구름산책로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긴 생머리를 흩트려놓고 지나갔다. 긴 생머리, 밝은 미소. 그 모습은 대학 신입생 시절 내게 먼저 다가와 수줍게 말을 걸어주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내 눈앞의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우리는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광어회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싱싱했던 광어회의 표면이 말라가도록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연'은 내 20대의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였다. 우리는 시간의 파도 속을 마구 휘저으며 중구난방으로 이야깃거리들을 끄집어냈다. 회가 아닌 서로의 웃음소리를 안주 삼아 잔을 부딪쳤다. 하얀 비닐이 깔린 상 위로 빈병이 하나둘 늘어갔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울컥하는 심정으로 말을 잇다가도 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가 참, 맛있었다.


  서른이 넘은 후에도 우리가 이렇게 여전히 친구일 수 있는 이유는 20대에 만들어진 공통분모 때문일 거라고, 처음엔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변변치 않은 근황조차 눈을 반짝이며 듣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우리에게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라져가는 서로의 일상까지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엄마가 된 후로 달라진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아직 내가 겪지 못한 시간, 내가 알지 못하는 감정. 아직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인 엄마가 된다는 기분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요즘 정신이 없어. 밤 11시쯤에 애를 재우고 나면 그때가 육퇴(육아 퇴근)인 건데, 이유식도 만들어 놔야 하고, 이래저래 더 늦게 잘 때가 많지. 아, 저번에는 겨우겨우 육퇴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딱 잠들려는 순간에 생각난 거야. 바로 다음 날부터 감자 시작하는 날이라는 걸."

  "감자 시작하는 날?"

  "아기가 처음부터 모든 식재료를 다 받아들일 순 없는 거라서, 식단표를 짜 놓고 순차적으로 먹여야 되거든. 예를 들어서, 처음에는 녹색 채소를 하나씩, 그러다 적응이 되면 뿌리채소를 하나씩, 이런 식이야."

  "헉, 그럼 그때가 감자를 처음 먹이는 날이었던 거야?"

  "그렇지. 근데 내가 까맣게 잊고 그냥 잠들 뻔 한 거야. 사실 그냥 하루 정도는 다른 거 먹여도 되는 건데, 마음이 그렇게 안 되더라. 결국 다시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감자를 주문하고 잤어. '샛별배송'이라고, 알아? 전날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무렵에 집 앞에 놓고 가거든. '샛별배송'으로 감자만 시켰어. 다른 건 하나도 안 시키고 딱 감자 다섯 개만. 배송하시는 분도 아마 웃겼을 거야."

  "그래도 그다음 날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감자의 맛을 알게 되는 거잖아……. 감동적이야."


  몰라. 이렇게 키워놔도 나중엔 기억도 못 하겠지.
된장찌개 지겹다고, 치킨 시켜달라고 떼쓰고.



  물론 그녀가 재밌고 아름다운 에피소드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 생활과 육아에서 많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고, 당당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예전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 그냥 혼자 살아.'라는 농담 섞인 말도 여러 번 했다.

  "우리 집은 엄마가 혼자서 언니랑 나를 키우셨으니까,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가정은 분명 아니었어. 엄마는 밖에서 생활비를 벌고, 언니랑 나는 집 안에서 각자 알아서 생존하는, 그런 느낌이었지. 그래서 일찍 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외로울 때도 있었고. 엄마가 재혼하시고 언니까지 결혼한 다음에, 나는 빨리 내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었어.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기분? 엄마도 진짜 힘드셨겠구나, 싶기도 하고……."


  오래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연'과 나는 서울 어딘가의 작은 술집에서 만나 지금처럼 술잔을 기울이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 무렵이었다.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나는……. 이제 대전에 돌아갈 집이 없어."


  당시 그녀가 느낀 외로움은 얼마나 깊고 먹먹한 것이었을까. 하루빨리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안락한 둥지를 꾸리는 일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간절했을 터다. 하지만 가정을 꾸린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날개를 접고 쉬지 못한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기 새가 있기에, 어미 새의 날갯짓은 더욱 바빠졌다.


  어릴 땐 엄마의 보살핌을 별로 못 받고 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엄마 역할을 하려니까 난 우리 엄마처럼은 못하겠어.


  "요즘 우리 엄마 생각하면 찡할 때가 많아. 임신했을 때, 잠깐 대전 엄마네 집에 내려가서 며칠 있었거든.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너무너무 먹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가 만들어주셨어. 그 김밥을 먹는데, 아 언제까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언젠간 이 김밥 맛을 보지 못할 텐데, 그땐 얼마나 먹고 싶을까… 그런 생각에 마음이 짠하더라. 

  뭐 속 재료가 특별한 게 들어간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김밥이었어. 햄이랑 어묵, 시금치, 단무지, 계란. 이게 다야. 그래도 엄마들마다 손맛이 다르니까"


  순간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셨을 그녀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연'은 청하 한 잔을 빠르게 비워내고는, 젓가락으로 나물을 한 줄기 집어 입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근데 이젠 엄마도 나이가 드셔서,
먹고 싶어도 해달라고 조르지도 못하겠어.

  지금이야 편의점에서 지겹도록 보는 게 김밥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의 김밥은 소풍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식에 가까웠다. 많고 많은 재료 중에 몇 가지만 간단히 준비해서 싼다고 해도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야 하는 날, 소풍 도시락을 싸기 위해 '연'의 어머니는 얼마나 일찍 일어나셔야 했을까.

  김 위에 밥을 펼치고 색색의 속 재료를 얹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김발을 휘리릭 말아 적당한 힘으로 꾹꾹 누르는 손 마디마디, 물마를 새 없어 거칠어진 손등, 온종일 서 있느라 부기가 빠질 줄 모르는 다리…….

  그리고 그 새벽녘 풍경 위에 또 한 명의 '어머니'가 겹쳐진다. 채 눈곱도 떼지 않고 싱크대 앞에 서서 감자 다섯 알을 물에 담가 씻는 내 친구 '연'. 푸르스름한 공간 안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차칵차칵 감자 깎는 소리 울려 퍼질 때, 부엌 창가 너머에선 샛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을까?


  '연'은 이미 알고 있다. 엄마와 두 딸이 한 지붕 아래 복닥복닥 살아가던 시절, 그 작은 둥지 하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분투하셨을지. 지푸라기 몇 가닥 빠져나간 듯한 허술한 둥지였을지라도 셋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좋았으리라.

  

  '돌아갈 집이 없다'는 예전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녀나 나나 우리 모두, 엄마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날을 반드시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을. 언젠가 우리는, 정말 진정한 의미의 '집'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래도 '추억할 집'은 가슴속에 남아 있기에, 우리는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녀가 새벽녘 일어나 이유식에 넣을 감자를 씻었던 지금의 집도, 긴 긴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녀의 딸이 추억할 집이 될 것이다. 


복직에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딸도 잘 키우고…….
그러는 게 내 꿈이야.

  '연'은 담담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엄마는 누구나 되는 거라던, 20여 년 전 유치원 행사 진행자의 말은 틀렸다. '엄마'는 절대, 누구나, 쉽게 될 수 없다. 나는 '연'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엄마처럼은 할 수 없을 거라 했던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엄마처럼 해내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녀의 아늑한 둥지 안에서 추억거리가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이렇게 키워놔도 나중엔 기억도 못하겠지'라며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딸이라면 그중에 하나쯤은 반드시 기억할 테니까. 

  풀어지지 않게 꼭꼭 눌러 잘 말아놓은 김밥처럼, 꺼내 볼 때마다 속이 든든해지는, 고소하고 푸근한 추억 하나를. 












허기진 어른아이의 마음을 위로할

따뜻한 음식 이야기

<푸르던 날의 추억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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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의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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