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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츠루 Oct 22. 2021

딱 하루치의 통영

체험학습통영기 

신발샷


미래를 사는 것처럼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마스크를 쓰고는 있었지만, 같이 버스를 타고, (마스크를 쓴 채로) 남학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여학생들은 까르르거리고, 우리 모두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지난달에 체험학습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이렇게 계획은 세우지만, 언제 이 계획을 뱉어내어 버려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짜 갈지 안 갈지 확실한 게 없는 상태에서 세우는 계획은 우뭇가사리묵같았다.



박경리 기념관에서 친구 이름 찾기


박경리 기념관에서 간단히 설명을 듣고, 기념관에 있는 낱낱의 글자들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찾아 사진으로 찍었다. 우리 반에는 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간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의 앞번호 학생은 울상이 아니 죽을 상이 아니 욕 나오는 상이 되었고, “세”와 “ㅂ”을 따로 찍어도 인정해주었다. 기념관이라는 좁은 공간에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 낱글자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면, 문학은 얼마나 보통의 것에서 시작되는 일인가. 박, 유, 정, 진, 강 등등. 우리 아이들의 이름도 아름답지 못할 게 없겠다.


기념관을 나와서 박경리 작가님의 묘도 보고 왔다. 2년 전에 왔을 때, 묘가 있는 그 언덕에서 보는 풍경이 참 좋았다. 내 기분이 그랬었나 그곳의 분위기가 그랬었나. 따뜻한 해가 가득하고 앞으로 보이는 바다는 넓지는 않았지만 포근했다. 통영은 복 받은 도시구나.


40분 안에 기념관 안을 보고 묘까지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좀 모자랐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다음에 계획을 세운다면, 여기서 좀 더 여유를 부리리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학생단체 체험단 운행을 한다는 기사님들처럼, 나도 학생들과 길을 나서는 게 어색했다. 익숙했던 것들이 어색해지는 때는 여행을 떠났을 때 아닌가. 코로나 시대라는 여행에 내몰리고, 나는 무엇을 배웠나 모르겠다. 배워야 할 것 따위는 없고 잃은 것만 있다면 여행이 아니라 피난이 아닌가. 어디서 떠나왔던 어떻게 떠나왔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희망이라 다행이다.


통영케이블카



케이블카에 매달려


통영 케이블카는 통영시민에게는 반값이라는데, 이건 부럽다. 길지 않은 구간인데 12,000원이라니. 왕복 한 시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구간이 긴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정상에 올라서 바다와 산을 한참 바라보게 되었다.


아래로는 통영 루지, 어드벤처월드(?), 골프장이 보였다.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 오래 듣게 되는 것은 윤슬 가득한 바다를 느린 배가 가르는 소리. 자꾸 만져 확인해 보게 되는 것은 학생들이 으스대며 사진 찍으며 만들어 내는 웃음. 아이들 가까이에서 아이들의 자기장 속으로 들어간다. 좋은 사람들이다라며 학생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본다. 그리고 “착한 학생”이라 말하지 않은 내게 “너도 괜찮은 선생이 되고 있니?”라고.


올라가는 길은 제일 먼저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은 가장 나중에 내려온다.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내려가는 케이블카도 속닥대는 소리 덕분에 흔들흔들했다.



이순신 장군 뒤에서 햄버거


학생 단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없다. 아, 그렇지. 아직도 코로나 시대구나. 미리 주문해둔 햄버거와 콜라, 치즈볼은 우리보다 먼저 이순신 공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늦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았다. 땅에서 지렁이 뽑아올린 병아리처럼, 재빨리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아이들은 공원으로 돌진한다. 돌진하려는 데 오르막이라 속도는 나지 않지만, 느리게 걸으니 앞선 바다를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대충 앉고 보니 이순신 동상 뒤다. 앞으로는 또 바다. 통영이란 작은 동네의 바다인데, 앉는 자리마다 뷰가 다르다. 뷰자도시 통영이구나. 진주시민은 좀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까치가 바로 머리 위에서 울고, 윤슬이 바다를 가득 메운 팔각정자에 앉아 아이들과 햄버거를 먹는다. 마스크를 벗은 초면에 햄버거는 옳지는 않은 메뉴구나.. 먹으면서 생각하지만, 다른 옵션은 없으니 재빨리 서로의 하관에 익숙해지자. 단, 너무 빤히 보지 않기. 내년에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게 된다면, 너희들 얼굴을 다시 외워야 할지도 몰라. 농담을 던지는데, 사실 반에 반에 반에 반쯤은 진담이다.


물수제비


약간 웃고, 재빨리 베어 물고, 열심히 씹고, 조금 또 웃고, 부끄러워 가리고 하다 보니 25분 넘는 시간이 흐른다. 점심시간 40분을 정한 건 나인데, 과거의 나에게 짜증을 쏜다. 이 좋은 뷰를 보려면 얼른 걷자. 조금 걸어 내려가니 다르고 또 다르다. 아이들은 벌써 바다를 향해 물수제비를 날리고, 사진을 천장은 찍을 기세로 셔터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같이 사진 찍어요 하는 말에 나는 주섬주섬 얼굴을 챙겨 앵글 안에 넣는다. 이 사진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니?


가족들이랑 다시 와야지 점만 찍어놓고 자리를 옮긴다.



동피랑 서피랑 다 있으면 남피랑


얘야,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이야. 하는데, 그럼 남피랑도? 아니 아니. 그건 없다. 오늘 일정 중 가장 긴 자유시간 1시간. 하루 종일 커피를 굶어 어질어질 피곤하고 저 꼭대기를 봐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입구의 커피숍을 찾아 같이 온 선생님과 나다운 라떼와 생기발랄한 선생님다운 레몬에이드를 주문하고 앉았다. 라떼는 말이죠..라고 운을 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노력이 늘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어미새 찾듯 금시에 우리를 찾아내고 자기들도 쉬어 간다.



알찬다


알차구나. 6년 동안 통영에 살았다는 학생도 영 재미없어하지 않았다. 나는 어제 갑자기 발가락 곪았던 게 터져서 오늘 같이 오지 못한 학생을 생각한다. 단체 사진에 얼굴이라도 합성해서 넣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짐짓 진지하다.


학교를 나서며 이래도 되나 생각을 하고, 진주로 돌아오는 길 서로 기대어 잠든 얼굴에 잘 씌어진 마스크를 보며, 별 다를 바 없구나 생각을 한다. 이래도 되나 이래도 되나 싶은데, 바람 쐬러 나오니 그냥 최고구나 싶다. 가본 곳도 아는 곳도 먹어본 것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 다른 맛을 낸다.


코로나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나는 숙박형 체험학습에는 반대하지만, “좋은 사람인 학생들과” 이렇게 다니니 피곤하긴 해도 행복하고 좋다. 교사의 보람 따위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길게 교사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할 때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 날은 이 맛에 선생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열린 일은 즐겁고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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