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모글리, 대화하는 법을 배우다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AE)에서 흙을 털다

by tautFLUID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발견한 나는 아직 흙 묻은 발과 내가 손수 기워 만든, 입는다기보다는 몸에 뭔가를 걸친 야생 그대로의 상태였다. 즉, 정글북의 모글리(Mowgli)와 다를 바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의 작업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보았다는 사실은 그 시절 나의 유레카였다. 그런 순간을 외면하는 것은 어렵기에 내가 선택한 학교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공부했던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esign Academy Eindhoven)이었다. 도대체 그곳에서 그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고 싶었다.



01/ 모글리, 거울 앞에 서다


달빛에 비친 나의 그림자는 그저 실루엣이었으며, 물가에 비친 나는 흐릿했다. 정글에는 나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가 처음으로 흙 묻은 날것의 내 모습을 마주한 것은 2015년 봄날의 시험장이었다.


네덜란드 예술학교는 포트폴리오에 담긴 작업뿐만 아니라 작업을 만든 ‘과정’을 굉장히 중시하며, 학교마다 홈 어사인먼트(Home Assignments)가 따로 주어진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학교를 방문해서 배정받은 조의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입학시험이 있다. 긴 테이블 위에 가져온 작업을 세팅하고 시험관과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그날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테이블에 작업을 올려두자, 지나가던 한 여성 시험관이 그걸 힐끗 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건 아트야.”


막연히 무언가를 정제해야 하는 디자인보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용이한 예술에 더 끌렸던 나는 칭찬인지 부정인지 모를 그 말에 혼자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거울 앞에 선 나에게 “넌 아직 야생이야”라는 말이었고, 흙냄새도 마저 털지 못하고 군데군데 낙엽이 묻어있는 적나라한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모글리가 늑대 무리의 리더 아켈라, 흑표범 바기라, 그리고 갈색곰 발루의 보호와 교육 아래 ‘정글의 법칙’을 배운 것처럼,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AE)에서 나는 내 힘을 길들이는 법과 공존을 위한 질서를 배웠다.



02/ ‘너는 네가 아니다’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AE)은 주기적으로 커리큘럼을 수정하지만, 내가 1학년일 때는 총 3개의 반이 각각 50명 내외의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50명의 학생은 의도적으로 배경이나 작업 스타일을 섞어서 배치하는데, 확실히 학교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1학년 시절은 치열했으며, 3학기로 구성된 커리큘럼은 매 순간 “너는 네가 알고 있는 네가 맞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텍스타일, 철학, 건축, 디자인 역사, 맵핑, 메탈, 세라믹 작업 등 정해진 커리큘럼을 군대처럼 1년 동안 따라야 했다.


한 학기가 끝나면 모든 작업을 주어진 테이블에 깔아 심사를 받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프로세스북(Process Book)이라는 이름으로 학기 동안의 발전 과정과 생각을 기록해 책으로 엮어야 했다. 자유를 꿈꾸던 친구들에게 이 1년은 빨간 모자 쓴 교관 앞에 선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손에 쥐어주고, 마구 날 뒤흔들었으며, 계속해서 ‘Comfort Zone’에서 나오라며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그야말로 훈련소였다.


a.jpg 학부 1학년 시절 철학 수업에서 했던 글레이징(Glazing) 드로잉
R0006906.jpg 학부 1학년 시절 철학 수업에서 했던 컨투어(Contour) 드로잉


지금 되돌아보면 다양한 과목 그리고 49명의 다른 친구들은 서로 다른 개성과 배경을 가진 개별체였지만 동시에 서로의 ‘거울’ 역할을 했다. 과제를 흡수하고 작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스스로를 탐험하는 ‘내면의 시간’이었다면, 매 순간 결과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공유하는 그 시간은 ‘타인을 관찰하는 시간’과 함께 ‘타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IMG_3703.jpg 학부 1학년 시절 그룹 퍼포먼스
Screen Shot 2016-03-20 at 23.34.54.png 학부 1학년 시절 그룹 퍼포먼스 과제


프레젠테이션 기간이 되고 넓은 공간에 일렬종대로 늘어선 테이블에 각자의 작업이 쫙 깔리는 그 순간, 같은 수업에서 나온 제각각의 변주들, 그리고 세팅된 테이블에서 보이는 각자의 캐릭터를 마주하는 동안 학기 내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던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곤 했다.


지금은 학생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규정이 바뀌었지만, 내가 1학년이던 시절에는 총 150명으로 시작한 한 학년 중에서 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최종 합산된 점수를 통해서 방출되는 제도가 있었다. 객관적인 점수를 매기기 힘든 예술/디자인 분야지만 그들이 본 것은 야생성을 덜어내고, 스스로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주체성을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에 가까웠다. 결국 그들이 한참을 말한 ‘Comfort Zone’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다음 단계로 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03/ ‘너는 누구냐’


영화의 클라이맥스 같았던 휘몰아침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 갑자기 폭풍이 지나가고 남은 고요함처럼, 그들은 우리에게 ‘넌 누구냐’라는 질문을 슬며시 건넸다.


2학년부터는 각자가 선택한 전공에서 수업이 이어졌다. 특이한 점은 다른 예술대학처럼 다루는 ‘미디엄이나 방식’으로 과를 나누는 게 아니라 ‘주제(인간의 필요와 경험)’별로 구분된다는 것이었다. (예: Man and Well-Being, Man and Identity, Man and Communication 등)


이는 과거 리데바이 에델코르트(Li Edelkoort) 학장 주도하에 확립된 체계로, 기술이나 산업중심이 아닌, 인간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다. 각 과의 경계는 자로 잰 듯 나뉠 수 없었으며, 각자가 풀어가고 싶은 방향에 따라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개념적 디자인(Conceptual Design)’에 가까웠다.


즉, 그곳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철학적 행위’였다.



04/ 맨 앤 웰빙(Man and Well-Being)


이미 1학년 때부터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맨 앤 웰빙(Man and Well-Being)이었다.


그곳은 ‘Cool Head, Warm Heart’라는 모토 아래, 대량 생산보다 개인의 경험과 크래프트맨십, 자연적인 머테리얼에 대한 접근을 중시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스템을 이해하는 냉철한 지성(Cool Head)과, 인간과 사회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감성(Warm Heart). 이 관점은 내가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접근법 그대로였기 때문에 내가 다른 과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 졸업 학기에 나의 유레카였던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의 안드레아 트리마치(Andrea Trimarchi)가 메인 멘토를 맡는다는 점도 확신을 더했다. 나는 운 좋게도 그가 2020년 석사 과정 GEO-Design의 학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가르친 마지막 학생 중 하나였다.


우리 과의 12명(프랑스인 8명, 한국인 2명, 라트비아 1명, 루마니아 1명)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채 메인 주제를 각자의 방식과 미디엄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넌 누구냐’고 묻던 1학년이 지나고, 이제는 ‘네 이야기를 네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봐’의 단계였다.


누군가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디자인을 쉽게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라 부른다. 나는 그 단어가 다소 한정적이라 생각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냐에 따라 충분히 맞는 말이라 여긴다.


하지만 내가 맨 앤 웰빙에서 배운 진짜 가치는 달랐다. 디자인이 온전한 정답(해결)이 되기 어려울지라도, ‘문제 발견’과 ‘문제 제시’의 관점에서는 우리 삶에서 굉장히 강력한 매개체(Medium)가 된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놓치고 살던 것, 미처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디자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R0008945.JPG 오물에 대한 인식을 위트 있게 비틀어 배설의 가치와 장내 생태계를 재조명한 A Letter from Poop 프로젝트, 2017
R0009031.JPG A Letter from Poop 프로젝트의 'Poop Ball' 샘플, 2017
하고있는중-images-1.jpg A Letter from Poop 프로젝트의 ‘장내 세균의 중요성’에 관한 팜플렛, 2017


같은 주제를 12명이 12개의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자극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에게 ‘대화를 잘하는 법’, 즉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대화를 잘하려면 세상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고, 그것을 풀어낼 자기 자신(캐릭터)을 잘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누군가는 몽상적이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로 이끌었다. 그 모든 과정은 ‘쟤는 세상을 저렇게 보고 이야기하는구나’,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풀어내는데’를 깨닫는 치열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05/ 밖으로 나가라


교수들은 자꾸 우리를 밖으로 내몰았다. 그저 앉아서 책과 인터넷을 이용해 리서치를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상황을 직접 마주하게 했고, 장소를 직접 방문하게 했다. 입만 살아있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나에게 처음 그 요구는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때로는 강압이나 압박이 용기로 치환되듯이 나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가르침이었으며, 그것은 그때의 내게 꼭 필요한 도전이었다.


머릿속에서만 쌓아 올리는 서사는 하늘로 끝없이 올라가 버리는 헬륨 풍선처럼 어느 순간 터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론 너무 이상적이었으며, 때로는 너무 몽상적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와 논쟁을 하게 될 때, 맞는 말이지만 맥락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네가 도대체 뭘 알아?’라고 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네가 두 눈으로, 두 손으로, 두 발로 그걸 경험해보고 하는 말이야?’


이 지점이 네덜란드 디자인이 실용주의적이고 인간적인 특성을 갖게 하는 핵심 요소다.


어떤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전달하려면 말 그대로 그것을 깊게 분석하고, 흡수하는 시간이 있어야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2학년이 3학기 동안 세 가지의 큰 과제를 하면서, 자기만의 스토리텔링법과 접근법을 터득하는 시간이라면 3학년은 애초에 시작점이 외부에 있었다.


같은 동기 중에 운이 좋게도 아프리카 인근 인도양에 위치한 레위니옹(Réunion) 섬 출신의 친구가 있던 덕분에 우리는 한 학기 과제의 시작을 레위니옹 섬에서 2주를 보내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레위니옹은 제주도처럼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며, 아직도 활화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레위니옹은 아프리카, 유럽, 인도, 중국계가 뒤섞인 크레올(Creole) 문화가 주를 이루는 독특한 배경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3개의 조로 나뉘어, 현지의 크레올 문화와 장인들을 만나고 우리가 가진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통해 그들과의 협업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장인들의 실제 워크숍에서 머테리얼 다루는 법을 배우고, 2주간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유했던 시간. 그곳에서 직접 얻은 현실적인 경험들은, 디자인의 서사에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법을 배우는 값진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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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0010681.jpg 레위니옹 아일랜드(Réunion Island)의 채석장에서
R0010632.jpg 레위니옹 아일랜드(Réunion Island)의 풍경
'A Lunch In The Wild South' 프로젝트 비디오, 2018 (Émilie Hoareau Bordes, Seok-hyeon Yoon, and Soowon Chae)


그리고 이어진 것은 ‘인턴쉽’이었다.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직접 지원을 하고, 3-6개월 동안 그곳에서 견습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였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인은 결국 ‘삶’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운 나는, 좀 더 이국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를 흔들어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06/ 모글리, 스토리텔러가 되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야생의 모글리는 디자인이 ‘삶’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으며, 내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가르침은 ‘디자인 언어’를 배웠으며 ‘대화하는 법’을 익혔다는 점이다.


대화를 잘하는 법은 간단하다. 나 자신을 잘 알고, 나만의 캐릭터를 살려 맛깔나고 재미나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귀에 속삭였으며, 누군가는 기계적인 보이스 녹음을 이용했다.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모글리들은 개성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디자인에 대한 개념은 확장되었다. 완벽한 비례와 아름다운 형태, 눈길이 가는 소재로 만들어진 ‘오브제’를 넘어서서 디자인은 ‘이야기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었다.


나에게 기술을 알려주기 이전에 관점을 제시해 주고, 언어를 가르쳐주고, 그걸 풀어내는 생각을 전해준 치열했던 4년의 시간은 내 청춘의 값진 땀방울이었다.


여전히 창작자, 수집가, 기획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금.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관점과 유연함을 지켜준 그 시절은, 내 삶에 영원히 가장 단단하고 질긴 뿌리로 남을 것이다.



[tautFLUID Soundscape] : Chicago - You’re the Inspiration

“내 치열했던 고민과 성숙의 시간에서 영감이 된 것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삶이자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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