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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츠루 Jan 13. 2022

질병은 우연이지만 환자됨은 필연이 아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다다서재 2021.

이 기묘한 편지를 써보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바로 저, 미야노 마키코입니다.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꽤 폭넓은 분야를 아우를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결국 생과 사를 둘러싼 다큐멘터리이자 생과 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해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혹은 병에 걸린 한 철학자가 '영혼의 인류학자'에게 기대며 내보낸 말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 중 한 명인 미야노 마키코는 책의 들어가는 말을 저렇게 시작했다. 그녀는 거의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을 썼다. 두 저자 사이의 편지를 보건데, 거의 마지막 즈음(이라고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미야노 마키코 씨는 모르핀을 맞고도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려가며 저 들어가는 말을 썼을 것이다. 책에 필요한, 아니면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서야 책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작업을 했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며 어떤 무게감도 없이 책으로 돌입했지만, 나는 한 이 주 정도 책을 손에 잡지 못했고, 작년(?)에 시작한 책을 오늘에야 끝내게 되었다.


암에 걸린 철학자와 그렇게 친하지 않은 의료인류학자가 주고받는 편지는 참 좋은 콘셉트이다. 암이란 생활밀착형일 수밖에 없으니 형이상학적인 철학자를 끌어내리기 좋은 소재이다. 두 사람의 편지라 독자는 곤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나에게 이 책을 빌려주신 선생님은 노트에 필기까지 해가며 책을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에는 술술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철학자의 우연에 대한 생각도, 인류학자의 인간에 대한 관찰도, 암이라는 질병도 나는 영화관 맨 뒷자리에서 언제라도 재미없으면 나갈 것 같은 태도로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멈추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고, 그것은 그저 잃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고로 오른쪽 발가락을 잃으셨고, 지금도 치료 중이다. 내 곁에 당장 아파 죽겠다 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다른 아픔의 고통 속에서 그 아픔을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저자 미야노 마키코는 자신에게 닥친 이 불운, 불운의 순간이 자신의 철학을 시험하기 좋은 기회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과 고통받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끊임없이 쓴다. 당장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자포자기하고, (책에 나온 것처럼) 100% 환자인 상태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에 오로지 의존할 수도 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두 사람의 편지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우연들이 발현된 것이다. 인생에 있어 필연이란 것도 결국은 다양한 우연의 결합일 뿐. 우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을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아니,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미래가 다가오는 것처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미야노 마키코는 그런 인간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 철학을 *살아낸다.


자신의 고통을 써냈다는 점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살아냈다는 점에서도 저자는 훌륭하다. 이 훌륭한 대화에서 공수를 바꿔가며 함께 대화에 참여한 의료 인류학자의 몫은 이소노 마호 씨는 잘 해냈다.


내 책이 아니라, 띠지를 아주 여러개 붙인다. 우연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해 마구마구 일을 벌이고, 좋아하는 사람, 좋아할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과의 시간을 두껍게 만드는 삶. 이 책에서는 그런 삶을 볼 수가 있다.


그다지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편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친해졌다. 마키코 씨에게 섣부르게 조언하지 않으면서도, 굳건히 응원하는 이소노 마호 씨의 글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마치 내 친구를 잃는 것처럼, 응원하는 것처럼.


당연하지만 이 책에 실린 우리의 편지에 거짓은 없습니다. 다만 실제로 우리의 관계는 편지에 담긴 것보다 훨씬 입체적이었고, 그 입체성이 바탕에 있었기에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용태가 점점 나빠지는 사람과의 관계는 심각할수록 어두침침하고 견디기 괴로운 것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아픈 사람의 일상은 아픔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며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그 여지는 몸이 아플수록 점점 좁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몸이 아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여지를 지키려 하는 노력에야말로 만나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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