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취향은 가드닝이다

tautFLUID의 초대: 어느 취향 발아자의 경계 없는 정원 이야기

by tautFLUID

어릴 때 내가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마주이야기’란 이름으로 아이들과의 대화를 엄마가 기록해서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5세 채수원 6월 22일 목요일,


수원: 엄마 이렇게 손을 움직이면 뼈도 따라 해
엄마: 왜?
수원: 속에 들었으니까
수원: 엄마 사람 몸속에 피가 들었지?
엄마: 응
수원: 엄마 피는 누가 넣어줘?
엄마: 원래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들어있는 거야
수원: 엄마, 그럼 말은 아니 우리가 하는 말 말이야. 말은 태어나면 병원에서 몸속에 넣어줘? (입을 벌리고 주먹으로 넣는 시늉을 하면서)


어린 내가 궁금했던 것처럼,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자라 있는 것들이 있다. 대화의 방식, 사랑의 방식, 삶의 태도, 식습관 등등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인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01/ 취향이란?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취향’이다. 취향이란 뭘까? 취향(趣向)이란 단어를 분석하면 ‘취’는 ‘달리다+취하다’가 합쳐진 글자이다. 결국,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 또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쏠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 주목하면 결국 ‘주체성’이 취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쫓기보다는 내 마음을 이끄는 것, 잡아당기는 것이 중요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취향마저 하나의 지위(Status)로 소비되는 사회에서, 때때로 그 취향을 오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이라든지, 예술 영화라든지, 다도 문화라든지 가볍게는 명품 또는 파인다이닝처럼 때때로는 일반적으로 쉽게 다가가기 힘든 영역의 어떤 것 또는 귀족적, 교양적 취향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그 대상 하나하나가 허황된 거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는 이따금씩 ‘돈’이 준비된 누군가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귀족적, 교양적 취향을 따라가거나 답습하고, 본인이 스스로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02/ 취향은 정지된 것이 아니다


나는 그건 본능적인 끌림에서 선택한 것들이 아니라 다분히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이며, 결국 취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돈이 충분히 있으면 장애물이 적고 더 많은 확장이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자기 스스로 '내가 무엇에 왜 끌리는 것인지'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스타일을 배워도 자기만의 해석이 없으면 그건 그저 ‘구입된 취향’이 아닐까?


취향은 물건처럼 어느 한순간 구입할 수 있는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03/ 취향은 가드닝이다


나는 이렇게 ‘취향’이라는 단어가 때 묻은 지점이 아쉽다. 나는 취향을 다듬고 키우는 것은 결국 ‘가드닝’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의식이기도 하면서, 내 삶이 온전히 투영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정원이 없어도 사는 데 문제없지만 잘 가꿔진 나의 정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의 레이어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내 삶을 온전히 투영시킬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나만의 영역일 것이다.


정원은 하나의 생태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므로 하루아침에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씨앗도 뿌려보고, 그러면서 계절도 이해를 해야 하고, 토양의 상태도 이해해야 하고, 식물 간의 상호 관계도 이해해야 하고, 미적인 의미에서의 조합과 밸런스도 생각해야 하고, 그리고 꾸준히 물도 줘야 하고, 과하면 덜었다가, 부족하면 채워보기도 하고, 그 수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의 씨앗이 시작점이라면 그 씨앗과 맞닿는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 심지어 영원한 완성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 가드닝이듯이 취향도 결국 마찬가지 아닐까?


R0010317.jpg 레위니옹 섬, 친구 에밀리네의 정원에서



04/ 트렌드라는 거대한 생태계(시대미감)를 이해하는 것


첫 번째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취향 이전에 무언가를 소비 및 수집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새로 등장하는 것들 소위 트렌드에도 항상 관심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90년대생인 나에게 트렌드를 되짚는 일은 곧 나의 과거를 복기하는 일이다. 그 시절 나를 스쳐간, 그리고 내가 빠져있던 이름들을 나열해 본다.


나이키 맥스 시리즈 폴로 스포츠 가방, 캘빈 클라인 리바이스.


그리고 색색깔의 국가 시리즈로 나왔던 아디다스 져지와 스니커즈들. (개인적으로 Osaka와 Melbourne 모델이 가장 예뻤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퓨마 X 미하라 야스히로 콜라보, 고등학교 시절의 마크 제이콥스디젤, 그리고 결이 다른 미학을 보여준 앤드뮐 미스터디올옴므.


배정남 씨가 멋지게 소화했던 빈티지 야상과 지금보다 더 파급력이 셌던 다양한 일본 브랜드들까지.


누군가는 트렌드를 쫓는 것을 개성이 없다고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답습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시대미감(時代美感)'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부르고 싶다.


무엇보다, 취향을 키우는 것이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라면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그 시대의 토양 상태나 햇빛, 바람 등등 전반적인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을 잘 활용하면 나의 씨앗들에게 더 풍부한 영양분을 주입하며 키울 수 있다. 분야와 상관없이, 한창 물이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젓는 이들을 보면 자본과 관심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대담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증명하듯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트렌드를 쫓는 이의 관점에서는, 우상화된 존재가 시대의 장벽을 부수는 모습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며 얻는 희열 또한 크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동시대의 기록들을 성취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비슷하달까? 모든 시대는 자연스레 과거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것이 동시대의 음악과 패션, 예술과 디자인에 전방위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다.


즉, 한철 피고 지는 ‘일 년생 식물’도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과정에서 좋은 거름일 것이다. 트렌드를 추적하며 다양한 것을 시도하다 보면 나와 잘 맞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내 몸에 닿거나, 내 귀에 닿거나, 내 입에 닿았을 때 마주하는 다양한 오감적인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다.


R0000253 2.jpg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피터 하인 엑 (Piet Hein Eek) 쇼룸



05/ 가드닝의 본질은 '가지치기'이다


큰 생태계를 이해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모두가 추구하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찾고 싶어지는 시점이 오는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랬다. 트렌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는 ‘유연함’이 중요하다면, 이 단계에서는 나만의 고집이 생기면서 조금씩 덜어내는 법을 알게 된다. 같은 향수라도 사람들의 체취에 따라 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나와 궁합이 좋은 것들을 찾게 되는 시점인 것이다.


가드닝에서도 수많은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면 잡초는 쳐내고 가지를 치며, 결국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시기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즉, 고유한 ‘선별 능력’과 나만의 ‘필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내가 정의하는 이상적인 그림을 완성해 가는 단계다.


고유한 주파수를 찾은 뒤에는 그에 반응하는 것들을 선별하여 곁에 둔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 위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응용과 변주가 일어나며 나만의 세계가 확장된다.


중요한 것은 가지를 친다는 행위는 단순히 무언가를 버리는 ‘배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내 정원에 가장 어울리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치열한 선택의 과정이다.


R0009120-1 (dragged) 2.jpg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길거리를 걷다 수집한 자연물들



06/ 나는 어떤 정원사일까?


나는 고집 있지만 유연한 정원사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싫어하고 ‘경계’를 짓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관습적 장벽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남자에게는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멋지다고 하는 것처럼, 뭔가 남성으로서 내가 아름다움을 말하는 순간 불편하고 턱 하고 막히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정원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는 ‘꽃’을 예로 들어보자. 정원에서 ‘꽃’만큼 눈을 사로잡는 포인트가 되는 것이 있을까?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꽃’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여성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에는 경계가 없어야 하고, 벽이나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에는 벽이 없다. 우리는 단단한 돌은 남성적이라고 느끼고, 쉽게 다치기 쉬운 연약한 꽃은 여성적이라고 느끼지만 그건 언어와 관습에 갇힌 생각이다. 나무와 풀, 꽃 그 모든 것들의 조합에서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뽑아내고, 궁극적인 미감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조화’와 ‘밸런스’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필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시대를 구성하는 각 요소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사는 자기만의 고집이 생기기 이전에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집과 선별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 단계에서 나와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크게 ‘경계’가 없었다. 내 기준에서 내가 멋지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저 수집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에게는 황금색 로봇이었던 골드런을 사달라고 기도했고, 이모에게는 백화점에서 웨딩피치 인형을 가리키며 저걸 사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당일에는 장난감 하나를 고르라는 어머니의 말에 천사소녀 네티 요술봉을 고르고 아주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으로 넘어간 것은 파워레인저와 세일러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성적인 옷을 입거나 소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 미리 두 갈래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가족들이나 이성 친구와 쇼핑을 가면 그날 마주하는 모든 것에서 내가 생각하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어떤 소재를 썼는지, 어떤 점이 특별한지, 어떤 부자재를 썼는지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유연함 덕분에 나는 좀 더 선명한 나의 기준들을 갖게 되었고, 선별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R0000341.JPG 중국 항저우 중국미술학원(CAA) 샹산 캠퍼스 정원의 연꽃



07/ 취향 발아자 (Seed-Starter of Taste)


나는 tautFLUID를 통해서 내 취향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 때로는 멋지다고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만의 취향을 길들여간 과정을 공유하고 싶고, 나의 정원에 놀러 온 다른 누군가의 정원이 더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내가 전달하는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정원에 어떤 빛과, 색, 향으로 스밀지, 어우러질지,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궁금하고 긍정적인 ‘발아’가 되길 바란다.


다섯 살의 내가 물었던 것처럼, 누군가 내게 ‘취향은 누가 넣어주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네가 너만의 정원을 만드는 것처럼, 씨앗도 고르고, 마땅한 위치에 심고, 물도 주고, 때로는 더하고, 때로는 잘라내면서 완성하는 평생의 즐거움이야.’


취향은 생존의 필수 조건은 아니고 그것을 가꾸는 것은 노력과 에너지,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전략적 자산이다. 내 삶이 투영된 정원을 구축하고, 타인의 정원과 교차하며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만큼 인생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재밌는 교류가 또 있을까?



[tautFLUID Soundscape] : FKJ, ((( O ))) - Ylang Ylang

"FKJ가 필리핀 정글의 고립된 정원에서 6개월간 정제해 낸 사운드는, 우리만의 정원을 가꿔 나가는 과정에 산뜻한 발맞춤이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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