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왜 어린 시절 나의 보물함은 열려 있었을까?

tautFLUID의 기원: 수집광 소년, '보여주는' 큐레이션을 배우다

by tautFLUID

어린 시절 나에게는 ‘보물함’ 하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밀히 말해 그건 ‘함’이 아니었다. 엔틱 한 짙은 갈색 메탈 프레임에, 위아래로 물건을 올릴 수 있는 두 개의 유리판이 놓인 1단짜리 정사각형 선반이었다. 메탈 라인을 따라서는 포도 넝쿨 디테일이 장식되어 있었다. 7살짜리 아이가 직접 구매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오브제였으니, 나는 집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것을 내 보물함으로 간택했을 것이다.


내 기억의 시작은 거실 왼쪽 벽면, TV를 곁에 두고 바닥에 놓여 있던 모습이다. 소위 고정석.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어린 내가 나름 고심하고 선택한 나만의 영역 표시였을까? 다른 가구들에 비해 눈에 띄게 독립적이고 작았던 장식장은 마치 작은 몸을 꼿꼿이 펴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나보다 거대한 세상에 덤벼보겠다는 '의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귀여운 어린아이의 당당함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덧 보물이라는 단어를 내뱉기가 조금은 부끄럽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점점 더 구석과 어둠으로 숨어 들어가는 나이가 되자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때의 어린 나는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고, (내가 가장 싫어했던) ‘누군가’ 건드릴 수 있고, 때로는 그 어느 ‘누군가’가 뭐든 챙기기 쉬운 그 장소에 '그렇게' 두었을까? 가장 그리고 자주 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는 바로 그 ‘거실’ 한구석에 말이다.


의도 없는 행위를 싫어했던 어린 나였기에 분명 그곳에 보물함을 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01/ 선반 위에 올린 보물들


그 의문에 대한 추적은 그 당시의 내가 어떤 것들을 소중히 여겼는지 되새겨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으므로 각각의 오브제에 대한 묘사는 글을 읽는 사람들의 적당한 필터링이 필요하다.


첫 번째 보물은 '꾸러기 수비대' 지우개다. 12 지신 캐릭터 모양을 한 지우개였는데, 보통 캐릭터 지우개는 디테일이 뭉뚱그려지기 마련이지만 이건 꽤 정교했다. 2층 침대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놀다가 다시 고이 가져다 놓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사 온 미키마우스. 뒤에 옷핀이 달려 있고 버튼을 당기면 다리를 마구 굴리는 장난감이었다. 이것은 아직도 내 서랍 속에 생존해 있다. 이따금 추억이 필요할 때 튕겨보곤 하는데, 아직까지 보관하는 걸 보면 내가 꽤나 아끼는 모양이다.


그리고 문방구에서 구입 한 '랜덤 카드'와 '스티커'. 뽑기의 묘미는 카드 확인에도 있지만, 진짜 설렘은 맨 안쪽 깊숙이 숨겨진 '하나 더'라는 쪽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선택된 자, 당첨된 자의 희열."


그 찰나의 기쁨을 깨달은 첫 순간이었다. 훗날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황금 티켓을 노리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선행 학습이 되었다. 건조한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요즘,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던 때 묻지 않은 현장감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외에도 나의 컬렉션은 다양했다.

각기 다른 컬러 큐빅이 박힌 5개 세트 반지

치토스를 먹으면 나오던 따조

노란 개나리색 배터리를 넣어야 했던 충전식 미니카

일본 큰아버지가 사다 주신 산리오 색연필과 도장들


R0011058.JPG 네덜란드 킹스데이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한때는 누군가의 보물이었을 물건들



02/ 트랩 또는 큐레이션


반전이 있다면 나는 보물함을 열린 구조로 선택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거실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침범에는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보물함 앞으로 가서 눈에 불을 켜고 조금이라도 위치가 바뀐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아마 그때가 내가 ‘눈에 불을 켠다’는 말을 처음으로 몸소 실천했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위치가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으면 즉시 범인이 누군지 색출하곤 했다. 거의 탐정과 다를 바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추적하고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그 수색 끝에 가장 많이 걸렸던 건 위층에 살던 동갑내기 사촌이었다. 역지사지를 깨달은 지금 그 친구의 감정을 헤아려보면, 마치 덫을 설치하고 그 옆에 먹이를 놓아둔 상황이었을까? 그리고 덫을 놓은 게 고작 한 달 생일 빠른 사촌이었던 것이고.


그래도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그 보물함에 그냥 물건을 쌓아두거나 던져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의 큐레이션을 했다는 것. 이건 여기에 있어야 하고, 이건 저기에 있어야 하고, 작은 것들은 함께 놓여있어야 하고, 큰 것들은 벽 쪽으로 기대 두고, 나는 이리저리 나만의 배치를 했다. 그 큐레이션의 목적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탐정 모드의 트릭이 아니었길 바란다. 그저 사람들에게 나의 보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나조차도 쉽게 건들지 않고 아끼는 마음의 혼합이었으리라.


피는 못 속인다고 일본 큰아빠네 놀러 갔을 때 사촌 누나 방에는 나처럼 보물함이 있었다. 누나가 선택한 것은 서랍이었고, 그것을 열면 온갖 보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문방구의 새 제품 재고창고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내 물건을 건든 사람을 색출하던 순간은 잊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들춰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찰나의 스릴을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12.jpg 나의 수집벽(癖)이 거슬러 올라가 닿은 곳.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친할머니의 손때 묻은 유품들


그다음 장면은 내가 화난 사촌 누나 옆에서 뻘쭘하게 눈치를 보고 있고, 나를 뒤에서 발로 차버린 사촌 누나를 달래면서, 반은 아들을 걷어찬 사촌 누나에 대한 화를 참는 데 애쓰던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평생 사촌 누나에게 맞은 것은 그때 한 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내 보물을 건든 사촌에게 화를 내던 나 자신을 떠올리면 그 일이 어떤 행동이었는지 사촌 누나의 마음은 어땠을지 가늠이 된다.



03/ 다정한 고집: 안목을 나누는 기술


어쨌든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그때부터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무언가를 사고 싶어서 열망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소년이었다. 인내의 시간을 거쳐서 무언가를 사러 가는 그 순간의 나의 보폭,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남아있을지 없을지 마음 졸이던 시간, 드디어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던 그 순간, 그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장소, 장난감이 놓여있던 공간의 위치와 분위기, 때로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눈앞에 있는데도 입 밖으로 ‘저거’라고 내뱉지 못하던 나의 모습,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반쯤은 뒤에 숨어 거의 퀴즈처럼 눈빛을 주고받던 수줍었던 어린 내가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수집이 주는 즐거움, 그리고 내가 수집한 것들을 선보이는 뿌듯함 그리고 그 안에서 요구되는 각종 매너들(?). 그 모든 것들이 단순하지 않은 인생 공부였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과 숨기고 싶은 소유욕. 그 이중적인 마음 사이에서 싹트는 미묘한 긴장감과 욕심, 질투 그리고 그에 반하는 만족할 줄 아는 마음, 체념. 그건 욕망과 만족, 공개와 보호 그 사이를 외줄 타기 하는 듯한 여러 마음의 갈래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나눠주곤 했는데, 그건 심플한 알고리즘이 아니었다. '내가 가질까, 나눠줄까?' 그 이중적인 마음이 수없이 왔다 갔다 한 후에 ‘그래 주자’로 간 것이니깐.


S.E.S. 사진 화보집 맨 뒤에는 퍼즐처럼 작은 사진들이 모여 한 페이지로 구성된 면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에 놀러 온 누나 친구가 마음에 들면 사진을 하나씩 오려 선물하곤 했는데, 사실 사진만 고르고 내가 고른 사진들을 엄마에게 반듯하게 잘라달라고 부탁했었다. 어린 나의 가위질 실력으로는 삐뚤빼뚤하게 오려질 게 뻔했으니까. 나는 항상 주객전도가 되어 빨간 모자 쓴 어린 교관이 되어 엄마에게 칼각을 '요구'하진 않고 '부탁'했다.


또 다른 강렬한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내가 좋아하던 두 여자애에게 줄 선물을 나눠 담던 기억이다. 엄마에게 부탁한 갈색 서류 봉투 2개를 앞에 두고, (나름 공평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어울리는 세일러문 캐릭터 열쇠고리 하나씩을 넣고, 편지도 하나씩 넣고, 책받침도 하나씩 넣어서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놀이터 앞 핸드폰 가게로 가서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열쇠고리를 고르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한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그때부터 나에게 선물은 그동안 관찰한 상대의 모든 데이터를 취합해 그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고, 전달하는 방식까지 설계하는 하나의 즐거운 미션이었다.


선물에 대한 나만의 기준과 고집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건 누나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이었다. 누나는 그 당시에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나에게는 갑자기로 다가왔지만 누나와 부모님 사이에는 깊은 대화와 고민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직접 물어본 적은 없다), 나에게는 어린 마음에 그 떨어짐이 쉽게 가늠은 되지 않았지만 뭔가 많이 슬프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를 항상 기억하라는 의미로 '지갑'을 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당시에 누나는 안나수이 브랜드를 좋아했는데, 그 가격은 누나에게나 나에게나 쉬운 금액은 아니었지만 나는 큰 맘을 먹고 사주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 누나와 함께 일요일에 명동 롯데백화점으로 향했다. 일요일에 꼭 가야 했던 이유는 누나는 다음 날 월요일 미국으로 가야 하고, 나는 월요일에 학교에서 수련회를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누나는 안나수이에서 나비 모양으로 작게 펀칭이 된 금색 반지갑을 맘에 들어했다. 근데 그 타이밍에 누나는 변덕을 부렸다. 지금도 누나와 나의 차이점이 드러나는 부분인 걸 보면 애초에 그 지점에서 우리는 많이 다르다.


누나는 안나수이 지갑이 너무 비싸서 더 부담 없는 걸 사겠다고 했고, 쌈지 브랜드에서 꽃모양이 음각 처리 된 분홍색 반지갑을 골랐다. 아직도 그 두 지갑 디자인과 질감이 선명한데 그 단단한 가죽으로 된 분홍색 반지갑은 아직도 내 기준에서 마음에 안 드는 디자인이었다. 쇼핑을 하다 보면 누가 봐도 그날의 주인공은 저거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나는 그 감정이 생기면 쉽게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다. 결국 누나는 분홍 지갑을 선택했고 그 뒤로 나는 화가 나서 삐졌고 그 마음을 설명하기에는 나는 어렸다.


누군가는 "선물 받는 사람이 괜찮다는데 네가 왜 화가 나냐"라고 묻겠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첫째, 나는 누나가 안나수이 지갑을 더 갖고 싶어 한다는 걸 표정에서 캐치했다.

둘째, 내가 보기에도 그 금색 지갑이 디자인과 디테일이 더 예뻤다.

셋째, 무엇보다 '나를 항상 기억하라'는 의미의 선물이었기에,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물건이어서는 안 됐다.


물론 누나는 그 분홍 지갑을 보면서 전혀 안나수이의 금색 지갑을 떠올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난 아마 그날 명동을 돌아다는 동안 그리고 저녁을 먹는 동안 말을 안 하고 누나와 엄마는 내 눈치를 봤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전날 밤 방 문을 닫고 써내려 간 장문의 편지를 건네고 수련회를 떠났다. 그 내용 중에는 누나가 그 지갑을 샀으면 좋겠다는 이유에 대한 나의 진솔한 고백도 있었다. 누나는 그 뒤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지갑 얘기 때문에 운 건 아니었을 것이지만 결국 누나는 그 금색 안나수이 지갑을 다시 가서 샀고, 그 분홍색 지갑은 이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그 지갑 안 버리고 잘 갖고 있지?라는 내 말에 누나는 "그거 당근마켓으로 팔았는데?"라고 했다. 그게 추억인데 그걸 어떻게 팔 수 있냐는 물음에 누나는 그 생각은 못했다는 여전한 누나의 모습이었고, 나는 그 사고의 알고리즘에 좀 황당했지만 '그래 그건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만큼 조금은 성장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군대를 제대할 때가 기억에 남는데, 나는 마지막 3주 동안 나와 함께 생활한 후임 11명과 우리 부서의 상사, 하사님들, 그리고 중대장님에게 편지를 쓰고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선물을 준비하고 전달했다. 각자의 캐릭터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는 과정은 그 자체로 내게 큰 엔도르핀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받은 좋은 기억에 보답하고자 준비한 마음이었는데, 정작 돌아온 그들의 답장과 반응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유욕이 있는 사람이고, 나만의 작은 보물함을 시작으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 나만의 가치 있는 오브제를 모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때론 누군가에게 그것을 나누고 선물하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내가 소중히 하나하나 모은 것은 나의 에피소드가 엮인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주는 일은 0.xxx%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물하는 것은 좋아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언가를 소장하는 것이 사치나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돈을 지불하는 행위 그 이상,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부터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주는 행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물함에 물건을 채우고, 비우고, 나누며 배웠던 그 마음들. 그것은 오늘날 내가 세상의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 공유하고 싶은 tautFLUID의 작은 씨앗이자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어느 누가 나의 가장 소중한 ‘첫 번째 보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마음속에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으로 자리한 그 작디작은 1단짜리 포도 넝쿨 장식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나는 좋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만나게 될 보물들에 대한 기대도 매우 크다. 그 설레는 마음을 담아, 이제 나는 또 다른 보물들을 찾아 나선다.


R0010018.JPG 영국 뉴캐슬 바닷가에서 발견한 조약돌들



[tautFLUID Soundscape] : Kenshi Yonezu - Ohayo

"어린 시절의 보물함으로 시선을 옮기고, 흐릿해진 기억을 복기하는 하루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