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Retroact, 2017

'손'으로,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by tautFLUID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무언가를 내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순간에, 나는 왜 항상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거칠고 가쁜 숨을 내쉬던 ‘원초적인 근원’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맹수도, 식물의 독성도 걱정할 일이 없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고민한다. 치열하게 그 시절을 살아냈던 누군가는, 흙먼지 하나 묻지 않은 나의 이런 호기심을 가소롭게 여길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날 네덜란드의 거센 바람을 뚫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조차 버거운 나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그 시절 날것 그대로의 ‘생존’이 궁금하곤 했다.


시공간의 거대한 격차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인간의 본능과 고뇌. 나는 그 지점을 반복적으로 좇았다.



01/ 지방(FAT)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Design Academy Eindhoven)에서의 2학년도 어느새 마지막 학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 주제는 ‘FAT’.


재료 연구에 집중했던 ‘Banana Project’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위트 있는 재해석을 담아내고자 했던 ‘A Letter from Poop’을 거치며, 디자인을 풀어내는 고유한 방식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세상을 해석하는 독자적인 시선과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언제, 어떻게 구현돼야 가장 큰 시너지가 생기는지를 터득해 가고 있었다.


이미 발견한 강점들이 내가 언제나 편하게 휘두를 수 있는 ‘확고한 무기’라면, 나는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무대로 항상 ‘모험’을 선택했다.


모험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던 잠재성이 눈을 뜨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결과를 미리 그려보고 선택하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나조차 예측할 수 없는 주제나 방향을 선택하는 쪽을 선호한다. 어쩌면 그것은 큰 위험 없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무뎌진 생존 본능을 깨우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잠재력을 끌어내려는 무의식적인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FAT’이라는 주제는 모험하기에 적절한 주제였다. 단어만으로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질 힘이 있는 데다, 해석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적당한 골치 아픔과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전 작업의 주제였던 ‘똥’처럼 단단한 편견으로 둘러싸인 것은 아니지만, ‘지방’도 나름 비슷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동시대에 가장 기피되는 대상 중 하나답게, 수많은 운동법과 시술, 그리고 식습관은 이 ‘지방’을 관리하거나 멀리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방’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존재다. 장기를 보호하고 체온을 조절하며, 생명을 지탱하는 핵심 에너지원의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필수적이면서도 가까워지기를 꺼리는 그 모순적인 지점 자체가 내게는 흥미로웠다.


인간이 지방을 얻는 가장 쉽고 직접적인 방법은 ‘동물성 기름’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인류에게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지방이라는 에너지원을 제공해 온 ‘가축’이 떠올랐다.


이를 토대로, 사냥에서 축산으로 변화해 온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류가 동물로부터 지방을 얻어온 과정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02/ 야생에서 가축으로, 그리고 상품으로


원시인들에게 사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연이었다. 그들은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고, 동물의 기름을 등불의 원료로 삼았으며, 가죽으로 옷을 짓고 지방을 몸에 발라 혹독한 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다.


인간에게 동물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원시적인 창과 돌도끼뿐이었다. 사냥의 현장은 생존을 위해, 생존을 걸고 임해야 하는 것이었다.


A Pig Trapped in the Cube, Booklet, 2017


하지만 정착과 농경이 시작되고 가축 사육이 자리를 잡으면서, 생존의 치열함은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 갔다. 인간은 이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대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자연을 ‘통제’하고 다루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소, 돼지, 양 같은 동물들이 인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가축화되었다.


이전의 동물은 ‘사냥감’이었다면, 가축은 달랐다. 인간은 가축을 단지 수단으로 대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특정한 동물을 자신들의 시조나 수호신으로 여기고, 이를 통해 다른 씨족과 구별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상으로 숭배된 동물을 ‘토템’이라고 불렀다.


A Pig Trapped in the Cube, Booklet, 2017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사람들은 마켓에서 말끔하게 손질된 고기를 마주할 뿐이다. 더 맛있고 신선한 것을 탐닉하는 행위는 이제 생존이 아닌 ‘기호’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심지어 눈앞의 ‘고깃덩어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놓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생산자가 ‘알아서 잘했겠지’라는 뉘앙스 뒤에 숨어, 우리는 그 생명에 대한 부채감을 전가해 왔다.


‘고기’는 그저 플라스틱 컵과 같은 상품일 뿐이다. 소비자는 더 나은 조건에 질 좋은 품질의 고기를 선택하면 되는 역할이고, 생산자는 질 좋은 품질의 고기를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03/ 큐브 속에 갇힌 돼지


세상은 수많은 큐브로 이루어져 있다. ‘생산성’, ‘상품성’, 그리고 ‘편리함’ 등을 기준으로 우린 큐브를 만들고, 그것이 인간 사회를 끌어나가는 동력으로써 작용한다. 내가 말하는 ‘큐브’는 ‘시스템’과 같다. 복잡한 시대를 효과적으로 이끌려면 ‘체계’가 필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틀에서 벗어난 것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A Pig Trapped in the Cube, Booklet, 2017


현대 축산 시스템에서 유대감은 불필요한 결함일 뿐이다. 생명을 상품으로 대하는 이 견고한 틀 안에서,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은 이성적이지 못한 ‘과잉된 감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상품’이라는 큐브 안에서, 가축화된 동물들은 자신들의 원초적인 습성은 무시당한 채로 오랜 세월 사육됐다.



대다수의 사람은 가축으로 길든 돼지만을 보고, 그들의 본래 습성이나 특성을 오해하곤 한다. 나조차도 그랬다. 희미해진 야생성처럼, 미디어에 필터링된 돼지의 이미지가 사고의 뿌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돼지는 사실 공동의 보금자리를 꾸려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른 이미지와 달리 자연 속에서 활동적으로 사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지능이 3살 아이 정도로 높고 보금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 공간을 마련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돼지의 모습은 더러우며, 게으른 존재에 가깝다.


현대의 공장식 양돈가를 보면 ‘숭배’는 제쳐두고, ‘존중’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돼지가 가진 인지 능력과 감정은 큐브 밖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갓 태어난 돼지들은 시작부터 여러 주사가 놓이고, 그들의 송곳니는 어미의 젖꼭지를 깨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잘리고, 귀에는 칼로 표식이 새겨지며, 마취 없이 꼬리가 잘린다.


그리고 무게가 25kg에 도달하면 사육장으로 옮겨진다. 사육장은 환기도 잘되지 않으며, 분뇨, 사료, 항생제로 인한 불쾌한 냄새가 가득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돼지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살고, 더 나은 경우에도 배설물이 철망 아래로 떨어지도록 고안된 케이지 안에서 살게 된다.


대다수의 경우에 사료는 GMO와 항생제로 만들어지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물은 다이옥신, 대장균,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번식용으로 선택된 암퇘지의 경우, 다른 돼지들보다도 더 열악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집에 여유 없이 딱 맞는 ‘스톨(Stall, 감금틀)’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새끼 돼지들이 안전하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많은 암퇘지는 정신 질환도 앓는다.


원래 돼지는 9년에서 15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축산업계에서는 고작 6개월에서 10개월 만에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이 기간은 그들의 나이와 상관없이 ‘무게’에 의해 결정된다.


다행히 세상은 이 거대한 큐브의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비윤리에 주목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13년부터 임신 초기 4주를 제외한 스톨 사용을 금지했으며, 2027년까지 모든 농장 동물의 케이지 사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입법안을 검토 중이다. 14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End the Cage Age’ 캠페인은 더 이상 동물을 큐브 속에 가두지 말라는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또한 2023년부터 스톨 없는 환경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만을 유통하는 제도를 발효시켰고, 한국 역시 2020년부터 신규 농장의 군사(Group housing) 사육을 의무화하며 변화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정보들을 마주하며 나는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효율’이라는 큐브가 만든 굴레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발맞추어 걷는다’라는 안도감이, 때로는 우리의 시야를 가두는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04/ 묻혀 있던 마음


기억하려고 애쓴다 해도 절대 내가 온전히 마주할 수 없는 근원적인 순간들이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거칠고 가쁜 숨을 내쉬던 그 지점. 그나마 상상으로 닿을 수 있는 조각이 고작 얇디얇은 몇 겹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종 나 자신을 너무나 가벼운 존재로 느끼게 했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서지기 쉬웠기에, 더 단단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작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시대 자체가 궁금했다기보다, ‘생존’을 향한 인간의 고뇌와 처절한 행동들이 궁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란 거대하면서도 작고, 두꺼우면서도 얇은, 참으로 추상적이고 유연한 개념이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시간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언가를 판단할 때, 그 속에 담긴 ‘동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기’는 결국 ‘마음’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의 격차만큼 원시인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도,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가장 치열하게 사냥하고 그 식량으로 생존해야 했던 시절, 인간은 미적인 유희가 아닌 주술적인 갈망으로 ‘벽화’를 그리곤 했다. 당시의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논하는 이들이 아니라 주술사였으며, 예술은 사냥의 성공을 염원하기 위해 고안된 주술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벽화를 통해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고, 그림을 통해 전략을 짜고 단결력과 집단력을 쌓았다.


하지만 동굴 벽에 동물을 그린 이유 중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들은 벽화를 통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고, 위로하려 했다.


A Pig Trapped in the Cube, Booklet, 2017


나는 그 지점에 주목했다.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덮은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가 다시 마주해야 할 본연의 ‘공감’이자 ‘마음’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희생된 존재들에 대한, 가장 진심 어린 묵상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과 ‘변치 않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는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가장 정직한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한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인식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자연스럽고 바른 삶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이 간직해 온 본질은 ‘진심’과 ‘공감’이다. 과거에 그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주술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만의 방식으로 그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 ‘생존’과 ‘희생’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숙명이라면, 그 희생된 존재를 기리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다.


A Pig Trapped in the Cube, Booklet, 2017


05/ Retroact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나의 ‘의식(Ritual)’으로 정의했다. 과거와 현재의 단절된 지점을 살피고,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수면 위로 올리고 싶었다. 수만 년 전 동굴 벽화를 그림으로써 동물의 희생과 고통을 위로하고 영혼을 달래려 했던 그 마음을 오마쥬 하고 싶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창과 돌도끼가 아니었다. 그저 ‘돈’과 그것을 담을 ‘비닐봉지’, 그리고 ‘부위별 명칭’과 ‘무게’가 전부였다. 마음을 굳게 먹거나 전의를 다질 이유도 없었다. 자전거 페달을 굴려 정해진 시간에 줄을 서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본질은 같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과거의 그 누군가와 사뭇 달랐다.


나의 첫 번째 의식은 돼지의 살코기, 부속물, 뼈, 그리고 피를 이용해 천연 크레용을 만드는 일이었다.


천연 안료와 밀랍, 그리고 송진을 섞어서 만드는 엔코스틱(Encaustic) 이전에, 인간은 동물의 지방과 피, 그리고 식물성 기름을 섞어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예술을 표현했다.


그것을 모티브 삼아 모아둔 살코기와 부속물, 뼈를 건조하고 잘게 자른 뒤, 모르타르(Mortar)와 페슬(Pestle)로 직접 갈아 안료를 만들었다. 맨손으로 날것의 살덩어리를 움켜쥐는 감각은 다분히 생소했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가공되지 않은 촉감과 질감, 그리고 코끝을 맴도는 비릿한 향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뼈의 경우에는 더욱 복잡한 공정이 필요했다. 살점을 일일이 떼어낸 세제 섞인 온수에 담가 지방을 걷어내고, 과산화수소로 유기물을 산화시키는 정제 과정을 거쳤다. 돼지의 피는 소금을 섞어 끓인 굳히고 말려 다시 고운 가루로 갈아냈다. 완벽한 건조를 위해 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고된 날것의 과정은 나에게 희미해진 원초적 생명력을 깨우고, 잠들어 있던묵상 마음을 마주하는 의식처럼 다가왔다.



집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중, 나는 의도치 않게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열린 창문 사이로 파리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쳤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던 파리들이 그렇게나 주변에 많았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고작 작은 ‘파리’의 습격에 당황하는 스스로를 보며 내가 얼마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최종적으로 추출된 안료들은 부위마다 미묘하게 다른 빛깔을 띠었으며, 내게는 단순한 ‘색’의 범주를 넘어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흔적처럼 다가왔다.


Retroact: Pigment-making Process (Time-lapse), 2017


프로젝트의 끝은 정제된 안료에 지방과 식물성 오일을 섞어 물감을 만들고, 나만의 벽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추출한 안료로 가축화되기 이전의 ‘야생 돼지’를 그렸다. 그것은 효율의 큐브 안에서 야생성을 잃고 우리를 위해 희생된 존재들에 대한 뒤늦은 위로였으며, 내 안의 가장 본능적인 ‘공감’을 일깨우는 숭고한 의식이었다.


내가 만든 물감은 기성 물감과 비슷하면서도 질감과 성질이 달랐고, 무엇보다 특유의 비릿한 향을 품고 있었다. 그 향에 점차 무뎌지며 오늘의 벽화를 완성해 가는 과정 내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Retroact: Mural painting (Time-lapse), 2017


06/ 온고지신(溫故知新)


3학기를 지나며 내 시선이 향하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차갑게 식어버린 옛것에 다시 ‘열기’를 불어넣어 데우는 행위야말로 내가 과거를 대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무언가를 데우는 일은 서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으로 ‘온고지신’을 전달한다는 것은, 리서치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근원에 가까워지는 그 ‘과정’ 자체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손’과 ‘머리’, 그리고 ‘마음’을 다해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 그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발견한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이자, 내가 나아가야 할 의미였다.



[tautFLUID Soundscape] : Sigur Rós - Svefn-g-englar

“붉은 피가 캔버스에 번져나가고, 그 위에 각 부속물들의 빛깔이 묻어가며 쌓아 올린 야생돼지의 모습은 잠들어있던 우리의 위로를 깨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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