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A Letter from Poop, 2017

'손'으로,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by tautFLUID

기존에 있던 무언가에 미적인 아름다움이나, 새로운 기능을 더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디자인 영역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기 전 형성된 고정 관념’, 즉 ‘선입견’이라는 벽을 뚫고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식은 어떨까?"


말랑한 아이들의 고집을 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단단하게 굳어진 어른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선입견을 넘어, 이미 대상을 경험하고 정보를 접한 뒤 형성된 부정적 감정과 견해. 그 ‘편견’은 훨씬 거대하고 단단한 장벽이다.


디자인을 도구로 ‘편견’의 벽을 녹이는 것은 가능할까? 그 질문은 2017년 늦겨울에 나를 애먹였던 가장 단단한 얼음이었다.



01/ 변기


두 번째 학기의 주제는 더 과감해졌다. ‘자연 섬유’라는 큰 틀 안에서 각자가 원하는 재료를 골랐던 첫 과제와 달리 이번에는 애초에 ‘키워드’를 랜덤으로 뽑는 방식이었다.


주어진 키워드는 침대, 소파, 청소기 등등의 가정용품. 웬만하면 그래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 친숙한 것들이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다소 날 난처하게 했다. 어쩌면 ‘꽝’에 가까웠을지도.


그건 ‘변기’였다.


어쨌든 미적인 가치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는 디자인 분야에서 변기라니. 시작부터 ‘편견’을 안고 가야 하는 오브제였던 데다가, 그 편견이 ‘더럽다’는 사실이 가장 큰 딜레마였다. 그리고 실제로 더러운 것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무조건 작업이 잘 나오려면 주제와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름조차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그것과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더 어색하고 불편했다.



02/ 편견을 넘어서


그럴 때는 피하지 말고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우선 주제가 주어지면 그것이 우리와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언제 처음 탄생했으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또는 도태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기본적으로 ‘근원’을 좇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뼈대를 알아야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더할 것은 더할 수 있다는 주의다.


내가 주목한 점은 ‘변기’는 결국 ‘배설’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었다. 또한 ‘배설’의 결과인 ‘오물’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똥’을 빼고 생각할 순 없었다. 내가 아무리 변기를 지지고 볶아도 ‘똥’을 생략하고 건드리는 것은 알맹이 없는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변기의 존재는 사실 문제가 없었다. 수많은 욕실 광고에서, 새하얀 이빨보다도 결점 없이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건 단연 ‘변기’다. 그 변기에 인간이 배설하는 순간 더러워지는 것일 뿐.


그렇게 변기에서 시작된 나의 리서치는 어느새 ‘똥’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에 대한 추적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배설이다. 그렇기에 ‘똥’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다뤘던 어떤 주제보다 풍부하고 다양했다. 시간의 축을 따라 쌓여 온 수많은 레이어를 걷어내고 또 걷어내는 과정에서, 나의 단단한 편견 또한 한 꺼풀씩 벗겨져 갔다. 마치 어른의 똥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거부감 없는 갓난아이의 똥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랄까.


살아가다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과 멀어지는 것들이 있고, 반대로 가까워지는 것들이 있다. 평가의 주체가 언제나 ‘인간’이기에, 그 물리적·심리적 ‘거리’는 때로 ‘가치’를 판가름하는 냉정한 잣대가 된다.


인간과 똥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탈선한 기차처럼 어느 순간 ‘똥’은 저 멀리 떠밀려 갔고, 그 주원인은 ‘수세식 변기’의 등장이었다.


더 편리한 것이 무언가를 대체하고, 효용성이 밀려난 자리를 새로운 것이 채우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변화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간은 늘 나름의 ‘최선’을 선택하며 나아가지만, 그 방법이 언제나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과연 제일 나은 선택이었는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소중한 가치는 없었는지 말이다.



03/ 부서진 화양연화(花樣年華)


똥의 과거는 우리의 생각보다 화려했고, 인간과 가까웠다. 야생 동물의 배설물이 숲의 양분이 되듯, 토양에서 작물로, 인간을 거쳐 다시 토양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순환의 고리가 존재했다. 과거 똥은 훌륭한 영양분(질소, 인, 칼륨)이자 가장 효율적인 비료였다.


하지만 중세 도시화와 전염병(콜레라)의 공포 이후, 똥은 인간의 삶에서 철저히 멀어졌다. 인류는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를 도입해 이 오물들을 눈앞에서 빠르고 철저하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완벽했던 자연의 '순환 시스템'이 현대의 수세식 변기 앞에서 단절된 것이다.


물론 똥에는 수많은 세균과 노폐물이 섞여 있기에 '위생'의 관점에서 수세식 변기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모순이 있다.


단 한 번의 배설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평균 6~13리터의 깨끗한 식수를 오염시킨다. 이를 다시 정화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과 화학 약품을 쏟아붓고 탄소를 배출하는 비효율적인 루프(Loop)에 갇혀버렸다. 심지어 첨단 하수 처리 기술로도 걸러내지 못한 영양분들은 강과 바다로 흘러가 녹조와 적조의 원인이 되고, 화학 비료에 의존하게 된 땅은 점점 산성화 되며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모순을 파고들며, 나는 ‘변기’를 논하기 이전에 ‘편견의 무게’를 줄이고, ‘잊힌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본질이라고 결론 내렸다. ‘수세식 변기’에 어떤 미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거나, 기능을 더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단 10분 남짓한 프레젠테이션 동안 사람들의 단단한 편견을 깨고 생각을 반전시키는 것에는 색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똥이 직접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3자가 대변해 주는 순간 청자는 진정성에 의문을 가진다. 그 점을 상쇄시키기 위해 나는 ‘똥’의 메신저가 되기로 결심했다.



04/ A Letter from Poop, video



안녕! 너희가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들었어. 대부분 "더럽고 냄새난다"라고 하더라. 너희의 그 찡그린 표정이 왜 내 눈에 선할까? 내가 너희 얘기를 들을 줄 몰랐어?


솔직히 상처받았어. 이제 말하는 건데, 너희는 내 이름을 욕으로 쓰기도 하더라. 사람들은 나처럼 작고 '무용한' 존재는 신경도 안 쓰지.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만초니가 나를 작은 캔에 담아 금값에 팔기도 했지만, 그게 나를 위해서 한 일은 아니라고 봐.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난 과거를 생생히 기억해. 옛날에 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거든. 한국의 박지원은 "똥과 오줌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지만, 밭에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과 같다"라고 했지. 화학 비료가 없던 시절, 난 유기물과 영양분이 가득한 최고의 거름이었어. 사람들은 나를 돈 주고 사기도 했다고!


심지어 약으로도 쓰였지. 프랑스에선 말똥과 미지근한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했고, 고열 환자에겐 백포도주에 삶은 고양이 똥을 주기도 했어. 제비 똥은 다래끼에, 토끼 똥은 치질에, 사자 똥은 간질과 뇌졸중에 쓰였지. 돼지 똥은 황달을 치료했고, 염소 똥은 머릿결을 빛나게 하고 탈모를 예방했어. 박쥐 똥은 진통제와 혈액 순환제로 쓰였지.


꾀꼬리 똥은 피부 관리용이었어. 한중일에서는 고대부터 꾀꼬리 똥을 미용에 썼지. 쌀겨와 섞어 만든 약은 주름을 막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려주는데, 그 효과는 어떤 약도 따라올 수 없었어. 박쥐 똥에서 추출한 모기 눈알 요리는 최고의 진미로 꼽히고, 사향고양이 똥에서 나온 루왁 커피는 그 독특한 향과 달콤함 때문에 아주 귀하게 대접받지.


약뿐만이 아니야. 인도에서는 나를 땔감이나 벽을 세우는 재료로 썼어. 소똥을 이용한 화력 발전소도 있고, 코끼리 똥으로는 종이도 만들지.


내가 쓰레기 취급을 받기 시작한 건 아마 중세 도시화가 시작되면서부터인 것 같아. 인구가 밀집되면서 제대로 된 배설 환경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나를 집 밖으로 던져버렸지. 난 버려진 아이가 된 기분이었어. 길거리에 모인 우리는 '콜레라'라는 괴물이 되어 끔찍한 질병이 되었지.


그때 너희는 겁을 잔뜩 먹었을 거야. 그 후로 너희는 나를 멀리하고 그저 씻어내려고만 했지. 그때부터 우리 사이가 멀어진 것 같아, 그렇지? 위생을 위해 하수도를 만들고 나를 태어나자마자 최대한 먼 '지하 세계'로 보내버렸어. 그때부터 난 무가치한 존재가 됐지.


수세식 변기! 난 그게 정말 싫어. 그 녀석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너희도 알아야 해. 하얗고 깨끗한 모습으로 널 기다리지만, 그 속엔 얼마나 큰 문제가 있는지 알아? 일단 나 하나를 처리하려고 내 몸무게의 50배가 넘는 물을 써. 너희는 물 내리는 순간이 짧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후 나를 ‘소화'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


정화조와 하수 처리장을 거쳐 결국 찌꺼기가 되어 바다에 버려지거나 땅에 묻혀. 난 내 존재를 희생하지만 결국 자연을 해치게 돼. 난 그 사실이 너무 싫어. 인공 시설로 분해되지 못한 채 토양을 오염시키고, 물고기에게 기생충을 옮기기도 해. 너희에게 버림받고 자연에게도 저주받는 신세가 된 거지.


하지만 이거 알아? 너희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듯, 방법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그 피해는 결국 너희에게 돌아와. 내가 바로 너희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일부 사람들이 나를 에너지로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는 건 기쁜 일이야.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배설을 그저 '편안하고 쾌적한' 일로만 생각해. 과거의 향수나 하이힐도 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심에서 시작된 거지.


너희를 탓하진 않아. 수세식 변기는 과도기의 필연적인 선택이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제발 나를 안아주고, 지켜봐 줘. 무관심 속에서 내가 괴물이 되게 두지 마.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줘. 나를 관찰하면, 너희의 건강 상태도 스스로 체크할 수 있잖아.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지 않니?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너희도 존재할 수 없어. 내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도와줘.


너희 몸의 일부였던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야. 몸 건강히 잘 지내! 안녕.


― 똥(Poop)으로부터



A Letter from Poop 비디오는 중간 프레젠테이션 기간에 처음 공개가 되었다. 교수님과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며 나는 속으로 ‘아, 됐다.’라고 생각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화면을 봤고,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봤다. 기계음으로 시작하는 ‘Hey, Guys’부터 ‘Bye Bye’로 끝나는 마지막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인상을 쓰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대로 마치 ‘갓난아이의 똥’을 보는 것처럼 미소를 머금었고, 나와 눈을 마주칠 새도 없이 화면을 뚫어지게 보는 것을 보았다.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은 완전한 긍정이었다.


내가 스스로 잘했다고 느낀 점은, 파편화된 방대한 리서치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냈다는 점이다. 나만의 징크스가 하나 있다면, ‘이 정도만 해도 이해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타협할 때 돌아오는 반응은 그만큼 미적지근했다는 것이다. 반면, 증거와 팩트들을 내가 완벽히 씹어 소화한 뒤,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천지 차이였다.


추후에 이 비디오는 신입생들에게 ‘Man and Well-Being’ 학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소개되었다. 뿌듯했던 점은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Well-Being’을 재해석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 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고 세련된 에스테틱을 상상하지만, 나는 미적인 형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메시지와 아이디어’만으로도 웰빙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이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05/ 캠페인을 디자인하다


똥으로부터 온 편지를 시작으로, 이 작업은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하나의 ‘캠페인’ 형태로 완성됐다.


1) Classy Poop Contest (포스터 & 서베이 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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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제안한 것은 ‘Classy Poop Contest(우아한 똥 경연대회)’였다. 생태적 화두를 던짐과 동시에, 사회적 금기가 어떻게 매력적인 문화적 실천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컨셉추얼 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이벤트는 단순히 배설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자연의 순환이 만나는 가장 내밀한 순간을 디자인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더럽다’라고 여기는 대상에 역설적으로 ‘우아한’이란 형용사를 붙임으로써 시작했다. 즉, ’똥’을 혐오의 대상에서 관찰과 관리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프레임 수정(Reframing)’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대회에 사용되는 서베이 페이퍼를 통해서는 올바른 배변 자세, 건강한 똥의 형태와 색깔, 배변 주기를 스스로 체크해 볼 수 있게 만들고, 장내 세균의 중요성을 알리는 책자도 함께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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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배설’을 단순히 오물을 처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건강을 직관적으로 확인하고 내 몸을 돌보는 가장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의식(Ritual)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2) Poop Ball (풉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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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제안은 씨앗 폭탄(Seed Bomb)에서 영감 받은 ‘Poop Ball(풉볼)’이다. 씨앗 폭탄은 1970년대 뉴욕의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 활동가들이 방치된 땅에 식물을 심기 위해 담장 너머로 던지던 흙공에서 유래했다.


나는 톱밥 변기에 변을 누고, 황토 가루나 재(Ash)를 섞어 건조한 뒤, 이를 단단한 풉볼로 뭉쳐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을 디자인했다. 짚의 탄소와 인분의 질소가 만나 퇴비화가 되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짚은 수분을 흡수하고 공기층을 형성해 냄새를 줄이며 부패가 아닌 ‘발효’를 돕고, 재는 암모니아 가스를 중화시켜 악취를 잡는다.


나는 이 풉볼을 통해, 골칫덩어리였던 배설물이 다시 지구를 살리는 생태적 씨앗 폭탄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수세식 변기의 등장으로 끊어졌던 가장 본질적인 ‘자연의 순환 법칙’을, 작고 귀여운 흙공 하나에 투영시켰다.


3) Sawdust Toilet (톱밥 변기)


캠페인의 마지막 제안은 ‘톱밥 변기(Sawdust Toilet)’였다. 비록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제안은 아니었지만, 이 캠페인의 철학을 물리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매개체였다.


나는 이 톱밥 변기를 통해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Toilet should no longer be a tomb of shit. Toilet should be the doors of life that open the cycle of nature.”


(변기는 더 이상 똥의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순환을 여는 생명의 문이 되어야 한다.)


이 문구처럼, 내가 제안한 톱밥 변기는 단순히 오물을 처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수세식 변기처럼 배설물을 씻어내어 먼 지하 세계로 흘려보내는 ‘무덤’의 역할을 끝내고, 앞서 제안한 생태적 씨앗 폭탄인 ‘풉볼(Poop Ball)’로 이어지는 첫 번째 관문으로 기능할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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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디자인을 도구로 대화하는 법


이번 프로젝트로 내가 깨달은 것은 ‘디자인’에서 ‘전달’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전달’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디자인은 결국 ‘대화’였다.


그리고 ‘대화’에는 정답이 없듯이, ‘전달하는 방법’에도 정답은 없었다. 단지, 누구나 자기만의 말하는 패턴이 있고 흐름이 있다. 그래서 나만의 코드를 찾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항상 ‘진심’을 담으려 한다. 그리고 세련되게 포장하기보다는 투박함과 솔직함을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프레젠테이션 중에 나의 한국식 악센트로 자꾸 ‘Poop Poop’ 거릴 때마다,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똥으로부터 온 편지’를 볼 때처럼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나는 ‘똥’을 의인화하는 그 지점에서 나의 캐릭터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혼이 없는 것들도 영혼이 있는 것처럼 대한다. 그건 주로 나의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나는 ‘진정한 교감’을 원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에 나를 투영시켜 보면, 나는 온전히 그 대상이 가진 서운함이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똥의 역사를 추적하며 나는 ‘똥’이 참 서운했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디자인 학교를 준비하면서 나는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디자인은 리서치 단계가 필요하다’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으로 ‘리서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진정한 리서치’가 무엇인지는 모호했다. 나에게는 단순 ‘증거 수집’처럼 느껴졌달까?


‘갖다 붙이고 있네.’


나는 이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리서치를 하면서 깨달았다. 과정을 중시하는 네덜란드 디자인 교육을 받으며, ‘리서치’는 내가 그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만의 언어로 하나의 서사를 끌어내는 것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2017년 늦겨울, 나를 지독하게 애먹였던 ‘똥’을 몇 달간 마주하면서 다시 한번 '손'으로,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디자인에 대한 내 관점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tautFLUID Soundscape] : Coldplay - The Scientist

“2017년 겨울, 나의 편견을 녹이며 마주한 ‘똥’은 나름대로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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